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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Sep 09. 2019

하루의 선택

잠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푹 자고 일어나면 그 전날 밤 어떤 일을 했건 싸악 잊히고 새 아침이 짱 밝아있다. 그리고 나의 선택을 기다린다. 자, 오늘 하루를 특별한 나만의 멋진 날로 만들 것인가. 그냥 이렇게 저렇게 흘러가버리는 그저 그런 날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무언가 자학하며 자신을 매우 초라하게 만드는 우중충 찌그렁바가지의 날로 만들 것인가. 그건 백지장 같은 나의 하루를 시작함에 있어 전적으로 나의 결정에 달려 있다. 


아,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선 하늘도 반짝반짝 새 하루를 선언하며 빛나고 있다. 맑고 파란 하늘이 난 참 좋다. 가을의 길목에서 파란 하늘이 계속 이어질 것임을 선포하는 듯하다. 여전히 나의 남편은 쿨쿨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나와 남편은 이게 참으로 다르다. 아니 철저히 반대다. 신혼 초엔 이 잠자는 주기가 맞지 않아 매우 힘들었다. 맞벌이를 하던 시절 기진맥진 회사에서 지쳐 돌아와 어찌어찌 저녁 해 먹고 치우고 나면 난 그대로 곯아떨어져 쿨쿨 자고 새벽 일찍 반짝 눈을 뜬다. 그러면 곁에서 쿨쿨 자고 있는 남편을 살살 찌르고 귀찮게 하며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아침에는 단 일분일초가 아까운 남편,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그래도 그 젊은 날엔 어떻게든 나에게 맞춰주려 했지만 그의 그런 노력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는 잘 안다. 아침은 그에게 참으로 힘든 시간이다. 그래서 서울 갈 때 혹 내가 짐이 많다 해도 이제는 은퇴하여 시간이 많아 얼마든지 나를 역까지 태워줄 수 있겠지만 또 기꺼이 그럴 남편이지만 나는 혼자 간다. 아침이 새벽이 그에게 얼마나 힘든 줄을 아니까. 역까지 가는 리무진이 바로 집 앞에 오는데 생으로 남편을 그 언양까지 고생시킬 필요 전혀 없다가 나의 주장인데 주변 친구들은 말한다. "뭬라! 역에도 안 태워준다고라! " 하하 그들은 움직였다 하면 역까지 태워주고 태워오는 것은 은퇴한 남편의 기본 임무라 생각하는 듯하다. 하하 그러나 난 실리적이며 합리적이다. 쓸데없이 나의 서방님 고생시키지 않는다. 엣 헴. 오죽하면 그는 "난 지금이 내 인생에서 제일 좋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까. 그만큼 그는 아침잠을 즐긴다. 출근 압박 없이 맘껏 자고 싶은 대로 자는 게 인생 최고 낙이라니. 에구. 


난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고픈 맘도 있고 또 '평생 일한 당신 맘껏 쉬세요~' 하는 맘도 있기에 조용조용 그의 잠을 절대 일부러 깨우지 않는다. 그렇게 내버려 두면 그는 이르면 10시 어느 때는 12시까지도 그렇게 쿨쿨 잠을 잔다. 최고 기록으로 오후 두시반에 일어난 적도 있다. 물론! 새벽형인 나는 초저녁에 잠을 자지만 그는 그야말로 늦은 밤형이라 빨라야 새벽 2시 또는 새벽 세시 네시 되어야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모든 게 그야말로 딱 반대다. 하하 그 딱 반대인 모든 걸 어떻게든 같게 만들려 했을 때 싸움도 많았고 지금 생각하니 그야말로 불행 시작이었다. 어느 순간 '그래. 그는 그! 나는 나!' 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꾸려 하지 않으면서 행복 시작이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가 바꿀 수도 스스로 바뀔 수도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결국엔 자기 본성대로 간다. 그저 편하게 자기 태어난 그대로 사는 게 최고 같다. 하하 우린 그렇게 각자 자기 편한 대로 살고 있다. 따로 때로는 같이 그렇게 은퇴한 남편과 24시간 함께 지내고 있다. 자기 생긴 대로 지극히 편하게 하하.


아, 글쓰기란 참 괜찮다. 비집고 들어오려는 무언가 부정적인 생각 불안한 걱정 그런 것들을 깡그리 차단할 수가 있다. 마법과도 같다. 그냥 이렇게 나의 마음을 손가락 가는 대로 마구 두들기다 보면 나의 원래 본성 그 어떤 모범생 같은 기질이 다시 살아나며 생산적인 일들로 착착 나의 하루가 꾸려진다. 어젯밤 잠들기 전 침대 방으로 가져간 나의 책상을 통째로 말고 살짝 그 위의 노트북만 들고 나온다. 남편이 깨지 않도록 살살 아주 살살. 우리는 코스트코에서 아주 작은 운반이 가능한 일인용 테이블을 사다 놓고 아주 잘 쓰고 있다. 아무 때고 나의 노트북을 얹은 채 번쩍번쩍 들어서 책상에 앉은 듯 아무 곳에서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책상을 아침 일찍 일어나면 통째로 들고 나왔는데 오늘은 문득 앉은뱅이책상에 앉고 싶다. 그래서 그가 깨지 않도록 노트북만  들고 나와 우리가 밥 먹을 때면 한 상 차려 놓고 낑낑 들고 와 TV 앞에 자리 잡는 바로 그 밥상, 그걸 들고 와 쏘파 아래 바닥에 펼친다. 그리고 그 위에 노트북을 놓고 옆에 블루투스 작은 스피커를 놓고 나의 핸드폰으로 브런치로 들어가 차곡차곡 듣고픈 음악을 정리하고 있는 나의 음악 코너로 들어가 가장 최근 곡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그 긴 곡을 튼다. 


아, 완벽하지 아니한가. 베란다 창 밖에선 짹짹짹짹 새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우리 집은 19층 너무 높아 가끔 새들이 베란다 창가에 와서 앉았다 가기도 한다. 집 앞에는 초록 무성한 산이 쫘악 펼쳐져 있다. 그리고 바흐의 첼로곡 카잘스가 연주하는 너무도 아름다운 곡. 그리고 다다다다 나의 노트북 두들기는 소리. 오늘 우리 스케줄이 무언가. 오전에 남편과 함께 미장원에 가야 하고 오후에는 색소폰 연습에 가야 한다. 그 두 가지 말고는 자유다. 잠에 곯아떨어진 그의 쿨쿨 곤하게 잠자는 소리가 가끔 들려오기도 한다. 그래 난 오늘 행복을 택하리라.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나의 특별하고도 꽤 괜찮은 하루를 꾸며보련다. 2019년 9월 9일 월요일. 새 날이 밝았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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