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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바 May 03. 2024

우리는 한 방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이건 운명이야

그 남자의 방이 비었다


"언니~ 어딨어? 완전 대박 소식이야. 빨리 와봐!"


은서(가명)는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


"왜~ 무슨 일인데~ 뭐가 대박 소식이야?"

"언니가 들으면 엄청 좋아할 일이야~"


"게스트하우스 2층에 준 강사님이 사용하는 방 있잖아. 강사님이 1층 침대 쓰고 주원(가명)이가 2층 침대 썼잖아. 근데 오늘 주원이가 다합 떠난다고 했대. 그래서 민(가명) 강사님이 다이브 마스터를 배우고 있는 사람 중에, 한 명만 뽑아서 도미토리 2층으로 올라오라고 했대. 언니! 완전 대박이지?"


그가 살고 있는 방은 2인실이었다. 머리가 하얘졌다.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같이 마스터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도 2층으로 올라가고 싶었던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나는 은서와 아영 언니 그리고 현수(가명)를 불렀다.


"우리 어떻게 결정하는 게 좋을까?"


그들은 마치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은서: 조만간 게스트하우스 새로 생기는 거 알지? 나는 거기로 가려고. 그러니까 언니가 올라가!

현수: 나도 새로운 방으로 가고 싶어. 누나가 올라가고 싶으면 가!

아영 언니: 나는 1층이 더 편한 것 같아. 네가 준 강사 있는 방으로 가!


나: 다들 이미 결정했구나. 배려해 줘서 고마워.


오랜만에 꺼내는 캐리어 안에 차곡차곡 짐을 쌌다. 기분이 이상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야 하는데 그가 살고 있는 방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싸고 있으니 말이다. 마음이 복잡했다. 그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설렘과 짝사랑으로만 끝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준 강사는 1층으로 내려왔다.


"누가 2층에 올라오기로 했어요?"

"저요! 지금 짐 싸고 있어요"

"그래요? 다 싸면 저 불러요. 계단이 높으니까 짐 올려다 줄게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떨리는 마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주 작은 방이었다


게스트하우스 2층 계단은 마치 높은 장벽 같았다. 전과 다르게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망설여지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내 발걸음은 공용거실을 지나 화장실 옆으로 향했다. 심호흡을 하고 방문을 열었다. 천천히 다시 방을 살펴보았다.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웬일이야. 방이 이렇게 작았다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방에서 그가 내 머리를 자르고 있었다. 그와 대화에 신경 쓰느라 방이 작다는 것을 몰랐다. 도미토리 침대 앞에는 작은 탁자와 그가 옮겨 준 캐리어가 있었다. 침대 밑에 있는 커다란 서랍장을 열었다. 캐리어에 있는 짐을 다시 꺼내서 정리했다. 탁자 위에는 그가 배운 아랍어 책과 다이빙 책으로 가득했다. 한쪽 모서리에 내 책과 화장품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내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가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야만 해'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집트 다합에는 새로운 교육생이 드문드문 찾아왔다. 준 강사는 교육생이 오면 바쁘게 일을 했고 교육생이 없으면 쉬기도 했다. 나는 그를 따라서 교육에 참관하기도 하거나 다이브 마스터 동기들과 다이빙 연습을 하기도 했다.


그날 저녁. 옆 방에 사는 마스터 두 명은 1층으로 내려갔다. 2층 공용거실에는 준 강사와 나 밖에 없었다. 그는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작업하고 있었다. 나는 그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다이빙 이론 공부를 했다.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혼자 그만 생각하고 직접 물어보자'


"강사님! 많이 바쁘세요?"

"아니요. 이제 마무리만 하면 돼요"

"그럼 저랑 맥주 한 잔 하실래요?"

"좋아요. 냉장고에 맥주 있을 거예요"

"일 마무리 하세요. 제가 맥주 가져올게요"

"고마워요"


우리는 맥주 캔을 들고 부딪혔다.


"저 궁금한 거 있어요"

"궁금한 거요? 뭔데요?"

"혹시 제가 2층으로 올라와서 불편하지 않으세요?"

"안 불편해요. 저는 사실 아무나 와도 상관없었어요. 카이로에서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었거든요. 그때도 룸 메이트가 있었는데 불편함 없이 잘 지냈어요"

"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셨구나. 그곳은 어땠어요?"

"사장님이 잘 챙겨주셔서 편하게 지냈죠. 그러다가 아랍어로 말할 기회가 없어서 셰어 하우스로 옮겼어요. 이집트 음식이 입맛에 안 맞아서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긴 했지만요"

"아~ 진짜요? 입맛에 안 맞는데 왜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요?"

"그곳에는 한식을 먹을 수 있었거든요. 먹는 거 때문에 고생을 좀 했던 기억이 나네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저도 요즘 한식을 안 먹으면 조금 힘든 것 같아요. 먹는 이야기 나와서 말인데요. 강사님! 닭 엄청 좋아하죠?"

"제가 닭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어요?"

"풉! 1층에서 닭백숙으로 요리하는 날이면 빠짐없이 내려와서 드셨잖아요"

(그때마다 귀여웠어요)

"아하하. 민망하네요. 저도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한 달 동안 설거지를 하면 누가 먹었는지 다 알게 돼요. 근데 2층에서는 누가 요리해요?"

"딱히 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해요"

"혼자서요? 와! 요리 잘하세요?"

"아니요. 못 해요. 그냥 기본만 해요"

"요리할 때 저도 알려주세요. 혼자는 힘들잖아요"

"고마워요. 일단 야채 써는 거만 도와주면 돼요"

"네. 그럴게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는 전보다 나를 편하게 대했다.


"강사님 안 피곤하세요?"

"정신없이 일했더니 좀 피곤하네요"

"그럼, 먼저 쉬세요. 저는 여기 뒷정리하고 쉴게요"


그가 먼저 잠이 들 때까지 거실에서 기다렸다. 열려 있는 방문을 지나 사다리를 잡고 살금살금 2층 침대로 올라갔다. 곤히 잠든 모습을 보니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도 눈을 감았다. 그와 같이 있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를 피해서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래. 뒤로 도망가지 말자. 이건 운명이야'   


이제 짝사랑을 끝내고 싶어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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