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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Nov 12. 2019

열차 출발 한 시간 전

오늘 나는 서울행 열차를 탄다. 무척 일찍 나온다. 왜냐하면 조금 늦으면 아주 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7시 43분 열차인데 6시 40분에 도착한다. 무려 한 시간이 남았다. 역에 있는 할리스 커피에 들어간다. 브런치 북 발간을 위해 할 일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아 참 잘 되었다. 많이 남은 시간 여기서 나의 작업을 하다 가면 될 테니까. 아뿔싸 그런데 와이파이가 안 된다. 아니 왜? "와이파이 어떻게 해요?" 대부분 카운터에 있는 안내가 없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런 거 따로 없다 한다.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온다.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받아 자리로 와 '와이파이가 안 되다니' 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일까 한 무리 남자들의 이야기가 내 귓속에 쏙 들어온다. 여기가 전국에서 커피 제일 잘 되는 곳이란다. 오홋? 더욱 귀가 쫑긋. "그래서 아무개가 하고 있었는데 시에서 운영하게 되었지요." 상사에게 보고하는 듯한 말을 훔쳐 듣는다. 오호 그렇게? 잘 되면 시가 뺐는다고?


자, 와이파이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내 가방 속에는 책이 있다. 그걸 꺼낼 것인가 아니면 와이파이 안되니 그냥 워드로 글을 쓸 것인가? 그래도 일단 노트북을 꺼냈는데 그냥 집어넣자고? 이 시끌벅적한 곳에서 책이 잘 눈에 들어올까? 아니 칼을 뽑았는데 무엇이라도 해야지 이따 SRT를 타면 와이파이 빵빵하게 돌아갈 것이요 그때 워드에 쓴 글을 옮기면 된다. 문제는 다른 글을 쓰지도 읽지도 않고 오로지 책 발간에만 신경 쓰겠다는 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어쩌랴. 나의 삶이 언제 그렇게 계획대로만 되었더냐. 생각을 하려 해도 생각을 비우려 해도 나는 글쓰기가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노트북 집어넣지 말고 워드를 띄워 글을 쓰며 생각을 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한 시간 동안 무엇을 생각할까?


아, 모지? 어떻게 쓰다가 블록이 형성되었고 그대로 삭제가 되어버렸다. 왜 그럴까? 이것은 워드 프로세서. 되돌리기를 찾아 해 본다. 안된다. 아 한 블록의 글이 모두 사라졌다. 또 예기치 않은 변화다. 할 수 없다. 삶은 언제나 그렇다.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한다. 여기서 난 왜 문득 골프가 생각날까? 골프에서 주장하는 게 그거다. 그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골프고 그걸 모두 그러려니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새 홀을 새롭게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잘 써진 한 블록의 글이 날아갔다 해도 너무 불행해할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새롭게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43분 열차니까 30분에 나가 화장실 가고 준비하면 된다. 아니 25분엔 나가야겠다. 그렇다면 다만 15분이 남았을 뿐이다.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으면 정말 시간은 휙휙 잘도 간다.


아까 삭제된 것. 옷에 관한 이야기였다. 바바리코트 대신 모직 코트를 입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썼었다. 서울은 5도에서 16도라는데 울산은 그보다 높은데 이 바바리코트로 추우니 서울에선 얼마나 춥겠느냐 옷을 잘못 입고 온 거 아닐까 하는 이야기였다. 아니다 아직 모직코트는 아니다. 해만 뜨면 그땐 너무 더울 것이다. 그래 잘 입었다. 옷에 관한 고민은 그만 하자. 그런데 전국에서 제일 잘된다는 이 커피숍에 왜 와이파이가 안 될까? 그런 거 없어도 너무 장사가 잘 되어서일까? 역 대합실에서는 되는데 이 안에서는 안되다니. 왜 그럴까? 역 대합실에서는 그러나 노트북 꺼내놓고 두들기기가 좀 불편하다. 그러니까 나는 커피가 맛있는 할리스 커피에 오는 건 맞는데 와이파이가 참 문제이기는 하다. 아까 참 잘 썼는데 날려버리니 글이 그때처럼 되지 않는다. 수시로 저장을 해야겠다.


드시고 가세요?



반복되는 말에 문득 고개를 드니 외국인이다. 카운터의 아가씨는 미소 한 방울 없이 지극히 사무적으로 되풀이한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렇다고 저 끝에 앉아있는 내가 오지랖으로 May I help you? 하고 나갈 수도 없지 아니한가. 그 곁에 젊은이들 많은데 왜 아무도 안 도와줄까? 적어도 '이 안에서는 머그잔으로만 마실 수 있습니다. 테이크아웃 잔은 이 안에서는 안됩니다.'라든가 '여기냐 테이크 아웃이냐'정도는 낭랑하게 영어로 말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조금 상냥하게 웃으며 말해줄 수는 없었을까. 저 멀리 안쪽에 앉아 그냥 조금 답답하다. 내가 외국에서 친절을 받았을 때의 고마움이 생각나며 저 외국인도 친절을 받았으면 하는 맘이 가득해진다. 좀 더 직원이 따뜻하게 웃으며 대응할 수 없었을까.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듯한 저 외국인에게 말이다.


매장에서 드시나요? 바로 나가는 거 맞으세요?



끊임없이 묻고 있는데 그 어려운 말이 외국인에게 통하겠느냐 말이다. 어떻게 외국인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한국어로 빠르게 말할까?  전혀 못 알아듣고 있음이 이 멀리에서도 감지되는 데 말이다. 어떻게 주문한 게 나오고 어떻게 받아가는가 보아야겠다. 빵인지 봉투와 테이크 아웃 커피를 받는다 그 외국인. 제발 나가야 하는데. 앗 그런데 매장에 앉는다. 어떡하지? 봉투를 살짝 열어 안을 본다. 제대로 주문한 게 나온 걸까? 어쨌든 그 남자 미심쩍은 듯 자꾸 봉투 안을 들여다본다. 한참을 그러더니 포기했는지 냅킨을 한 장 넣어 꼭꼭 싸맨다. 아 그리고 밖으로 나간다. 다행이다. 직원은 나가는 그에게 "맛있게 드세요." 한국어로 말한다. 아. 어느새 25분이다. 나도 열차 타러 나가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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