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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Oct 24. 2019

울산 엘르 미용실

지극히 편안한 곳


그르릉 그르릉 마치 코를 고는 듯 지극히 편하게 잠들어 있는 고양이. 이 고양이만큼이나 편하다 해야 할까. 엘르 미용실은 나와 남편의 지극히 편안한 휴식처 되어 어느새 이십 년도 넘게 다니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남편과 나는 그냥 이 곳에 간다. 물론 미리 예약을 하고. 들어가면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커피를 즐기는 원장님 덕분에 책이 있고 음악이 있고 그리고 특별한 커피가 있다. 그냥 그렇게 들어가서 하라는 대로 모든 걸 맡기고 마치 서점에 온 양 책꽂이에 꼽혀있는 많은 책들 중 맘에 드는 걸 골라 앉아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즐기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다 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엘르에서 매달 한 번씩 에너지 충전을 하고 있다. 내가 처음 엘르를 만나던 때 이야기를 해보자.


서울 토박이인 내가 남편의 지방 발령으로 처음 울산 땅을 밟은 게 아마도 1994년인가 그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우아 어느새 25년 전이 되어버렸다. 모든 게 생소했던 내게 미용실은 더 큰일이었다. 내 머리를 잘해줄 분을 찾아야 하는데. 머리 할 때가 다 되어 두리번 시내 곳곳을 다녀봤는데 모드니 백화점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는 울산시내 최고의 백화점이었다.) 옆에 자그마하지만 무언가 나를 끄는 곳이 있었다. 아담한 인테리어 때문일까? 아기자기 예뻤기 때문일까. 딩동 문을 열고 들어섰다. 얼핏 보기에도 잘록한 허리 하며 무척 날씬한 여자분이 누군가의 머리를 만지고 있었고 그리고 아무 특징 없는 그저 성실해 보이는 소박한 남자가 또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환한 햇살이 커튼을 통해 들어오며 실내를 은은하게 만들어서일까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맡기고 있는 분들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그냥 무언가가 나를 확 사로잡는다. 오홋 여기서 머리를 하잣. 


"예약제입니다."


헉. 그냥 머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1994년에, 서울에서도 웬만큼 명동의 큰 미용실 말고는 예약제가 흔치 않던 그 시절에 지방에서 예약제라니? 예약을 하지 않고 문득 들어온 나는 하고 싶어도 당장 머리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게 또 나를 확 사로잡는다. 커튼을 통해 살며시 비치는 부드러운 햇살과 심상치 않은 음악 대형 스크린 한쪽 벽에 빽빽한 음악 CD들 하며. 헉. 게다가 지금 당장 할 수도 없다 하니. 예약제라니! 오홋 바로바로 내가 찾던 곳. 당장 머리를 못하게 되더라도 이 곳에 예약을 하고 다음에 와야겠다. 그렇게 나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머리도 머리지만 음악과 커피가 기가 막히다. 그렇게 철저한 예약을 통해 미용실은 붐비지 않았으며 한가한 듯 그러나 끊임없이 손님이 오는 그런 형태였다. 그저 머리를 맡기고 커피와 음악과 책을 즐기면 되는 곳. 그렇게 나는 이곳에 이곳의 원장님께 나의 머리를 맡겼다. 그리고 어느 날, 음악을 좋아하는 여기 원장과 나의 남편이 만나게 된다. 서로 음악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스피커 음질을 따지는 그런 이야기가 또 한참 오가더니 남편도 이 곳의 팬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이 곳의 단골이 되어버렸고 우리는 머리에 관한 한은 우리 관심 밖이다. 원장님이 다 알아서 자를 때 되면 잘라주고 염색 때 되면 염색해주며 우리 머리를 챙겨준다. 아, 머리 머리 이번엔 머리를 어떻게 할까? 그런 고민을 평생 안 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 25년이라니.


나의 아들이 대학 가서 밴드부 활동할 때는 그에 맞게 우리가 깜짝 놀라도록 새빨간 머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그렇게 여기 원장님은 우리와 한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외국에서 가끔 오는 아들들은 바쁜 스케줄에도 이 곳에 와 원장님께 머리를 맡기고 간다. 나뿐일까? 안락함 깔끔함 등이 소문 나 확장에 확장 아주 크게 시내 한 복판에서 이십여 명? 의 직원들과 젊은이들이 복작대는 커다란 미용실이 되었다. 


