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조니와 자전거

6082일 강아지별로 떠난 반려견 조니

by Heba

우리 집 조니가 새끼 강아지였을 때부터 두 가지 소망이 있었다.

하나는 자전거 앞바구니에 녀석을 태우고, 키 큰 가로수들이 늘어선 흙길을 유유히 달리는 것.

다른 하나는 자전거에 텐트와 짐을 싣고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다.


좁은 집 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아름답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강아지가 뭘 얼마나 알겠어”라 하겠지만,

그래서 더 알려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나 역시 내가 살던 동네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외로움을 느끼던 그 시절,

조니도 같은 마음일 것 같았다.

그래서 꼭 함께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는 것이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나의 소망은 그 속에 묻혀 조용히 사라져 갔다.


조니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동생이 쓰던 작은 자전거를 내게 주며 “이참에 배워보라”라고 했다.

그날 밤, 나는 동네 공원 가로등 아래로 나갔다.

두 손으로 핸들을 수평으로 맞추고,

내 어깨와 몸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평행을 유지했다.

신기하게도 몇 분 만에 균형을 잡고 달릴 수 있었다.

그날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제 조니를 태울 수 있겠구나.”

그 생각 하나에 아침이 오기를 기다릴 만큼 설렜다.


한 달쯤 지난 낮, 드디어 조니를 자전거 바구니에 태워보려 했다.

낯선 상황에 놀란 조니는 바둥거리며 몸을 뻗었다.

나는 “한 번만 타보면 익숙해질 거야”라며 조심스레 억지로 태웠다.

하지만 바구니는 생각보다 작고 얕았다.

그 순간, 조니의 몸이 중심을 잃더니 그대로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이었다.

조니가 퍽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심장이 멎는 듯했다.

나는 황급히 품에 안아 다친 곳이 없는지 살폈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머리가 괜찮을까 두려웠다.

스스로를 탓하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 하는 후회만 밀려왔다.


이튿날 아침, 조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수의사는 “입에서 거품이 안 나왔으면 괜찮을 거예요.”라며 말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조니를 바구니에 태우지 않았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고, 열대야가 이어졌다.

밤이 되면 엄마는 조니를 데리고 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다.

그때는 그저 평범한 풍경이라 생각했지만,

조니가 떠난 뒤에야 알았다.

그 여름밤이 우리 셋의 마지막 행복이었다는 걸.


조니를 자전거에 태워주진 못했지만,

태워주고픈 마음 하나로 배운 자전거는 내게 남았다.

조니가 떠난 뒤, 나는 매주 주말마다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슬픔을 감추기에

자전거는 더없이 좋은 도구였다.

고글은 울고 있는 눈을 가려주었고,

버프는 젖은 눈물을 감싸주었다.


그렇게 나는 달리며 울었고,

울며 조금씩 견뎌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전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이제는 여행도, 캠핑도 함께한다.

때로는 낯선 길 위에서 나 혼자가 아닌

조니가 내 옆에 달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조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평생 자전거를 타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믿는다.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건,

조니가 내게 주고 간 선물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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