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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Aug 31. 2019

은퇴한 남편의 입가에 미소가

그는 자꾸 인연이라고 말했다. 인연 특별한 인연. 그런 것 같다. 정말 특별한 인연. 그는 김 과장이다. 어떻게 된 이야기냐면, 


더울 것 같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는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러나 3개월로 끊은 골프연습장 회원권이 9월 초에 마감되고 그리고 아직 여러 장 남아있다. 그러니까 서둘러서 가야만 한다. 아깝지 않으려면. 그래서! 많이 귀찮기는 하지만 서로 격려하며 남편과 나는 골프연습장으로 향했다. 평일 한시까지는 두 시간이고 그 이후엔 90분이므로 막 서둘러 겨우 한시 일분 전에 도착한다. 일분 전! 딱 일분 전이라니 하이고 아슬아슬 그 스릴이 그야말로 만점이다. 야구 세이프가 이 정도일까. 푸하하하 그렇게 딱 일분 차이로 두 시간 자리를 받아 들고 타석으로 들어간다. 음하하하


앗 사장님!!! 


남편과 내가 나란히 공 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가 반갑게 소리친다. 남편이 대기업에서 나와 협력업체를 운영할 때 그 회사 직원이었던 분이다. 말띠 아줌마라고 그때 회사 다닐 때 꽤 유명했던 아줌마들 중 한 분이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옛날이야기를 잠깐이나마 나누는데 유명했던 말띠 아줌마들 중 세 분이 은퇴 후 지금 이 골프연습장에서 함께 청소를 담당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들 모여 즐겁게 청소일을 하고 계셨다. "사장님~ 사장님~ 그때가 참 좋았어요" 그때를 회상하며 그중 한 분이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며 거기 저녁때 모이자며 다른 스케줄 있냐고 묻는다. "만사 제치고 가야지요~" 우리는 함께 저녁에 그 작은 식당에 모이기로 한다. 


무엇을 사 갈까? 휴지? 그건 너무 실질적이고. 과일? 식당 하시는 분인데 더욱 맛있는 걸 잘 사시겠지. 그래서 그냥 작은 케이크를 사 가기로 한다. 남편과 케이크를 사들고 알려준 식당에 찾아가니 "사장님~" 하면서 식당 주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아주 작은 식당. 들어가자마자 모두 마루로 되어있고 도무지 5 테이블에 작은 방하나가 있을 뿐이다. 가정식 백반을 하고 계셨다. 골프연습장에서 퇴근하고 오는 그 세 분은 그때 막 왁자지껄 들어온다. 그곳이 그때 그 회사 다니던 분들의 아지트가 되고 있었다. 


우리를 위해 메뉴에도 없는 갈치조림을 한 상 너무도 맛있게 차려주신다. 소주가 빠질 수 없지요? 소주와 맥주가 곁들여지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는데 누군가 들어선다. 바로 그 김 과장이다. 우리는 막 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김 과장이 항상 퇴근 때면 와서 맥주를 마시고 갔는데 요즘은 몇 개월째 전혀 안 보인다고 그 말띠 아줌마들이 나의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김 과장이 그때 막 들어선 것이다. 


그 역시 망설였단다. 갈까 말까. 그런데 오늘따라 무언가 마음도 꿀꿀하고 그냥 가서 한잔이나 하고 가자며 망설이다 마지막 순간에 발길을 돌려 왔다는 것이다. 처음엔 우리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가 나중에야 남편과 나를 발견하고는 아이코 사장님, 사장님께서 어떻게! 등등 하하 놀라서 인사하느라 난리다. 어쩐지 처음엔 우리를 보고도 전혀 아는 척도 없이 그 말띠 아줌마들이 이리 와서 앉으라는 데도 에이 내가 왜요. 하던 그. 당연히 다른 손님들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뇌의 구조라는 것이 선입견으로 내가 모르는 사람 사장님이 이 곳에 올리는 없다고 되어있으니 얼굴을 보고도 하하 그렇게 전혀 정말 전혀 생각지도 않으니 안 보이더라며 매우 신기해한다. 


그렇게 우리도 그도 말띠 아줌마들도 정말 큰 인연으로 다시 만났다. 소주가 많아지고 맥주가 많아지고 그 옛날 남편 은퇴하기 전 이야기로 추억이 무르익더니 급기야 노래방까지 가게 된다. 그때 회사 때 회식 후에 늘 그랬듯이. 그때가 참 좋았어요. 지금은 시설은 무척 좋아졌지만 너무 삭막해요. 그땐 정이 있었어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아직 현직인 김 과장이 마구 옛날을 그리워하고 말띠 아줌마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때가 좋았어요를 외친다.               


노래방에서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고 그들의 뽕짝을 함께 부르고 우리 노래도 부른다. "아,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요." 내 귀에 대고 말띠 아줌마 중 한 명이 속삭인다. 내일 새벽에 골프연습장에 출근해야 하는 그들이 그렇게 늦게까지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좋다고 한다. 이건 특별한 인연일 수밖에 없다고 모두들 말한다. 


모든 것 끝나고 헤어진 뒤 우리 차로 향하기 위해 까만 밤 신호등 앞에 서있는데 "그때가 들 참 좋았나 봐." 은퇴한 남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럼~ 당신이 이끄는데 당연하지!" 하하 나도 매우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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