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빗속에 역까지 가는 것도 무리다.
착한 나는 언제나 혼자 가거나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은
기껏해야 리무진 타는 곳까지만
태워달라고 한다.
아니 감히 싸모님 행차에
역까지 모셔다 드리지 않는다고?
간이 배 밖에 나온 거 아니냐며
친구들이 놀린단다. 그래도
착한 나는 언제나
날이 맑으면 그냥 혼자 가고
날이 궂으면 리무진 타는 곳까지다.
괜히 고생할 필요 없어.
올빼미형인 남편이 얼마나
새벽이 힘든지 잘 아니까
내가 그렇게 요구한다.
나가면 위험하겠지?
길 위에 차를 세우고 운전자가
내리는 게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그는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있다.
그래도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홀로 맞으니 쫌 남자가
너무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괜찮은데
엄마는 어떡하지?
마침 정류장에 우산이 하나 있다.
그리고 안쪽으로 아주머니가 한 분 계신다.
저 이 우산 잠깐만 쓸게요.
어르신 계셔서요~
흔쾌히 쓰라는 듯 활짝 웃으신다.
다행히 엄마는 그 우산으로
정류장 안으로 모실 수 있었다.
차 안에 안전하게 가만히
앉아있던 남편은
문이 다 닫히자 떠났다.
좀 너무 한 것 같아서
난 그냥 인사도 하지 않았다.
비가 많이 와서 할 수도 없었다.
그도 그게 미안했을까?
금방 전화가 온다.
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흥 모든 건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거다.
그는 이미 내게 점수를 팍 깎였다.
앗. 그런데 너무 일찍 왔다.
리무진은 21분 후에 도착한다는데
정류장 안 의자는 비에 흠뻑 젖어
아무도 앉을 수가 없다.
아무도 앉지 않고 모두 서있다.
난 휴지를 꺼내 물기를 닦았다.
엄마랑 나랑 두 명 앉을자리.
아니 우산 빌려준 분까지 세 자리를
빡빡 닦았다.
그리고 엄마를 앉히고 그분을 앉으시라 했다.
그러나 금방 버스가 온다며 괜찮다고
널찍하게 앉으라며 사양한다.
아주 환한 미소를 보내주시면서.
몇 번 그렇게 앉으세요
버스 금방 와요 괜찮아요
하다 보니 친해졌다.
버스는 그렇게 오래 안 왔다.
드디어 버스가 와서
그분과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사이에 그 버스 정류장엔
사람이 많아졌다.
짐이 되는 커다란 우산은 챙기지 않았다.
푸하하하 여기서도 난 꼭 92세를 붙인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연세가 많으신 것 같으니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