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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May 29. 2024

92세라길래 파파 할머니가 계실 줄 알았어요.

"나 첫나들이야!"


화창한 햇살아래 우리 집 앞으로 온 친한 동생들 차에 올라타며 내가 말했다. 엄마 간호로 모든 스케줄 동결 후 집에만 콕 박혀있는 내게 이제 장기전으로 가야 할 텐데 그러다 큰일 난다며 점심 먹자고 데리러 온 것이다. 난 엄마 식사를 챙겨드리고 약도 다 드시게 하고 안약도 넣어 드린 후 다음 약 넣을 때까지 두 시간 정도만 나갔다 오겠다 했다.  


"네가 엄마 때문에 고생이 많다. 엄마 혼자 있을 수 있어. 실컷 놀다 와."


TV? 라디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TV뉴스가 낫겠다 하셔서 24번으로 고정시켜 놓고 따뜻한 물도 보온병에 담아 앞에 두고 간식거리도 코앞에 두고 난 나왔다. 사람 북적대는 식당에서 점심 한 상을 크게 받았다. 맛있다. 엄마랑 같이 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어도 나의 생각은 집에 계신 엄마에게만 간다. 식사 후 의례 하던 대로 카페에 가려고들 한다. 난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엄마 걱정되어 집에 가야겠다 한다.


"언니~ 차도 없잖아. 엄마 혼자 잘 계실 거예요. 걱정 말아요."


하하. 그렇다. 동생들이 나를 집 앞에서 픽업했으니 난 차도 안 가져왔다. 혼자 갈 수가 없다. 도저히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동생들이 안 되겠나 보다.


"좋아요. 그럼 언니 집으로 가요. 커피를 테이크아웃으로 해서 언니 집으로 갑시다."


"그래? 그럴까? 그런데 울 엄마 지금 일주일째 세수도 못하시고 싫어하실 텐데. 잠깐 전화드리고."


"언니, 그러면 엄마 부담가지셔요. 그러지 말고 그냥 가자고요."


자존심 센 우리 엄마가 세수도 안 한 얼굴을 집에서 입던 옷 그대로 보이기 싫어하실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생들 말도 일리 있다. 깔끔한 울 엄마 우리 간다 하면 무언가 정리를 시작하실 테고 옷도 갈아입으실 테고 분주하실 테니 그래. 그냥 들이닥치자.


"엄마~ 친한 동생들이 엄마 걱정된다고 집으로 들 왔어요~"


하면서 우~ 몰려들어가니 우리 엄마 아이고 그래? 오랫동안 세수도 못한 것 상관없이 너무 반가워하신다.


"92세라길래 파파 할머니가 계실 줄 알았어요. 할머니가 아니네요!"


하면서들 고우시다고 난리다. 엄마도 너무 좋아하신다. 하하 시끌벅적. 우리 집이 카페가 되어 엄마가 좋아하는 카푸치노를 안겨드리고 우린 걱정 없이 맘껏 수다를 떨었다. 하하.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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