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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Oct 13. 2019

울산 C.C. 오래 함께 할 것 같았는데

떠나는 그들이 너무 섭섭해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딱 그 노래가 생각난다. 오래오래 함께 할 줄만 알았는데~ 정말 섭섭해서일 게다. 그렇다. 오래오래 함께한, 또 오래오래 영원히 할 것만 같았던 분이 떠나간다. 무슨 말이냐. 이미 은퇴한 남편의 회사 동료분들은 울산이 고향이 아니면서도 연고지가 있는 서울로 가지 않고 계속 이 곳에 머물며 함께 공을 쳤던 것이다. 겨울이면 부부동반으로 함께 동남아시아에 가 오래 머물기도 했고 매 달 한 번씩 만나 함께 라운딩을 하며 하하 푸하하하 웃음을 쏟아내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분과 그의 아내가 서울로 간다. 오늘은 그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라운딩이다. 모두들 너무나 섭섭해한다.



덕분에 이번에는 부부 라운딩이다. 총 8 부부로 남자팀 2조 여자팀 2조로 항상 여자끼리 남자끼리인데 이번에는 그 팀과 더욱 많은 정을 나누었던 부부가 있어 부부 라운딩을 하게 된 것이다. 여자끼리 치는 게 잔소리 안 듣고 정말 재미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일까. 남편과 함께 치는데 화려했던 날들을 추억하며 황혼길만 같은 느낌이 무언가 애틋하다.



영차영차 어영차 라운딩을 앞두고 체조가 한창이다. 가을이 무르익어 오늘 날씨는 정말 좋다. 우리의 이별을 함께 기념하기 위함인가. 산 아래 하얗게 안개가 끼어있는 모습이 흡사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헤어질 땐 헤어지더라도 우리는 예전과 같이 영원히 함께 할 것처럼 운동한다. 언제 어떤 이별이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같이 하는 이 순간에 집중할 뿐이다.  



낙엽이 우수수. 어느새 가을이 훌쩍 다가왔다. 부부 함께 칠 때는 더욱더 집중해야 한다. 내가 너무 못 치면 남편은 괜히 덩달아 공이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룰루랄라 경치에 그저 감탄하며 스코어보다는 가을 풍경에 더욱 혹해 공을 빵빵 쳐대는 내가 남편은 아주 못마땅할 수도 있다. "연습 안 해?" 드디어 잔소리가 터진다. 세상에 연습이라니? 라운딩 하는 이 순간에? 천만에 만만에 말씀. 난 그런 거 안 한다. 공을 치고 남는 시간에 나의 마음을 다잡기에만도 바쁘다. 집중의 마음을 가지랴 즐거움 그 자체로 이 운동을 즐기랴.



가을이 무르익은 이 정취를 느끼랴, 샷을 할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인 듯 오로지 이 샷만이 내 인생에 존재하는 듯 그런 마음의 집중을 경험하는 그때가 얼마나 기쁜데. 언제 채를 휘두르며 발딱 일어나지 않도록 연습하고 있을 수가 있느냐 말이다. 워낙 모든 게 정 반대인 나와 남편은 공치는 자세도 많이 다르다. 항상 철저히 자신의 샷을 분석하며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남편과 달리 난 그저 나 자신을 믿고 빵빵! 그 자신감으로 샷을 날리려 애쓸 뿐이다. 샷 하는 그 순간들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려 집중하는 것 그게 최고라 믿는 나에게 남편은 자꾸 과학적 분석을 들이대며 내가 어찌어찌해서 공이 많이 나가지 않는가를 끊임없이 훈계한다. 난 이 정도 나가면 만족인데 말이다 더 잘 나갈 수 있는데 나의 폼이 틀려서 그 정도밖에 안 나간다는 것이다. 내참.  



남편이 한창때라면 흥! 흥! 흥체피를 날리며 톡 쏘아붙였을 수도 있다. 물론 내가 잘되라고 충고를 하는 거지만 라운딩에서의 충고는 그저 내겐 잔소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말이 되는가? 현장에서 어떻게 샷을 고치는가 말이다. 그러나 일부러 조언하는 그가 맘 나쁘지 않도록 "응 알았어 응 연습할게~ " 가 아니라 하하 난 좀 답답한 마음에 카트로 이동하면서 마침 남편이 없는 틈을 타 함께 하는 부부에게 투덜대기 시작한다. "라운딩 중에 샷 수정이 되는가요? 아니잖아요. 그런데 남편이 자꾸 연습 안 한다고 모라 해요. 그거 아니지 않아요?" 하하 당근 그쪽 부부의 동의를 얻어내고 하하 음하하하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현장에서 연습은 무슨!!!"으로 결론될 즈음 어느새 카트로 온 남편 "세계대회 봐라. 프로들도 라운딩 중 수시로 연습한다." 오홋 여기서 나랑 그녀랑 함께 소리쳤으니 "그럼 우리가 여기 왜 있어요. 프로하고 있지." 모 요래 감서 함께 마구 공격한다. 하하 푸하하하

 


"여보! 하늘 좀 봐. 정말 너무 아름답지 않아? 저게 양털구름일까?" 하하 모두의 공격을 이끌어내 문득 미안해진 나는 그의 심기를 하늘로 옮기게 하려 마구 호들갑을 떨며 하늘을 보게 한다. 내가 잘할 께. 잔소리는 제발. 하하 그렇게 부부가 함께 하며 집중의 마음을 유지하기는 아주 쉬운 것만은 아니다. 잔소리는 잔소리대로 한쪽 구퉁이에 잘 치워두고 내 나름의 집중의 순간을 즐기는 묘수가 필요하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다.



