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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Oct 28. 2019

우리 함께 색소폰 하길 참 잘했네~

극과 극인 부부가 잘 사는 법

그렇게 항상 극과 극을 오가냐. 왜 중간이 없어.


그가 말했다. 그렇다. 난 중간이 없다. 그런데 그는 항상 중간이다. 초지일관. 항상 그 자리 항상 합리적 항상 적절하게. 난 그렇지 않다. 뜨거울 땐 무척 뜨겁고 차가울 땐 지독히 차갑고 극과 극. 무어 그렇게 큰 일까진 아니지만 오늘 그렇다 완전 극에 달했다. 무엇이냐.


오늘은 그와 내가 속해있는 울산 크리스천 색소폰 오케스트라단이 서현교회에서 교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연주하는 날이다. 6시까지 교회에 도착해 식사를 하고 6시 40분에 본당 집결이다. 우리는 하얀 와이셔츠와 까만 나비넥타이 흰 쟈켓 검정 바지 검정 구두 등의 연주복을 아예 차려입고 나섰다. 누가 봤으면 그야말로 딴따라 부부의 모습이었을 텐데 다행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우리 차에 타기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서현교회에 도착해 우리들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간다.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 아니 여기 연주회 이야기를 적을 짬은 없어. 그래 난 다른 할 일이 많은 걸. 오늘 기록은 하지 말자.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핸드폰은 아예 악보 가방 속에 두기로 한다. 여기서 나는 핸드폰을 진동에서도 모자라 아예 전원을 꺼버린 것이다. 그래. 오늘은 핸드폰에서 자유야. 핸드폰 없이 기록에서도 자유. 사진에서도 자유. 맘껏 내 맘으로 몸으로만 느끼리라. 그렇게 전원을 파팍 꺼 버리는 나를 보고 남편이 하는 말이다. 그냥 진동으로 해놓으면 되지 그렇게 극과 극이냐. 왜 중간이 없어. 그렇다. 난 중간이 없다. 물도 미지근한 물이 제일 싫다. 무지무지 뜨겁거나 무지무지 차갑거나. 목욕탕에 가도 아주아주 뜨거운 온탕과 아주아주 차가운 냉탕을 들락거리지 미지근한 물은 제일 싫다. 그런데 나의 남편은 물도 미지근한 물을 즐긴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극과 극으로 다르다. 여하튼.


서현교회에서는 우리에게 저녁을 대접한다. 우리 오케스트라단 사십여 명은 추어탕과 부추전과 닭강정과 소불고기와 김치와 샐러드와 연근조림 등의 맛있는 반찬과 함께 윤기 자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을 너무도 맛있게 먹는다. 핸드폰을 가져왔다면 난 이 맛있는 음식들을 찍느라 정신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오늘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한다.  


우리에게 배정된 방은 강단 바로 뒤에 있다. 색소폰을 조립하고 악보를 들고나가려다 잠깐! 핸드폰을 들고 가 말아? "그래도 귀중품은 가지고 가야지" 하면서들 지갑과 핸드폰은 챙겨 들고 간다. 그러나 난 아예 전원을 꺼둔 상태. 가방 깊숙이 다. "그래도 핸드폰은 들고 가지요?" 옆에서 들 불안해한다. 누가 지키는 것도 아니고 문을 잠그는 것도 아니라며. '아무리 누가 핸드폰을 훔칠까.' 그냥 가방에 두고 강단에 올라간다. 그런데 다들 핸드폰은 챙긴 듯하다. 누구나 다 핸드폰을 들고 무언가 하고 있다. 리허설 시작 전에. 또 갈등. 가서 가져올까? 누가 훔쳐가면 어떡하지? 하이고 누가 훔쳐가냐. 그 가방 깊숙이 둔 핸드폰을. 게다가 전원까지 껐잖아. 핸드폰에서 자유롭자며! 이런저런 갈등으로 복잡한 데 지휘자가 간단한 리허설을 시작한다. 여기 쉬고 여기 작게 하고 여기서 돌아가고 예비박 몇 박이고 그토록 많이 연습한 곡들을 마치 시험 보기 전 요점 정리하듯 하나하나 콕콕 집어준다. 들고 올까 말까 핸드폰 걱정에 잘 집중이 안된다.

