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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Jan 18. 2019

동유럽에서 소매치기 당하다

프라하행  열차안에서


오늘은 우리가

비엔나를 떠나는 날.


오후 2시에 나가서

프라하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데


고맙게도

에어비앤비 주인은

우리가 그 시간까지 집에

짐을 놓아둘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많지 않은 시간에

가 볼 수 있는 곳들을

잠깐이라도 더 둘러본다.


스페인 승마학교

그 유명한 백마 마상쇼는

시간상 볼 수 없었지만,

그냥 겉으로나마

눈도장을 찍는다.


와이 스페인 승마학교?

처음에 스페인에서

말을 들여왔기 때문이란다.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승마학교에서 나와

황궁도 겉만 얼핏 보고

발길을 재촉한다.


18세에 황제에 올라

무려 68년간 오스트리아를

통치한 프란츠 요셉 1세.


그는 딸을

나폴레옹에게 정략결혼시켜

아들까지 낳게 하나


나폴레옹이 유배지로

가게 되자 이혼시킨다.


이때 낳은

나폴레옹의 아들은

쇤브룬 궁전에 갇혀 살다

21살에 요절하고 만다.


미하엘러 문

양 옆을 지키고 있는

헤라클레스.


합스부르크 왕조 사람들의

심장을 보관하고 있다는

성미하엘 교회도

그냥 쓱쓱 지나친다. 와이?


빨리 집으로 가서

짐을 들고 기차 타러

가야 하니까.


오스트리아여 안녕.

집으로 향하는 발길을

서두른다.


가는 길에 마주친

맛있는 빵집에서 우리들

먹거리도 두둑이 사고

집에 들러 짐을 찾아 나온다.


매일 아침저녁 드나들던

정든 이 정류장도

오늘로 안녕.


무지무지 깔끔한

에어비앤비 아저씨도 안녕


역으로 가는

트램을 기다린다.


헐레벌떡

얼마나 서둘렀던가.

열차를 확인하고 올라탄다.

진짜 오스트리아 비엔나여 안녕이다.



"자, 이제 우리

맛있는 거나 먹어볼까?"


짐도 제대로 트렁크

놓는 곳에 가져다 놓고


대충 다 정리를 한 후

우리는 기차여행을

본격적으로 즐기려 한다.


그런데 앗!!!


배낭이 없다.

분명히 남편이 선반 위에

올려놓는 것을 보았는데 없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그래도 없다.


왜? 왜 없지?

앗. 앗. 앗. 설마?


기차 안을 쓰윽 둘러본다.

혹시 어디 잘 못 두었나?

밀려갔나?


아닌데?

분명 우리들 머리 위

선반에 두었는데?


왜 없지?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이 칸 저 칸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없다.

 

설마... 설마... 도둑?


세상에.

아무리 찾아도 없다.


도둑 많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서 항상 경계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새

경계심이 풀어진 걸까.


그러고 나서 보니

열차 선반 위라니...


가져갑시오~

한 꼴이 되었다.


아, 어떡해.

그 안에 무어 있지?

카드! 돈! 하이고~


그 배낭 깊숙이

지갑을 잘 숨겨두었다는

나의 서방님.


하이고 서방님아~

그런 걸 어찌 덜렁

선반 위에!

 

우린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한다.


지금 한국은 한밤중

일단 카드부터 막아야 한다.


어떡하지?

아, 어떡하지?


여행사 다니는

친구가 생각난다.


한국은 꽤 늦은

밤이겠지만 전화한다.


"카드 좀 막아줘."


경찰서 가서

조서를 꼭 써라 등등

놀란 친구는 그 와중에도

전화 끊기 전 기초적인

주의사항을 거듭 말해준다.

고마운 친구.


일단 카드는 막았다.

다행히 여권 등은 아들이

꽉 몸에 지니고 있다.


찬찬히 무엇이

배낭 속에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급하게 에어비앤비

집에서 나오면서


밖에 나와 있는 것들을

모두 그 배낭 안에

쓸어 담았음을 상기한다.


카메라, 노트북,

돌돌 말리는 패딩 긴 잠바,

스카프, 두툼한 여행책자.

선글라스. 그리고 아까

사 넣은 맛있는 먹거리.


아, 어떡하냐.

하필 거기 그 비싼 걸

모두 담았단 말이냐.


마침 제복 입은 차장이

표 검사를 하러 온다.


그 차장을 붙들고

정신없이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일이

많은 걸까?


전혀 놀라지도 않고

그냥 나중에 경찰서에

가라는 말만 반복한다.


가뜩이나 지친 몸들.

멍~ 모두들 멍~


어떻게 프라하에

도착했는지도 모르겠다.

역에 경찰서는

어디에 있는 걸까?


안내센터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안내창구의

젊고 깔끔한 남자.


고맙게도 잠깐

기다리라더니,


테이블을 정리하고

따라오라며 아예

우리를 직접 데리고 간다.


프라하 역 센터를 지나

이층으로 올라가더니 우회전

좌회전 그리고도 맨 끝 어느 구석

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경찰이라고 쓰여있지도 않은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간다.


우리끼리라면 절대로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구석진 곳에 있으면서

아무 표시도 없다.


그 남자가 안내해서일까?

제복 입은 경찰들이

매우 친절하게 대해준다.

정말 고마운 안내센터 직원.


일단 기다리라고 해

경찰서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술주정뱅이도 들어오고,

노숙자 같은 허름한 옷의

시궁창 냄새가 폴폴 나는

남자도 들어온다.


좁은 곳에 같이 앉아

기다린다.


경찰들이 모두 그렇게

어려 보일 수가 없다.


이제 내가

나이 들어서일까?

언제나 경찰 아저씨였는데. ㅎㅎ


한참을 기다리니

사복 입은 남자가 황급히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무슨 경찰이

키도 크고 얼마나

잘생겼는지 영화배우 같다.


우리에게 오더니

영어로 대화를 시작한다.


우리가 외국인이니

무조건 기다리라 하고

영어 하는 경찰을 긴급

동원했는가 보다.


아, 그런데 조서 쓰는 거

정말 시간 많이 걸린다.

한 세 시간 정도?


일일이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고


잃어버린 물건들

목록 작성하고 그걸 또


모두 돈으로 계산하여

합산하고 하는 과정에


서류는 또 얼마나 얼마나

많이 만드는지


그 경찰도

many many papers~

하며 나를 보고 웃는다.  


몇 시간 걸려 모든 절차를

다 밟고 기진맥진하여

밤늦게 숙소에 도착한다.


고맙게도 새 에어비앤비

젊은 여주인은


우리가 경찰 일을

잘 마무리하고 오기까지

걱정하며 기꺼이 기다려준다.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는가?


다행히 카드는 막았고

다치지 않으면 되었지.


자기 몸을 떠난 짐은

이미 자기 꺼 아니라고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여행 전 귀 딱지가 앉도록 들은

주의사항은


열흘 이상 아무 일 없으니,

까~맣게 잊은 것 같다.


어쩌자고 선반 위에

짐을 두었을까?  


<열차 안에서 도둑맞는 사진은 없어

다른 곳의 사진을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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