"힘 빼고! 톡 치지 말고 끝까지 밀어주어!" 상대방 부부도 남편은 어떻게든 아내를 더 잘 치게 하기 위해 퍼팅에서건 샷에서건 잔소리가 이어진다. 서글서글한 성격의 그녀는 나랑 눈짓으로 살짝 싫은 걸 주고받을 뿐 나도 그녀도 우리의 서방님들께는 "네네 네네~" 하하 그렇게 순종하는 듯 그들의 충고에 무척 잘 따르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그녀와 나의 숙련된 남편의 잔소리에 대응하는 묘수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이 들어 부부가 함께 하는 골프가 이렇게 끈끈할 줄이야. 우리는 오늘 잔소리에 더 이상 서로 불편하지 않는 흐뭇한 골프를 즐기고 있다. 세월의 탓이리라.



아, 가을이 이렇게 절정인데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랴. 파란 하늘 하며 살살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뭇잎 하며 바닥에 흩날리기 시작하는 낙엽 하며 이렇게 또 흘러가버리는 세월을 생각하면 잠시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지금 이 순간 좋은 분들과 함께 하는 이 기쁨을 만끽하면 된다. 갑자기 함께 하는 부부가 막 좋아져 하릴없이 소리친다. "아, 하늘 좀 봐요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하하 나의 감탄에 금방 응답하며 "네, 좋아요. 너무 좋아요." 꿍짝을 맞춰주는 그녀. 하하 우리는 천상 콤비.


 


다행히 그녀와 나는 공을 치는 것에 있어서도 꿍짝이 아주 잘 맞고 있다. 일방적으로 나만 잘 친다든가 그녀만 잘 친다면 부부가 함께 칠 때는 그게 쫌 그렇다. 기분이 좋아질 래야  좋아질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한 번은 내가 너무도 기막힌 샷을 빵! 저 멀리 날려버리면 그에 조금 못 미쳤던 그녀가 다음 홀에선 또 빵! 나보다 서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내가 드라이버샷이 안되면 땡그랑 멋진 퍼팅으로 스코어가 맞춰진다든가 이런 식으로 하하 우리는 맘껏 가을에 빠져들며 샷을 즐길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아, 잠깐의 가을 라운딩. 가을이 너무 짧아 아주 귀한 순간이기도 하다.



곳곳에 등장하는 울산 C.C. 의 대나무 숲은 유명하다. 그 쭉쭉 뻗은 기상 하며 하늘 높이 치솟아있는 그 사이를 지나갈라치면 나도 그 기상을 받는 듯 하늘로 쭉쭉쭉쭉 마음이 두둥실 올라가버린다. 남편과 나, 그녀와 그녀 남편. 그리고 우리 서클의 그 왕년에 잘 나가던 대기업의 회사원들 그들의 청춘은 어디로 가고 OB를 달고 은퇴한 분들과 아내들. 우리 모두 모두 언제까지 이렇게 가을을 만끽하며 빵빵! 공을 칠 수 있을까. 흘러가는 세월은 아무도 어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언제까지일지 그런 것 따위를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지금 하고 있으면 하는 거다. 하하



곳곳에 잘 단장된 나무가 너무 예쁘다. 이렇게 사람의 손길이 많이 간, 정성이 들어간 듯한 나무와 잔디를 보고 있자면 기분이 막 좋아진다. 무언가 대접받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오늘 우리의 이순열 캐디는 아주 능숙하여 라운딩 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쓱 어느새 등장하여 필요한 채를 챙겨주고 진행에 빈틈이 없다. 하하 우리는 가져온 달걀과 쿠키를 나누어 먹으며 그녀가 타주는 베트남 G7 블랙커피와 남편들을 위한 믹스커피도 즐기며 푸하하하 즐겁다.



어느새 마지막 홀이다. 아, 너무 후딱 지나가버렸다. 행복과 기쁨은 적극적으로 느끼려들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나랑 그녀는 남편들과 함께 행복한 라운딩으로 정의를 내린 걸까. 푸하하하 깔깔 푸하하하 많은 웃음을 쏟아내며 비록 버디 한 개도 못했지만 즐거운 라운딩을 마무리한다. 공은 잘 되다가도 안되고 또 안되다가도 잘 되는 것. 하하 이 자연과 함께 집중의 멋진 시간을 보냈으면 그것으로 끝. 음하하하 멋진 라운딩이라 이름 지으며 마무리한다.

 


단체 촬영하는 것으로 우리의 아쉬움을 달랜다. 한번 인연은 끝까지 인연. 지금 잠시 서울로 떠나지만 "왠지 다시 올 것만 같아~ " 우리 모두는 그 떠나는 부부에게 그렇게 말하며 꽈악 껴안고 악수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어디에 있건 건강하게 잘 지내다 만날 수 있을 때 다시 만납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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