분실될까도 걱정이지만 끝없이 등장하는 "아, 여기서 이렇게 찍으면 참 괜찮을 텐데. 색소폰이 부각되게 잘 찍을 수 있었는데...' 등 글 쓰기 적합한 샷이 자꾸 생각나는 것이다. 아이참 나도 참참참! 그럴 거면 그냥 들고 오지!!! 아니야 오늘은 안 해. 쓸 시간이 없쟎아 널려놓은 것들 마무리해야지! 그래. 오늘은 핸드폰에서 자유! 기록에서 자유! 뚝! 생각 끝! 억지로 마음을 정리한다.  


드디어 그 큰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준비 찬송이 시작된다. "여기에 모인 우리~" 빵빵 울려대는 웅장한 우리  색소폰 반주에 맞춰 성도들이 크게 찬양한다. 준비 찬송 세 곡이다. 1절 2절 3절까지. 이때가 사실 우리에겐 부담 없는 워밍업이라 할 수 있다. 맘껏 크게 불며 소리를 점검한다.  


그래. 어차피 나는 핸드폰도 없고 기록도 안 할 거고 그냥 이 연주 그 자체를 즐기는 거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 첫곡 '샤론의 꽃 예수'다. 시작 부분 아주 작게 나가다가 빵 커졌다가 다시 점점 작아지는 여림과 셈의 극치를 보여주는 곡. 아, 아무것도 기록 않으리라 했는데 곡이 연주될수록 그게 아니다. 매주 월요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무거동 스튜디오에 모여 연습하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치며 멋지게 연주되는 곡에 빨려 들어간다 할까 흐뭇하다 할까 여하튼 꽤 멋진 감정이 북받쳐 올라온다.  


바리톤 색소폰 붕붕 거림 하며 너무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소프라노 색소폰 하며 쿵쿵 쿵쿵 쿵쿵 추임새 넣듯 그 박자를 지켜주는 드럼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짝짝 맞아 들어가는 우리 오케스트라단의 화음 하며 아, 너무 멋지다. 게다가 내가 그 안에서 빨려 들어 연주하고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 이것은 꼭 적어야겠다. 사진 하나도 없이 어떻게? 그냥 글 만으로도 써보자. 그게 될까? 왜 하필 이런 날 핸드폰을 두고 왔을까. 그러니까 결심하자.  앞으로 핸드폰은 꼭 지니는 거다. 기록에서의 자유 그런 거 없다. 내 맘이 어찌 변할지 모르니까! 감동이 격해질수록 후회도 커진다.


70여분의 연주가 눈 깜짝할 새 끝난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고 웃음 가득한 인사를 받는다. 사람들의 환한 얼굴에서 '아, 우리가 연주를 괜찮게 했구나'를 느낄 수 있다. 무대에 선다는 적당한 긴장감으로 살짝 떨리면서도 관객의 환호에 온몸이 녹아내린다 할까. 하하 이 모든 게 짜릿짜릿 참으로 매력적이다.


"여보 오늘 정말 괜찮지 않았어?" 흥이 나서 남편에게 말한다. "난 아주 힘들었다. 끝에 입술이 풀려 혼났어."  나도 마지막엔 입술이 막 풀리려 해서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정말 집중한 멋진 연주였다. 단원들 서로서로 "수고했어요~" 인사를 나누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커다란 악기들을 케이스에 다시 집어넣고. 이미 밤이 깊었다. 춥다.


"우린 부부가 해서 참 다행이야. 저녁 걱정할 필요가 있나 늦는 다고 걱정할 필요가 있나. 밥도 같이 먹어 연주도 같이해. 하하 함께 하길 참 잘했어." 낄낄대며 한밤중에 들어와 간식을 찾는다. 옥수수를 삶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영양 넛트 바를 먹고 쵸코렛을 먹고 기분이라고 커피까지. 밤에 안 먹기로 한 나의 원칙은 무참히 깨진다. 아, 너무 많이 먹는다. 안 먹으면 하나도 안 먹을 수 있는데  일단 먹기 시작하면 아흑 줄줄줄줄 주변의 먹거리를 깡그리  작살낸다. 배가 더부룩하니 불러오며 야만인도 아니고 이럴 수 있나. 급 후회가 따른다. 역시 절제에 뛰어난 항상 합리적인 그는 이미 적당한 선에서 끝나 있지만 발동 걸린 나는 그게 안된다. 엉엉


그래도 쫄 거 없다. 이런 날!!! 남편과 함께 먹어야지. 어떻게 혼자 먹게 두누? 룰은 깨지라고 있는 것. 특별한 날이니 모든 건 파괴!!! "아. 우리 함께 색소폰 하길 참 잘했네~" 극과 극인 우리 부부가 모처럼 딱! 일치하는 순간이다.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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