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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Oct 22. 2024

우리 주변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엄마랑 서울 가는데 새벽이기 때문에  

남편은 우릴 데려다주지 못한다.

공치는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가 정말 너무 많이 온다.

그래서 골프는 취소되었다.

그러나 이 빗속에 역까지 가는 것도 무리다.


착한 나는 언제나 혼자 가거나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날은

기껏해야 리무진 타는 곳까지만

태워달라고 한다. 


아니 감히 싸모님 행차에

역까지 모셔다 드리지 않는다고?


간이 배 밖에 나온 거 아니냐며

친구들이 놀린단다. 그래도

착한 나는 언제나 

날이 맑으면 그냥 혼자 가고 

날이 궂으면 리무진 타는 곳까지다.


괜히 고생할 필요 없어.


그런데 이번엔 정말 비가 많이 오고

92세 엄마도 계시기에 그가 우리를 데려다준다. 


역까지? 는 아니고

리무진 타는 곳까지 만이다. 

올빼미형인 남편이 얼마나

새벽이 힘든지 잘 아니까

내가 그렇게 요구한다. 


나가면 위험하겠지?


길 위에 차를 세우고 운전자가 

내리는 게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그는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있다. 


그래도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홀로 맞으니 쫌 남자가 

너무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괜찮은데

엄마는 어떡하지?


마침 정류장에 우산이 하나 있다.

그리고 안쪽으로 아주머니가 한 분 계신다.


저 이 우산 잠깐만 쓸게요.

어르신 계셔서요~


흔쾌히 쓰라는 듯 활짝 웃으신다.

다행히 엄마는 그 우산으로

정류장 안으로 모실 수 있었다.


차 안에 안전하게 가만히

앉아있던 남편은

문이 다 닫히자 떠났다.

좀 너무 한 것 같아서

난 그냥 인사도 하지 않았다.

비가 많이 와서 할 수도 없었다.


그도 그게 미안했을까?

금방 전화가 온다.


왜?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그래서 뭐. 어쩌라고?

흥 모든 건 타이밍이라는 게 있는 거다. 

그는 이미 내게 점수를 팍 깎였다.


앗. 그런데 너무 일찍 왔다.

리무진은 21분 후에 도착한다는데

정류장 안 의자는 비에 흠뻑 젖어

아무도 앉을 수가 없다. 


아무도 앉지 않고 모두 서있다.

난 휴지를 꺼내 물기를 닦았다.

엄마랑 나랑 두 명 앉을자리.

아니 우산 빌려준 분까지 세 자리를

빡빡 닦았다.


그리고 엄마를 앉히고 그분을 앉으시라 했다.

그러나 금방 버스가 온다며 괜찮다고

널찍하게 앉으라며 사양한다.

아주 환한 미소를 보내주시면서.


몇 번 그렇게 앉으세요

버스 금방 와요 괜찮아요

하다 보니 친해졌다.

버스는 그렇게 오래 안 왔다.


드디어 버스가 와서

그분과 인사하고 헤어졌다.

그사이에 그 버스 정류장엔 

사람이 많아졌다. 


이제 리무진이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문제는 비가 더 쏟아진다는 거다. 


비는 펑펑 쏟아지고 있는데 

아무리 기사님이 버스정류장에 

가까이 댄다 해도 

내가 맞는 건 괜찮은데 

엄마가 비를 맞게 생겼다. 


나는 큰 우산 말고 그냥 비상용으로 

작은 양산 하나만 넣어왔기 때문이다. 

내리면 남동생이 픽업을 나오니까 

짐이 되는 커다란 우산은 챙기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하는데 

바로 앞에 젊은 학생이 

우산을 들고 있다. 나는 부탁해 본다. 


우리 엄마가 92 세인데

비를 맞으면 안 돼서 그러는데 

제가 짐이 있어서 부탁 좀 드릴게요.

차가 도착하면 엄마만 좀 안전하게

비 안 맞고 올라가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푸하하하 여기서도 난 꼭 92세를 붙인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연세가 많으신 것 같으니까. 하하

학생은 말은 없이 고개만 끄떡인다. 


감사합니다. 


내가 인사하는데 차가 왔다. 

나는 기사 아저씨께 


2명이요~


크게 외친다. 비는 쏴아 쏴아

그 사이에도 무지막지하게 쏟아진다.

아저씨가 카드 찍는 곳을 2인분으로 해 놓았을 때

엄마를 먼저 올려 보내고 내가 짐을 들고 올라갔다. 


그 총각은 우리 둘이 다 탈 때까지 

우산을 씌워줬다. 너무 고맙다. 

그래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데

비를 아주 조금만 맞고 

리무진 버스 타는 데까지 성공했다. 

우리 주변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


(사진: 꽃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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