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오늘 도서관 가도 될까?
망설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아직 이른 새벽 옆에서 자고 있는 그가 뒤척이는 틈을 타 물어본다. 왜 망설였느냐. 난 그저께 이미 하루 종일 다녀왔기 때문이다. 또 간다 하자니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그렇게 미안할게 무어있나 그도 그의 하루를 책임질 줄 알아야지 하는 생각도 있고 그래도 부부가 함께 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고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래도 한번 물어본 것이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부부가 함께 하는 게 중요하지." 아니나 다를까 그런 대답이 돌아온다. 거기 어떻게 더 토를 달고 그를 설득하려 하다가 그만둔다. 그래 집에 있자.
아, 그런데 나는 도서관에 가면 정말 글이 잘 써진다. 책도 참 잘 읽힌다. 그리고 학창 시절처럼 그냥 주야장천 앉아서 읽고 쓰고 할 수 있다. 어느새 나의 궁둥이는 그렇게 무거워졌다. 밥때가 되면 식당에 간단한 뷔페가 단돈 5천 원에 쫘악 마련되어있고 공부하는 학생들로 북적북적한 그곳에 있으면 나도 마치 정말 학생이 된 듯 그리운 학창 시절로 돌아가 맘대로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트북을 다다다다 두들기기 미안하여 살살 숨죽이며 작게 아주 작게 두들기고 했지만 처음으로 디지털자료실이라는 곳에 가보니 일인용 부스라고 둥글게 칸막이가 둘러쳐진 곳에 온갖 콘센트가 갖춰져 있어 거기 콕 박혀 글을 써보니 아, 너무 좋다. 그래서 오늘도 아침 일찍 그곳에 가고 싶어 살짝 운을 떠보지만 역시 그는 내가 곁에 있기를 원한다.
그는 아침잠이 많다. 그러니까 그가 잠든 새 내가 그냥 박차고 나갈 수도 있다. 아, 나의 맘은 정말 그러고 싶다. 써야 할 밀린 글도 많고 읽어야 할 밀린 글도 많기 때문이다. 하루 온종일 도서관에 처박혀있다 오면 그 많은 것들이 꽤 많이 해소되는데 말이다. 그냥 갈까? 그냥 휙 가버릴까? 내가 그의 하루까지 책임져야 할까? 그는 그 나는 나! 그는 그의 인생 나는 나의 인생! 따로 또 같이! 그것이 노후를 현명하게 살아내는 방법 아닐까.
아, 그가 함께 도서관에만 가면 정말 모든 게 해결인데 그는 항상 "이 좋은 집 놔두고 왜?" 그러면서 집에 콕 박혀있다. 집에서 음악 듣고 책 읽고 이젠 모두 멀리 떠나 있는 아들들과 즐겨하던 수호지라는 컴퓨터 게임도 하고 카드게임도 하고 바둑 TV를 보고 골프 TV를 보고 맛있는 것 먹고 오후가 되면 집 앞의 멋진 호숫가를 걷고 그런 일상을 너무나 좋아한다. 거기에 아내가 꼭 함께 해주기를 원한다. 집에서! 함께! 같이 밥해 먹고 같이 걷고 같이 책 읽고 같이 TV 보고.
그런데 나는 집에서는 무언가 집중이 안된다. 하릴없이 조국 나오는 TV에 멍 빠지기도 하고 가끔은 드라마에도 빠지고 그리고 끝도 없이 먹거리에 손이 가고. 아, 그런 내가 싫다. 난 도서관에만 가면 그야말로 정신 번쩍! 이것저것 주워 먹고 싶어도 도서관 안에서 음식은 금물이므로 절대 안되므로 자동 빵으로 나의 뱃속은 깔끔해지고 그리고 무엇보다 집중 집중 그 대단한 집중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런데 그렇게 나의 생각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주부니까. 그의 밥을 해결해주어야 하지 않느냐 말이다. 물론 영악한 나는 그를 잘 길들여 그가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도 수준급으로 만들게 만들었다. 이젠 그의 마지막 손길이 가야만 아주 맛있어지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되어버렸다. "내가 아무래도 전생에 세프였나 봐~" 하면서 그는 그 찌개 만들기를 즐긴다. 나는 기초를 만들어주고 그가 마무리를 한다. 그런 소소한 일상을 그는 너무나 즐긴다. 산책도 밥 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곁에 아내가 있어주길 바란다. 그런데 난 종종 나만의 특별한 날을 만들고 싶어 한다. 글 쓰고 읽는 것에 힘 안 들이고도 도서관에만 가면 절로 집중이 되니까 틈만 나면 난 도서관을 노린다. 아, 그런데 이렇게 그저께 가고 또 가려니 많이 망설여진다. 어째 의리상 가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은퇴하고 24시간 집에 있는 그와 오늘은 함께 해야 할 것 같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그 말이 참으로 섭섭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할 말도 없다. 그렇게 시간을 들인다면 그것이 무슨 돈으로 연결이 되어야 어쩌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모든 곳에 그냥 취미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가 그것으로 어떻게 돈을 턱 벌어온다면 의미가 있을까? 그 말이 많이 섭섭하긴 하지만 그의 인생관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돈도 안 되는데 허구한 날 노트북 붙들고만 있으려는 아내가 영 못마땅할 수도 있다. 나 또한 정말 비생산적인 것만 같은 오락게임에 늘 붙어있는 그가 영 못마땅하듯이 말이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복잡하다. 그래! 오늘은 그가 원하지 않으니 그냥 집에 있기로 하자. 집에서! 집중 잘 집중하도록 노력해보자. 아, 그런데 그런 거 집에서 참 잘 안된다. 그랑 그냥 노닥거리다 보면 하루해가 어느새 홀딱 져버리곤 한다. 끝없는 먹을 거 집적거림에 아, 하릴없는 빈둥빈둥 에 TV 드라마까지 그렇게 빈둥거리다 아차 어느새 밤이 되면 그런 내가 싫어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무조건 박차고 도서관 갈걸!
그래도 오늘은 집에 있자. 그의 비위를 살살 잘 맞추어주자. 집에 함께 있는 게 최고 행복이라 생각하는 그와 함께 하자. 밥도 같이 해 먹고 산책도 같이 하고 끝없는 먹거리 손대는 것도 함께 하고 TV에 넋 놓고 깔깔대는 것도 같이 하고 빈둥빈둥 그래 함께 하자. 대신 오늘은 그 와중에도 반짝 집중하여 글 쓰는 것에 읽는 것에 성공해보자. 그래.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