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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

마하 스카이

하나는 외로워

by 꽃뜰
마하 스카이가 뭐예요?



내가 마하 스카이라고 할 때마다 듣는 질문이다. 마하 스카이. 글쎄 그게 무얼까? 참으로 순식간에 어처구니없이 지어진 이름이기도 하다. 본래 우리가 하고 있던 모임은 스카이다. 조금 치사한 듯 하지만 어쨌든 아들을 스카이 대학에 보내고자 하는 엄마들의 모임이라 하여 붙였던 이름이다. 그 옛날에 하하. 염정아의 스카이캐슬이 나오기 아주 한참 전에 말이다. 그런데 그건 우리 기뿐이지 일 학년 이학년 삼 학년 임원들이 다 모여 일해야 할 때가 있었다. "와우 이 모임도 괜찮네. 우리 계속 모일까?" 해서 만들어진 게 이름하야 마하 스카이다. 왜냐하면 마하는 무언가 큰 것 같고 스카이들의 가장 큰 집합체니까 마하 스카이. 그렇게 우리 애들이 고3일 때 고2 고1 임원 엄마들이 모였고 그 이후로도 새로 학년이 들어오는 대로 모이다가 추리고 추려져서 딱 10명 십여 년 세월에 꼭 맘에 맞는 엄마들만 남겨진 모임이다. 아들들의 근황을 물으며 결국 우리들 이야기로 이어진다. 모두 바쁘니까 다만 몇 번 만날 뿐이지만 꼭 일 년에 한 번은 일박이일 여행을 가서 밤새 이야기하며 우의를 돈독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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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모임은 산속 펜션이다. 예약자에게만 밥을 해준다는 이곳. 일찌감치 예약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잠자고 아침까지 먹으며 주야장천 그저 수다만 떨기로 한다. 처음 일박이일 할 때는 바리바리 싸들고 와 배추전이며 밥이며 찌개며 거창하게 만들어 먹었으나 먹고 치우는 일로 시간을 다 보내자 바꾸기로 한다. 물론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재미는 있지만 우리는 점점 마냥 이야기만 하고 싶어 지는 것이다. 그래서 밥도 다 예약하고 오로지 주둥이만 동동 가지고 모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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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이 세 개에 커다란 거실. 우리가 복닥복닥 함께 모여 수다 떨기 딱이다. 마침 비도 부슬부슬 내린다. 바쁜 일정의 모두가 하나 둘 모여든다. 만날 때마다 잊어버려 자꾸 나이를 물어보고 서열을 정한다. 세상에 신경 써서 듣고 보니 쭈르륵 한 살 차이로 쫘악이다. 57년생인 나를 대빵으로 59, 60, 61, 62, 63, 64, 65년생까지 줄줄이. 오홋 이렇게 모이기도 힘들 텐데. 웬일이야 우리. 어쩌면 그새 너무 잘 차려 먹는 데만 신경 쓰느라 깊이 있게 나이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는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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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게 바로 해당화예요!



너무나 즐겁게 소리치는 후배? 아니 아들 후배의 엄마. 하하 어쨌든 우리는 와인잔을 부딪치며 언제나 해당화! 해왔다. 해! 해가 갈수록 당! 당당하고 화! 화려하게 바로바로 그 해당화라고 나타난 꽃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들 후배 엄마들. 네이버를 켜서 스마트 렌즈를 들이대면 꽃 이름이 즉각 나온다며 검색 방법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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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취미라 어쩔 수 없어요~


이 너른 땅에 펜션을 지어 받을 수 있을 만큼만 예약제로 손님을 받아 직접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숙박을 제공한다는 펜션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취미를 발휘하고 싶어 이렇게 사람들과 나눈단다. 그러고 싶을까? 얼마나 힘들까? 어떻게 이런 게 취미가 될 수 있지? 이 너른 땅의 소유자라면 돈이 꽤 많을 텐데 그냥 편하게 그 돈 쓰면서 살지 말이야. 하하 우리는 살짝 소곤대지만 어쨌든 맛있는 한우를 대접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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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기로 했지만 통도사 선다회 멤버라는 한 엄마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바리바리 다기며 테이블보며를 싸 갖고 와 식사 후 우리에게 귀한 차를 정성껏 대접한다. 직접 만든 다식과 함께. 그 찻상이 차려지고 있다. 식탁과 소파를 거실에 끌어다 놓고 나름 분위기를 만든다. 본격 수다 떨 준비가 갖춰지는 것이다. 따끈따끈 따뜻한 방과 거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기로 했지만 차가 준비되고 귤, 사과, 포도 , 배도 마련되고 그리고 짜잔~ 아름다운 케이크와 함께 모든 불을 끄며 그 분위기는 절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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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지금껏 모시고 살다 얼마 전 분가했어요로 시작해 애들이 서울대 합격했을 때의 그 감동의 이야기하며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화려하게 지내다 모든 것 끊어내던 이야기 하며 상속금을 분배 않는 오빠에게 속상했던 이야기 하며 분명 새언니 때문 일거라는 이야기 하며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차마 할 수 없었던 피하고픈 가슴 아픈 이야기까지도 술술술 술 풀려나온다. 그러면서 친밀의 강도가 높아진다. 어마나 그랬어? 어떡해. 추임새를 넣어가며 대화는 깊어간다. 와인을 따고 또 따고 가져온 와인병을 다 비울 때까지 눈이 벌개 지고 마음이 느슨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면서 저 마음속 깊이깊이 숨겨둔 이야기들이 줄줄줄줄 터져 나온다.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결국 새벽 네 시 삼십 분에야 마지막 팀이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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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외로워 이렇게 자꾸 모이는 걸까? 혼자 나이 드는 게 두려워 이렇게 많이 만나는 걸까? 그냥 모임이 한 번 정해지면 나는 그냥 가는 대로 쭉쭉 성실히 참석한다. 그러다 보니 모임이 참 많다. 우우우 몰려다니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말 저말 온갖 말을 하고 또 온갖 말을 듣는다. 어마나 그래요? 어마 그랬어요? 어떡해요. 그런 실감 나는 반응이 있는 곳에서 실컷 수다를 떠는 게 나는 참 좋다. 그냥 막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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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무리 지어 함께 나이 들어가고 비슷한 느낌으로 비슷한 삶을 살아내는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게 그저 좋다. 우리의 수다는 밤새 불타오르고 와인으로 볼 따귀도 붉게 타오른다. 무언가 터질 것만 같은 우리의 가슴도 활활 타오른다. 밤이 깊어가면서 하하 그 수위는 점점 높아진다. 잠깐 19금을 넘어가기도 한다.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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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슬부슬 비가 온다. 빗방울이 가는 나뭇가지에 맺힌다. 바쁜 일상으로 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일 년 후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로 가득가득 채워질까?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 이야기. 듣다 보면 모두 모두 비슷하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라 했던가.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고 결국 그 총량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그러니 오늘 안 좋으면 내일 좋겠지 그러려니 즐겁게 살자며 일박이일 긴 수다의 만남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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