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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03. 2023

거기도 나도 늙었네요.


19층에 사는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중이었다. 6층에서 그녀가 탔다. 작고 날씬하고 매우 예쁜 여자라고 생각했던 분인데 앗, 너무나 엉망의 모습이다. 아, 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가는 세월에 저 예쁘던 분도 저렇게 늙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었다. 마침 그녀도 나도 십여 년 전 이 아파트에 처음 입주할 때부터 있던 터라 친하진 않아도 엘리베이터에서 눈인사로 익히 아는 터였다. 엘리베이터 타자마자 그녀는 사방에 붙어있는 거울을 휙 보는가 싶더니 다짜고짜 내게 말한다. 그녀 나름의 인사방식이었나 보다. 아, 가는 세월은 어쩔 수 없네요. 거기도 나도 많이 늙었어요. 헉. 아니? 내가? 나도? 그녀는 엉망으로 하고 나와서인지 한눈에  세월이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아니지 않은가. 거울 앞에서 흠 이 정도면 아직 괜찮아. 하면서 룰루랄라 신나게 내려오던 내게 이 웬 찬물이란 말이냐. 앗, 내가 그렇게 늙었어요?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대답. 그녀 대답이 더 가관. 아니, 거기만 아니라 나도 늙었다고요. 세월에 당할 자 없어요.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서로 인사하며 헤어졌지만 아니, 왜 날 끌고 들어가? 그 잠깐 사이에 룰루랄라 신나던 나의 마음은 완전 쪼그라들었다. 그런가? 나 너무 늙었나? 아니 당신 늙어 보이면 그렇다 할 일이지 난 왜 끌고 들어가냐고. 하이고 내참. 집에서 거울을 보며 자신만만했던 나는 그 말 한마디에 기가 팍 죽어버렸다. 하하 그런 나도 참으로 한심하다. 나의 주관이란 어디로 갔단 말이냐. 변한 건 없는데 누가 오늘 참 예뻐 보이네요 하면 없던 기운도 팍팍 살아나고 오늘 왜 그렇게 안 좋아 보여요? 하면 팍 주눅이 드는 나도 문제 아닌가. 휙 봤을 때 비친 내 모습이 예쁘면 으쓱으쓱, 안 예쁘면 쪼글쪼글. 난 변한 게 없는 데 상대방 한 마디에 또는 스윽 비치는 거울 속 모습에 그렇게 덩달아 춤을 추다니. 바보도 한참 바보다. 거울이 예뻐 보이는 거와 엉망으로 보이는 게 있고 사람도 함부로 말하는 자와 좋은 말 하는 자가 있는 법인데 언제까지 그렇게 주변 따라 나의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할 터이냐. 그러지 말자. 그래. 내 인생 내가 사는 거야. 하하 내 기분은 내가 만드는 거라고. 이 정도면 되었어. 오늘도 씩씩하게 파이팅!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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