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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14. 2019

울산 울기등대

서울에서 내려온 여고 후배랑




여고 동창회를 가면서 알게 된 후배 S는 나와 급속하게 친해진다. 총동문회 임원 수련회에서 처음 만날 때 내 앞에 앉은 인연이라고만 치부하기엔 그때 같은 테이블에 십여 명이 있었는데 왜 유독 S와만 매우 친하게 되었느냐 하면 설명이 안된다. 그러니까 사람은 무언가 통하는 그 무엇이 있으면 서로 느낄 수 있는 게 확실한 것 같다. 그렇게 인연이 된 S가 울산에 온다. S를 통해 알게 된 울산에 사는 그녀의 동기 M과 함께 S의 울산 맞이를 한다.




뭐? 기차를 놓쳤다고!


딱 1분 차이로 기차가 떠나버렸단다. 수서역이 너무 복잡해 아슬아슬 코앞에서 놓쳤다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강남에서 수서 가까우니 여유 부리다 출근차량에 밀려 놓쳤나 보다. 전철을 타지! 거기서 택시를 타냐. 그렇다고 그냥 가게 할 수 있나. 부랴부랴 비행기를 알아보고 겨우 한 자리 찾아낸다. 열차는 거의 모두 매진 하루 종일 빈자리를 찾을 수 없는데 비행기는 남아있다. 그만큼 이젠 비행기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고속열차를 이용한다. 나부터도 비행기에서 고속열차로 바꾸었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새벽부터 설쳐댄 S를 우린 겨우겨우 울산공항에서 만난다. 시작부터 어마어마하게 땡볕이다. 헉헉 지친 그녀를 M과 나는 무조건 바다로 데리고 간다. 열 좀 식혀라~



이 땡볕 무더위에 수서역에서 김포공항으로 정신없이 뛰었을 S를 울산 어디부터 구경시킬까? 갈등하던 M과 나는 다른 거 없다 헉헉 지쳐 내려온 S를 끌고 무조건 먹이고 보는 거다. 하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열차로 비행기로 옮기고 어쩌느라 진작부터 시작되었어야 할 우리의 여행이 이미 점심시간이 되어버린 탓도 있다. 회를 먹으면서도 눈앞에 쫘악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는 정자 바닷가 갯바위 횟집으로 가 아주 깔끔한 상차림의 신선한 회를 대접한다. 땡볕은 여전히 무지막지 그 열기를 쏟아붓는다.




 어차피 나가봐야 너무 더워서 꼼짝도 못 해. 시원한 횟집에서 코앞의 바다를 보며 끝도 없는 우리의 수다를 즐기고 있을 즈음 갑자기 들이닥치는 단체팀. 자그마한 그 횟집 한쪽을 차지하고 앉더니 와우 박수에 웃음에 얼마나 시끄러운지 우리 셋이 가깝게 붙어서 이야기하는 데도 서로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하이고. 나가 잣. 아무리 무시무시 땡볕이라도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 있을 수 없다. 박차고 나온다. M과 내가 준비한 첫 코스. 울기등대!




와우 소나무 숲이 대단하네요. 어쩜 이렇게 나무들이 굵고 멋있어요? 와우 너무 좋아요~ 입구에서부터 S의 감탄이 쏟아진다. 여기가 봄이 되면 완전 벚꽃터널로 변해. 저 옆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아주 유명하지. M과 나는 S의 감탄에 신이 나 대왕암 공원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를 입으로 쏟아내기 바쁘다. 여기 정말 처음이라고? 그럼 기대하셔. 이제 이 나무들이 끝나면 바다가 나온다. 절경의 바다. 소나무 숲을 걷는 우리 발걸음은 가볍다. 바다의 기암절벽과 해송림을 보여줄 마음에 우리도 둥둥 들떠 발걸음이 날아간다. 하하




1906년 일본이 동해와 대한해협을 장악하기 위해 지은 거야. 동해 남부 연안의 선박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지. 6미터짜리 등탑이었는데 1972년 3미터를 증축해. 1987년 주위 소나무가 너무 커지니까 상대적으로 너무 작아 보이는 등대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 못하는 거야. 다시 위에 더 올릴까 하다 아예 새로 짓지. 대신 옛날 거는 기념으로 놓아두고 말이야. 하하 지도를 보여주며 울산의 M과 나는 서울의 S에게 울기등대 설명하느라 바쁘다.



울기등대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 곳을 지키는 문무대왕비의 넋이 나라를 지키는 거대한 용이 되어 문무대왕과 같이 동해를 지키고 있었지. 그러다 대왕암 밑으로 잠기면서 용신이 되어 그 바위를 대왕바위 즉 이 곳 말로 댕바위라 부르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 곳을 댕바위가 있는 산이라 하여 댕바위산이라고 불렀지. 그러다 일본인들이 1906년 러일 전쟁 이후 이 곳에 등대를 설치하면서 울산의 끝이라는 뜻을 그대로 옮겨 울기라고 부르게 되지.


蔚 풀이름 울

埼 갑 기


그런데 요 거이 일제 잔재 아니야. 그때 일본인들이 지은 거니까. 그럴 수는 없지 않겠어? 2006년 100주년을 기념해 요렇게 이름을 바꾼다는 말씀.


