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뜰 Nov 26. 2019

가을이 깊다

나에게는 아주 먼 곳에 사는 국민학교 동창들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고기 잘 굽는 아이, 시애틀의 사진 잘 찍는 아이, 시카고의 글 잘 쓰는 아이, 서울의 산 잘 타는 아이. 그런데 오늘 문득 시카고의 글잘 쓰는 아이가 잠이 안 온다며 LoboHow Can I Tell Her를 올린다. 그러면서 


그냥 옛 친구들과 허물없는 옛이야기를 막 나누고 싶은 밤이다..


    

라고 한다. 그 애는 내가 아무리 고쳐주어도 꼭 글 말미에 마침표를 딱 두 개 붙인다. 세 개면 말없음 표 비슷하기라도 하지만, 그래도 말없음표는 여섯 개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두 개를 하려면 아예 하나로 해서 마침표로 해야 하는데 그 애 글에는 저렇게 두 개의 마침표가 자주 등장한다. 매번 고쳐주는데 매번 그렇게 딱 두 개만 등장시킨다. 


그런 밤에 글을 쓰라고 하니 즐겨 듣던 팝송 더 듣고 뇌의 서정 배터리를 충전시키겠단다. 시애틀의 사진 잘 찍는 아이가 두연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노래를 들으니 생각난다며 Mary MacGregor의 Torn Between Two Lovers를 올린다. 시카고 애가 시애틀 애에게 '너도 이런 고민에 빠졌었구나' 하니 시애틀 애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며 가볍게 받아친다. 시카고애가 참 안 풀리는 인생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그렇게 찾을 땐 안 나타나다가 한꺼번에 둘이 나타나 두 마리 토끼처럼 휑~ 한다며 허탈해한다. 


시애틀 애가 같은 주제라며 George Baker의 I've Been Away Too Long을 올린다. '되게 안 풀렸었구나' 하며 시카고애가 '우리 땐 사랑하면 결혼해야 한다는 공식이 있을 때라.. 잔인한 선택을 해야 하는 시대에 살아서.'라고 하자 시애틀 애가 '우리 땐 결혼하면 사랑해야 한다고... ㅎㅎ'해서 모두 깔깔 웃는다. 문득 시애틀 애가 술 생각이 난다며 '숨차게 살다 어느 날 숨 안 쉬면 간 거다.'라고 말해 갑자기 모두 조용해진다. 


그렇게 이미 밤이 깊은 그쪽 나라 애들은 잠자리로 들어간다. 아직 해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나는 그 애들이 올린 노래를 하나하나 시를 쓰듯 번역해본다. 참 아름다운 가사들이다. 창 밖으로는 가을이 깊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노래선교단50주년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