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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뜰 Nov 29. 2019

왜 계핏가루를 넣어달라 했을까?

할리스커피 바닐라딜라이트



열차를 타고 울산역을 들락거리며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아니 습관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침 시간엔 리무진이 어디서 어떻게 막힐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리무진은 내가 차가 막히는 바람에 열차를 놓친다고 해도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평상 시라면 마땅히 도착해야 할 버스가 갑자기 닥친 교통체증으로 제시간에 나를 울산역에 데려다주지 못한다 해도 절대 그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제시간에 역에 데려다주겠지~ 마냥 있다가 낭패한 적을 몇 번 경험하고서야 나는 깨닫는다. 일찍 알아서 도착해야겠구나. 그런 날은 물론 하나도 안 막히고 쌩쌩 달려 한 시간 또는 그 이상으로 일찍 도착하기도 하지만 여하튼 그런 황당함을 경험하고부터 나는 무조건 아주 일찍 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할리스커피를 찾는다. 열차 시간이 될 때까지 할리스 커피에 있는다. 일 때문에 서울에 간다 해도 진짜 여행하는 기분이 되는 순간이다. 





해님이 방실방실 뜨기 시작하는 이렇게 이른 아침. 차가 막힐 리야 있겠냐마는 나의 습관 아닌 습관은 일찌감치 집을 나서게 한다. 전에는 감히 할리스 커피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열차 안에서도 삼천오백 원이나 하는 커피를 덥석 사 마시지는 못했다. 왠지 너무 비싼 거 같고 아까운 것 같고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화장실이나 들락거리게 되지 뭐 하는 온갖 이유를 대가며 커피값 삼천오백 원을 아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KTX를 타면 단정하게 제복을 차려입은 아가씨 또는 아줌마 또는 멋진 총각이 커피 카트를 끌고 다니며 커피를 팔았다. 빵을 곁들이면 더욱 비싸진다. 기차 삯도 만만치 않은데 어떻게 커피까지? 그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갈등하다 그래도 열차여행에 커피가 빠져서야! 하면서 겨우 한 잔 사 먹고는 했다. 나만 그렇게 이상한 갈등을 하는 걸까. 내 옆자리의 아주 앳된 아가씨는 커피에 빵에 과자에 하하 거의 만원 어치를 순식간에 시켜버린다. 아무 갈등 없이. 하하 나도 좀!!!  갈등 없이 척척 시켜먹기로 한다. 그래도 겨우 커피뿐이지 무척 비싸 보이는 빵에는 절대 손이 안 간다. 하하 어쨌든 그렇게 열차 안에서의 커피 즐기기가 습관 아닌 습관이 되어버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또 이 커피 카트가 사라졌다. 


집 앞 이디야커피에 아지트를 만들고부터 나의 커피값에 대한 인식은 바뀌었다. 분위기 값 자리값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값. 열차 타기 전 마음을 여행분위기로 바꾸어 주는 값 등등 커피값은 얼마든지 치를만한 값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이제 커피값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혼자서도 씩씩하게 막 커피숍에 들어간다. 하하 혼자서는 절대 음식점이고 커피숍이고 못 가던 나로서는 대단한 발전이다. 




언니, 절대 그런 곳에서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 아메리카노 시키지 말고
무언가 혼자 만들어 먹기 힘든 걸 시키세요~ 



후배 조언을 따라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본다. 이상한 이름인 거 막. 이날은 아주 새로운 게 눈에 들어온다. 바닐라 라테는 곳곳에서 많이 봤지만 바닐라 딜라이트라고? 딜라이트? 처음 보는 거야. 오케이 새로운 것에 도전! 바닐라 딜라이트! 씩씩하게 주문하고 기다린다. 드디어 받았는데 한 입 살짝 마셔보니 오홋 달달하면서도 요 거이 무슨 향이지? 아, 부드럽기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고 너무 맛있다. 달콤 살살~ 그렇게 한 입을 마시고 보니 너무 좋아 드는 욕심. 그렇지 그렇지 젊은 애들 보면 여기 항상 무언가를 뿌려 먹던데. 계핏가루. 그래. 


해서 온갖 시럽과 냅킨과 빨대가 있는 곳에 가 본다. 헉 그런데 작은 후춧가루 병같이 생긴 그 계핏가루가 없다. 음... 그냥 올까 하다가 그래도 칼을 뽑았는데! 카운터에 가서 물어본다. 혹시 계핏가루 없나요? 어린 제복의 아가씨가 깜짝 놀라며 시나몬 넣으시게요? 나도 깜짝 놀라 얼떨결에 아, 네. 이상하다는 듯하면서도 그 아가씨 계핏가루를 팍팍 팍팍 아주 많이 넣어준다. 아. 


다시 내 자리로 와서 조심조심 마셔본다. 헉. 아까 맛 아니다. 정말 아니다. 아까 달달하고 정말 맛있었는데. 아니 이게 무슨 맛이지? 계속 위에 동동 떠있는 계핏가루가 그 처음의 맛을 모두 사라지게 한다. 아무리 건들지 않고 후후 불어가며 계핏가루 안 들어가게 살살 마셔도 그래도 그 처음의 캬~ 감탄하던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절대 나지 않는다. 아, 어떡해. 하이고 왜 갑자기 여기서 계핏가루가 생각났을까? 


다시 매대로 가서 빨대를 가져다가 이 계핏가루를 건져내고 마실까? 숟가락도 아니고 그게 가능하겠냐. 숟가락은 없는 것 같던데. 그럼 다시 카운터에 가서 숟가락 달라해야 할 텐데. 에잇 그냥 마셔. 계핏가루... 촌스럽게 계핏가루가 뭐냐. 그것도 좀 세련되게 시나몬이라 하고. 그거 달라할 땐 언제고 또 걷어내려 숟가락 달라하면 아, 너무 창피할 것 같아. 그래. 그냥 마시자. 그래도 너무 맛이 이상해. 잘 모르면서 왜 계핏가루를 넣었을까. 어련히 알아서 최고로 맛있게 만들어주지 않았을까. 없으면 말지 그걸 또 일부러 카운터에까지 가서 넣어달라 하느냐 말이다. 하이고. 나는 왜 이렇게 모든 선택이 아직도 서툴까. 인생을 이만큼 꽤 많이 살았으면서도 말이다. 




어느새 열차를 타야 할 시간. 다음엔 꼭 꼭 바닐라 딜라이트 그것만 시켜서 그 잔이 다 끝날 때까지 그 달달함과 부드러움 끝까지 지켜내리라. 다음에 꼭 시켜야지. 할리스 커피의 바닐라 딜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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