蔚 풀이름 울

氣 기운 기


즉 우리말로 발음은 같지만 속 뜻은 다르게 변하는 거지. 하하



안내석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니 와우 땡볕에 헉헉 지친 우리 몸을 쫘악 식혀주는 시원한 에어컨 냉방. 오호 요기가 무엇하는 곳이냐? 그러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박조종 체험관이라는 곳이 있어 들어가 보니 커다란 화면이 세 개로 둘러쳐져 있고 두두두두 배의 선장이 되어 저 멋진 바다로 쭈욱 쭈욱 운전해나가는 것인데 여기 사진 속 화면이 불그죽죽 흐리멍덩한 것은 운전하는 우리가 어딘가에 부딪친 것이다. 전진 후진으로 조정하는데 어디 부딪치지 않고 쫙쫙 뻗어나가면 시원한 바다가 등장한다. 그런데 바다로 쫘악 뻗어 나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자꾸 어딘가에 부딪친다.   


그리고 곁에 있는 4D 영상체험관. 문을 빠꼼히 열어보니 아무도 없는데 에어컨 빵빵 추울 지경으로 시원하다. 아무도 없는데? 아, 여기 시간이 있네. 10시 11시 2시 3시 4시 상영한다고 쓰여있다. 지금 3시인데? 상영 안 하나? 관리실에 전화해봐. 전화해도 받지 않아. 영화는 안 보더라도 여기 너무 시원하고 좋다. 안에 들어와서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자. 하여 우리는 시원한 그 방에 자리 잡고 신나게 수다 떨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너무 추워서 더 있을 수가 없다.


아무도 없는데 왜 이렇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는 것일까? 이 땡볕 무더위에 추워서 못 견뎌 나올 지경으로? 우리는 의아해하며 나왔지만 나중에 홈페이지에서 안다.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만 이 영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예약이 없어서라면 왜 에어컨을 그리 빵빵하게 틀고 있을까 와 왜 그런 안내가 현장에는 없으며 관리실은 왜 또 전화를 받지 않을까를 의문으로 따끈따끈한 밖으로 나온다. 따뜻한 햇빛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드디어 바다! 땡볕이지만 바닷바람이 아주 거세다. 시원하다 못해 몸이 통째로 날아갈 지경이다. 뜨거운 햇빛을 가리려 양산을 준비했지만 전혀 쓸 수가 없다. 너무 바람이 세서 홀라당 뒤집히기 때문이다. 그래. 비타민D 부족이라는데! 당당하게 쨍쨍 내리쬐는 강한 햇빛 아래 얼굴을 통째로 드러내고 씩씩하게 걸어간다. 하하 우리 후배들 잘 걷네~ 착착 착착 언니~ 너무 멋있어요~ S의 쏟아내는 감탄에 그럼 그럼 여기가 처음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어.


제가 처음 울산 왔을 때 남편이 보여준 곳이 여기예요. 그때 얼마나 그 아름다움에 놀랐는지. 서울 사람 M이 남편 따라 울산에 정착할 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들 교육때문에 일부러 지방에서도 올라올 판인데 가족 모두가 울산으로 가다니? 뜯어말리던 친구 이야기를 나도 한다. 무슨! 가족이 함께 해야지! 하며 다 끌고 내려왔던 나. 하하 그런데 울 아들 서울대학교 갔다. 해가면서. 어디가 문제가 아니야 공부는 자기 하기 나름! 푸하하하 무얼 아이 때문에 가족이 쪼개져서 사냐. 지난 이야기들로 우리의 수다는 또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그렇게 울산에서 아이들 공부시키던 이야기를 할 때 S는 강남 한 복판에서의 아이들 교육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리고 보니 우리 모두 하나씩은 서울대 보냈네~ 하하 서울대 보내기까지의 무용담이 이어진다. 언제나 즐거운 아이들 이야기.




앗, 저기 해녀가 있어요. S가 놀라 소리친다. 그렇지 그렇지 저 파라솔을 봐. 해녀가 직접 따온 전복을 저기서 먹는 거야. 지금 휴가철이라 아주 많네~ 바닷물에 둥둥 떠있는 해녀도 구경하고 장사진을 치고 있는 즉석 먹거리 장터에도 신기한 눈길을 자꾸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맛있는 회로 배를 가득 채우고 온 터라 아무리 해녀가 금방 따온 신선한 전복으로 유혹해도 전혀 식욕이 당기지 않는다.




앗, 저기 사람이 있어요. 헉. 정말! 자세히 보니 기암절벽 아사람이 있다. 외국인이다. 수영 팬티 하나만 걸치고 잔잔한 파도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와우. 도대체 어떻게 저 아래까지 내려갔을까? 위험할 텐데. 걱정하는 내게 S가 말한다. 크로아티아에 가니 바로 여기처럼 이런 바위로 된 해안인데 모두 바다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대로 내려가 수영하다 올라오고는 하던데. 주변에 멋진 호텔들도 있고 그 호텔에서 직접 바다로 내려가기도 하던데 이런 보물 같은 곳이 왜 숨겨져 있을까요. 저는 정말 처음 봐요. 너무 멋져요. TV에서 소개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닌 게 아니라 우리의 바다. 너무 멋지다. 게다가 전혀 모르는 사람일 수 있는데 동창이라는 것으로 엮어져 이어지는 새로운 인연 또한 얼마나 멋진가.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만나도 통하는 사람은 통한다. 하루를 온통 이야기에 쏟아부을 수 있는 만남의 인연이 어디 그리 흔할까. 그저 발 닿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함께 이야기 또 이야기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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