크게 확장되며 엘르 특유의 그 조용한 분위기를 잃어갔다고나 할까? 원장님 뵙기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우린 꾸준히 다녔다. 여하튼 직원들이 복작대던 그곳은 어느 순간 다시 직원 수가 줄기 시작했고 결국 여직원 네 명으로 종착되는가 싶더니 요즘은 이런저런 사람 쓰는 게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며 원장과 그의 아내 딱 둘이 하고 있다. 나처럼 거의 이삼십 년 단골인 그런 고정 고객만을 상대로. 그러니까 원장과 원장 부인과 우리 같은 몇십 년 된 단골 고객들이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철저히 예약제로 차라리 직원을 아무도 안 쓰고 그렇게 단골들만을 상대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 까마득한 옛날처럼 음악과 커피와 함께 하며 머리를 만진다. 화려하게 시내 한복판에서 복작거릴 때보다 우리는 그 옛날 엘르로 돌아온 것 같아 더욱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음악을 좋아하는 남편은 원장과 음악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좋아하는 나는 원장과 책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는 새 우리의 머리는 감쪽 같이 멋지게 되어 있다. 특히 남편은 이 곳에 오는 순간 십 년은 더 젊은 모습이 되어 나간다. 하하 사람의 인연이란 참. 25년의 세월이라니.



그렇게 아무도 없이 딱 부부 둘이 운영하는 이 곳에 어느 날 고양이가 등장했다. 루비라는 촌스런 이름인데 하하 요즘도 루비라고 짓는가. 그 옛날 어릴 때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 루비였던 것 같다. 하하 어쨌든 이 고양이가 이제는 엘르의 귀한 가족이 되어 손님과 함께 한다. 절대 아는 척도 안 하고 저렇게 항상 무표정으로 조용히 있지만 우리는 한 가족이다. 




가끔은 손님이 앉아야 할 자리에 턱 버티고 눕는 듯 앉아 아무리 비키라 해도 꿈쩍 않기도 하여 우리들 웃음을 자아내고 가끔은 데스크 위에 도도하게 앉아 모른 척 시선 한 번 안 줄 때도 있다. 야박하게 





가끔은 넋 놓고 이리 쿨쿨 잠이 들어있기도 하다. 도저히 깨울 수도 비키라 할 수도 없다. 이제는 우리와 함께 한 가족이 되어 간다. 밖에 나갔다가 뭇 집 밖 고양이들로부터 질투의 공격을 받아 궁둥이가 뜯기는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언제나 무표정. 이곳 엘르와 함께 한 가족이 되어간다. 원장님의 많은 단골들, 이제는 나이가 꽤 든 은퇴한 그들과 함께 말이다. 




책을 좋아하고 공부하기를 즐기는 원장님은 끊임없이 일본으로 서울로 공부를 하러 다니며 이 곳에서는 미용사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다. 그렇게 이 미용실은 학습장으로 또 우리들 미용실로 쓰이고 있다. 





"헉. 이게 모야요? " 항상 고객의 편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원장님은 거대한 안락 안마의자를 머리 감는 방에 들여놓으셨다. 세상에. "샴푸실로 오세요~" 해서 들어가 보니 이 거대한 의자가 세면기 앞에 놓여있다. 발을 벗고 앉으니 다리로부터 두두두 두두두 안마가 시작된다. 아, 시원하고 정말 편하다. 하하 내 몸이 마사지되고 있는 새 나의 머리는 원장님 손길로 따뜻한 물에 잘 감기고 있다. 미용실 온 건지 안마실에 온 건지 모르겠다. 하하 와우 너무 좋아요~ 




지극히 편안한 이 곳이 오래오래 영원하면 좋겠다. 나랑 남편이랑 그 많은 함께 나이 들어가는 단골 고객들이 지극히 편안함을 계속 누릴 수 있도록. 난 엘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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