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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19. 2024

92세 엄마의 패션쇼

알츠하이머 치매가 시작된 92세 우리 엄마는 자꾸 도우미 아주머니를 의심하신다. 심지어 그녀가 엄마 주민등록증과 카드와 현금이 든 지갑을 통째로 훔쳐갔다는 것이다. 아니라고 그럴 분이 아니라고 누가 요즘 그런 걸 훔쳐가냐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럼 그게 어디로 갔느냐며 막무가내시다. 일단 없어졌으니 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주민등록증은 재발급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난 아무래도 엄마가 어딘가에 두고 찾지 못하시는 것만 같다. 그래서 서울에 오자마자 엄마 장롱을 뒤집기 시작했다. 일단 옷이고 뭐고 장롱 안에 든 모든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 그러면서 장롱 한쪽 구석 아주아주 깊숙이 비닐에 몇 겹으로 쌓여있는 바로 그 지갑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 여기 지갑! 괜히 사람 의심하는 거 아니라니까! 해서 일단 사태는 수습되었는데 장롱 거를 몽땅 꺼내 놓으니 완전 폭탄 맞은 집이 되어버렸다. 그대로 장롱에 쑤셔 넣을 게 아니라 이참에 옷 정리를! 이것도 저것도 내 눈엔 몽땅 버릴 거다. 너무나 오래된 그 옛날 멋쟁이 옷들. 그러나 그걸 보는 엄마 눈이 심상치 않다. 왜 맘대로 버리느냐 다 쓸 수 있는데 왜 버리느냐고. 그렇다. 이 방법으론 안된다. 작전을 짰다. 마침 동생이 호텔에서 나와있다. 바닥이 온통 옷천지인 안방에서 엄마 이거 입어봐. 모델님 어서 입고 심사위원 앞에 나가세요~ 하면 엄마는 옷을 갈아입고 거실에 있는 동생 앞에 선다. 심사위원인 동생이 합격! 하면 옷은 장롱 속으로 들어가고 불합격! 하면 버리는 곳으로 갔다. 하하 엄마가 저렇게 신나게 웃다니. 예쁜 옷도 참 많다. 우아 이건 너무 예뻐. 합격! 아 이건 너무 옛날 옷이야 불합격! 패션모델님 어서 나오세요~ 하하 폭탄 맞은 듯한 우리 집에선 92세 엄마의 패션쇼가 한참 벌어졌다. 모델님 나오세요~ 하하 푸하하하 그렇게 옷을 하나하나 버려갔다. 참 괜찮은 작전이었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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