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May 19. 2024

92세 엄마의 패션쇼

알츠하이머 치매가 시작된 92세 우리 엄마는 자꾸 도우미 아주머니를 의심하신다. 심지어 그녀가 엄마 주민등록증과 카드와 현금이 든 지갑을 통째로 훔쳐갔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그럴 분이 아니라고 누가 요즘 그런 걸 훔쳐가냐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럼 그게 어디로 갔느냐며 막무가내시다. 일단 없어졌으니 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주민등록증은 재발급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난 아무래도 엄마가 어딘가에 두고 찾지 못하시는 것만 같다. 그래서 서울에 오자마자 엄마 장롱을 뒤집기 시작했다. 일단 옷이고 뭐고 장롱 안에 든 모든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 그러면서 장롱 한쪽 구석 아주아주 깊숙이 비닐에 몇 겹으로 쌓여있는 바로 그 지갑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 여기 지갑! 괜히 사람 의심하는 거 아니라니까! 해서 일단 사태는 수습되었는데 장롱 거를 몽땅 꺼내 놓으니 완전 폭탄 맞은 집이 되어버렸다. 그대로 장롱에 쑤셔 넣을 게 아니라 이참에 옷 정리를! 이것도 저것도 내 눈엔 몽땅 버릴 거다. 너무나 오래된 그 옛날 멋쟁이 옷들. 그러나 그걸 보는 엄마 눈이 심상치 않다. 왜 맘대로 버리느냐 다 쓸 수 있는데 왜 버리느냐고. 그렇다. 이 방법으론 안된다. 작전을 짰다. 마침 동생이 호텔에서 나와있다. 바닥이 온통 옷천지인 안방에서 엄마 이거 입어봐. 모델님 어서 입고 심사위원 앞에 나가세요~ 하면 엄마는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있는 동생 앞에 선다. 심사위원인 동생이 합격! 하면 옷은 장롱 속으로 들어가고 불합격! 하면 버리는 곳으로 갔다. 하하 엄마가 저렇게 신나게 웃다니. 예쁜 옷도 참 많다. 우아 이건 너무 예뻐. 합격! 아 이건 너무 옛날 옷이야 불합격! 패션모델님 어서 나오세요~ 하하 폭탄 맞은 듯한 우리 집에선 92세 엄마의 패션쇼가 한참 벌어졌다. 모델님 나오세요~ 하하 푸하하하 그렇게 옷을 하나하나 버려갔다. 참 괜찮은 작전이었다. 


(사진: 꽃 뜰)


매거진의 이전글 우쒸. 살짝 괘씸한 맘이 들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