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자꾸 가라앉는 마음은 꼭 가방도난때문만은 아니었다
밤 12시 넘어 도착한 에어비앤비 집
침대도 쏘파도 식탁도 부엌도
모두 보이는 원룸형 널찍한 방.
잘 됐다. 침대가 마주 보고 있어
밤새 우리는 아들이랑 이야기할 수 있겠다.
아들은 왼쪽 침대에,
나랑 남편은 오른쪽 침대에.
꼬르륵~
아, 배고파. 그리고 보니 우리
아무것도 안 먹었네.
도대체 몇 시부터야.
점심 먹거리를 사들고
먹으려다 그게 없어져
알게 된 가방 도난.
그때부터 우린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 하이고~
점심, 저녁 두 끼니였지만
단 한 번도 배가 고프다던가
무얼 먹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으니 그만큼 우린
놀랬던 것이다.
모든 게 끝나고 나니
배가 배가 얼마나 고픈지.
밤 12시도 넘은 아주 깊은 밤에
우린 라면을 한 솥 끓여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모지? 다음 날 집을 나서니
한 건물 앞에 영화에서나 보던
멋진 리무진!!!
와우!
무척 크고 무척 길고 예쁜 아가씨들
다알링이라~
야리꾸리한 업소인가?
"집에서 가져온
미역국이니 햇반이니
요런 거 말고 오늘은 우리
유명한 카페에 가자."
해서 찾아간 곳.
자리가 없다고 기다리란다.
이미 몇 명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도 기다린다.
드디어 들어 오란다.
오예! 안으로 들어가니 자그마한 데
테이블마다 사람이 꽉꽉.
난 똥배 상관 않고
따뜻한 코코아를 듬뿍 마신다.
달달함으로 허기진 무언가를
가득 채우고 싶다.
깔끔하고 예쁘고 참 맛있다.
자. 새 날이야.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고
파이팅!!!
자꾸 가라앉으려는 마음에
파팍!!! 힘을 불어넣는다.
성 니콜라스 성당에 들어간다.
그러나 집중하지 못한다.
매번 보는 성당
그 성당이 그 성당.
안 그러려 해도 마음은
자꾸자꾸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가방을 도둑맞다니. 에고...
밖에 나오니 마침
시계 종이 댕댕 울리며
인자한 사도들이 촤르륵
지나간다.
'별 것 아니니라~'
곧 헤어질 해골바가지와도
인사를 한다. 안녕~
비둘기도 안녕~
조각들도 안녕~
광장에 사람들은 몰려드는데
가라앉은 기분은
영~ 올라갈 줄 모른다.
금박 아저씨도 안녕~
모두 모두 안녕~
1891년 프라하 박람회 때
에펠탑을 본떠 만들었다는
페트르진 전망대
에펠탑의 5분의 1 크기지만,
높이는 63.5m로 에펠탑과 같다.
그러나 페트린 언덕 위에 있어
에펠탑보다 더 높다니
299 계단을 올라가보잣!!!
재밌게 빙글빙글 계단을 올라간다.
와우~ 너무도 멋진 경치
그런데 헉!
어느 순간부터 다리가 후 달달달
숨이 턱턱 막히고
끝이 어딘가~
갑자기
너무 무섭다.
꼼짝도 못 하겠다.
헉헉.
계단 참에 마침 조그만 벤치.
일단 앉고 보자.
털썩.
그래도 떨린다.
너무 높다.
난간 잡은 손에
힘이 꽉!
"더 이상 못 가겠어~"
저 멀리 카를교가 보인다.
그런데 너무 무섭다.
내 나이 또래의 서양 여자 둘이
헉헉 거리며 올라온다.
매우 힘들어한다.
난 궁둥이를 비켜
벤치 한편에 그들을
앉게 한다.
셋이 앉으니 궁둥이가
꼭 낀다.
셋이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는다.
그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영어 아니다.
불어? 스페인어?
언어는 통하지 않으나
서로 주고받는 미소만으로
살아온 세월의 깊이랄까
삶의 연륜이랄까
같은 나이 또래라는 것
그 때문일까
아, 그냥 막 동료 같은
이 묘하게 무언가 통하는 느낌. ㅎㅎ
앗, 그런데 어떻게 된 걸까.
궁둥이를 꽉 끼고 앉아있던
우리 셋 중 누군가 일어났고
덩달아 모두 벌떡!
위로 올라간다.
그 무시무시한 철제 계단을
씩씩하게 쾅쾅 세게 밟으며
신나게 올라간다.
정상까지 단숨에 쭈욱~
하하 푸하하하.
어쩌면 멈춤이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 셋은 그렇게
얼떨결에 정상에 왔다.
아~ 뻥 뚫린 시야.
프라하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 너무도 아름다운 경치.
중간에 포기했으면 어쩔 뻔했어?
모든 것 훌훌 털어 버리자.
얼마나 좋아? 우리 가족이 함께!
그거면 됐지.
아들과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무언가 자꾸 기분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것은
꼭 소매치기당한 가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아들과 헤어지기 싫은 거다.
파리 에펠탑 근처에 살고 있는
아들과 짝퉁 에펠탑에서. 하하
이제 우린 기진맥진한 몸에
맥주를 들어 붓기 위해
그 유명한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간다.
정말 격렬하게 키스를 나누고 있는
조각상을 지나~
드디어 양조장 도착.
기진맥진
이 곳에서 맥주를 맛있게
마시기 위해 우린
페테르 진 전망대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날씨가 쌀쌀해
안으로 들어간다.
이것저것 맥주를
종류대로 시켜보기로 한다.
그리고 점심을 겸하여
바비큐 립.
맥주 넣은 소스를 립에
발라 구워냈다는데
아주 맛있다. 양도 푸짐~
그리고 배달된
구수한 빵과 맥주.
아~ 너무 시원하고 맛있다.
유럽 중세시대에
수도사들이
금식 기간 동안
기분 좋은 맛을 내는
음료를 마시기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는 맥주.
오홋. 그래서 수도원에
맥주 양조장이?
한쪽 구퉁이에
커다란 누런 통이 있다.
저 안에서 맥주가
숙성되고 있나 보다.
발 가는 대로 이 곳 저곳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마냥 걷다 보니
어느새 프라하에
어둠이 깃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