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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Sep 03. 2019

누나! 시원한 맥주!

누나! 시원한 맥주!


캐나다에 사는 동생이 왔다. 업무 차 오는 그는 주로 호텔에 묵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이렇게 엄마 집으로 달려온다. 우연히 내가 서울 오는 날과 겹쳐지면 우리는 그 옛날 아버지를 추억하며 한 잔의 밤을 보낸다. 어제도 그랬다. 난 서울에 왔고 내 동생은 마침 호텔에서 나올 기회가 있었다. 엄마 집으로 달려오며 내게 전화한 그는 다짜고짜 누나! 시원한 맥주! 한다. 난 집 앞의 마트로 달려간다. 오늘은 모처럼 나랑 동생이랑 엄마랑 아버지를 추억하며 술파티를 벌이는 날. 하하 여기서 간헐적 단식 다이어트는 당연히 물러가라!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규칙은 깨지라고 있는 것. 푸하하하 내 동생이 어떤 동생인가. 


1965년쯤이었을까. 응암동 우리 집은 단독주택 6채가 나란히 있는 곳이었다. 세 집 세 집 양 쪽으로 있는 가운데 커다란 길에서 우리는 매일 신나게 놀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다방구, 술래잡기, 땅따먹기, 망까기, 고무줄, 구슬치기, 팔방 치기...  얼마나 재미있는 놀이들이 많았던가. 각 집에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아주 많았다. 그 커다란 골목길엔 언제나 친구들이 가득했다. 우리는 저녁때면 모여서 놀고 엄마가 밥 먹어라~ 하면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또 나와 놀고는 했다. 그런데 나에게는 단짝 친구가 있었다. 그 애와 나는 어떻게든 나의 남동생을 떨구고 우리끼리 놀러 가는 게 우리의 최대 목표였다. 누나 화장실에 쉬하러 간다~ 그러면서 화장실 가는 척 내뺀다든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지만 그 어떤 우리의 책략에도 끝까지 따라붙던 나의 남동생이 오늘 엄마 집에서 만나는 바로 그 동생이다. 나보다 두 살 아래. 하하


난 테라를 맛 보이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요즘 인기 최고라는. 너 아직 못 마셔봤지? 하면서. 아버지 살아계실 땐 술 한 잔 못하시던 엄마도 이제 맥주 한잔은 거뜬히 하신다. 진작 술 좀 마실 줄 아셨다면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우린 엄마랑 쨍그랑 잔을 부딪치며 자꾸 그런 말을 한다. 내친김에 노래방까지 간다. 아버지의 18번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다. 


백마는 가자 울고 날은 저문데 

거친 타관 길에 주막은 멀다


옥수수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 

또다시 고향 생각 엉키는구나 

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아, 사범대학 시절 도무지 쌀 한말 가지고 잠깐만 숨어있으라는 부모님 말씀을 끝으로 그렇게 홀로 남한에 오셨다는 아버지. 명절이면 항상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지으셨다. 그런데 가사가 참 멋지다. 


고향을 등에 두고 흘러가기는 

네 신세 내 신세가 다를 게 없다 


끝없는 지평선을 고향이거니 

인생을 새 희망을 바라며 살자 

백마야 백마야 울지를 마라


아버지는 오로지 이 노래만을 부르셨기에 이 노래를 불러도 들어도 우리는 퍼뜩 아버지 생각이 난다. 우리에겐 할머니 할아버지가 없다. 명절이면 열차 타고 버스 타고 이동하는 거대한 귀향 물결은 그저 부러운 장면이기만 했다. 그렇게 귀한 2대 독자인 아버지는 도무지 쌀 한 말 지고 홀로 남한에 와 이 세상을 견뎌내셨다. 친척이 없는 우리는 오로지 우리 가족뿐이다. 명절이면 아버지는 오빠 나 동생 우리 삼 남매에게 세뱃돈을 두둑이 주시고 그걸 밑천으로 가족 돈내기 화투를 벌이셨다. 화투고 술이고 그런 것은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배워 야한 다시며 아버지 술상에 꼭 우리도 앉혔고 화투도 함께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맛있는 것 먹어가며 스릴 만점의 돈내기 화투를 엄마 아빠랑 했다. 민화투에서 나이롱 뻥까지. 고스톱은 한참 후에 나온 것 같다. 여하튼 그런데 미국에 있는 오빠도 캐나다에서 온 남동생도 나도 엄마도 모두 모두 우리의 그 시절을 생각하면 돈내기 화투 하던 때를 가장 즐겁게 제일 먼저 떠올린다. 


세월은 그렇게 빨리빨리 흘러간다. 그 누나만 따라다니려던 개구쟁이 내 남동생이 어느새 이달 말이면 환갑이다. 세상에. 우리가 추억하는 어릴 때 우리 엄마 아빠 나이보다 훨씬 나이 든 우리. 또 한 해가 간다. 그렇게 우리는 나이 들어간다. 그런데 아 너무 배가 부르다. 아니 너무 취한다. 87세 엄마랑 63세 나랑 61세 남동생이랑 옛날 옛적 50여 년 전을 추억하며 맘껏 술에 노래에 취한다. 언제까지 이런 특별한 날이 가능할까. 어머니 십 년은 무조건 더 사셔야 합니다. 제가 10년은 더 일할 거거든요. 그때마다 엄마 집 올 거니까요. 아, 엄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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