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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ul 16. 2019

감자볶음

정말 싫어했는데



난 오늘도 감자를 볶는다. 감자칼로 깎아 잘게 채 썰어 물에 담갔다가 채반에 건져 물기를 쪽 빼고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그 기름마저 뜨겁게 달구어졌을 때 팍 넣어서 지금 볶는 중이다. 센 불에 살짝 익혀 거기 소금만 살짝 뿌리고 그걸로 끝이다. 약간 아삭 거리며 약간 덜 익은 듯도 하지만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맛이다. 아, 그런데 이 감자볶음 내가 참으로 싫어하던 반찬이다. 그런데 난 요즘 거의 매일 이 감자볶음을 해 먹는다. 절대 빠지지 않는 우리 집 한구텡이 반찬 중의 하나다. 그런데 난 이 반찬 정말 싫어했다. 


아이 참, 또 감자볶음?


난 참 이 반찬이 싫었다. 다른 엄마들이 싸준 감자볶음처럼 벌건 빛이 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감자만 덜렁 약간 안 익은 듯한 가늘게 채 썰어진 감자볶음. 내 친구가 싸오는 감자볶음엔 빨간 당근도 들어 있고, 고기도 들어 있고, 우리 엄마가 싸주는 감자볶음과는 무언가 맛도 모양도 품위도 다르다. 그래서 난 친구들 모두 모여 도시락 먹을 때 이 반찬 나올 때는 정말 싫었다. 친구들에게 별로 팔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 감자볶음을 참 자주도 싸주셨다. 그뿐인가. 


1970년에 뽑기로 들어간 배화여중 1학년이었던 나는 일요일이면 학교 옆 사직공원 안에 있던 시립 도서관에 친구들과 다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무리 서둘러서 와도 그곳에는 이미 길게 줄이 서져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겨우 9시가 되어 도서관 문이 열릴 때 줄 선 차례대로 들어가는데 운이 좋으면 커다란 책상이 있는 멋진 열람실에 들어가지만 그곳은 금방 다 차고 그 옆 시청각 교육실이라고 작은 선반이 붙어있는 의자가 가득인 교실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곳까지도 다 차게 되면 그땐 아예 도서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누군가 나올 때까지 하염없이 그 도서관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서 점점 더 일찍 오게 되었지만. 


운 좋게 커다란 책상이 있는 열람실에 들어가게 되면 공부 잘하는 경기여고 언니들도 많아 무얼 물어보기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공부를 했다. 점심시간이면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끌러먹게 되는데 그때도 우리 엄마는 내가 그렇게나 싫어하는 감자볶음을 참 잘 싸주셨다. 엄마, 나 도서관 갈래. 일찍 가야 한다고 아침부터 설쳐대면 엄마는 주무시다 일어나 그냥 대충 재빨리 싸주시는 반찬이 감자 쓱쓱 깎아 볶아주시는 거였던 것 같다. 그렇게 엄마는 툭하면 감자볶음을 싸주셨다. 벌겋지도 않고, 윤기도 흐르지 않고, 설 익은 듯한 가는 채의 감자볶음. 




그런데 난 요즘 그 감자볶음이 그렇게 먹고 싶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나이 63에 왜 갑자기 그 감자볶음이 그렇게 먹고 싶은 걸까?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 먹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옛날 내가 너무나 싫어하던 그 모습 그대로 볶아본다. 꼭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그런데 맛있다. 아주 맛있다. 왜 그럴까. 내가 그렇게나 싫어했는데 왜 그리 맛있는 걸까. 어쨌든 참 맛있다. 그래서 난 오늘도 감자를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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