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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Jan 07. 2020

하나의 목적지로 가는 길

병원의 의료진에게는 하나의 목표가 있다. 그 목표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고 쉬워 보이는 것이기도 한데 그것은 바로 환자가 입원을 하거나 외래 내원하거나 잘 치료해서 병원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의사도 간호사도 조무사도 협력업체 직원 분들도 다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목적지는 하나이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길은 수없이 많다. 바로 달려갈 수도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우회해서 가야 할 일도 있고 아니면 중간에 쉬어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의료진의 각자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뛰어서 직진하자고 하고 누군가는 중간에 쉬어 가자 하고 또 누군가는 지름길이 있으니 그리 가자고 한다. 그 사이에서 다툼과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고 정작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의사와 간호사를 빼고서 병원이라는 공간을 상상할 수 없다. 그 둘의 관계는 참으로 묘하다. 병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어서 서로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여러 문제에 있어서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싸우기도 하는... 그런 관계 말이다. 내가 겪어 본 대부분의 의료진 사이에서의 문제는 각자의 의견만을 고집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병동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을 직접 부딪혀서 돌보고 있는 병동 간호사들의 판단을 들어줄 필요도 있고 내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렇게 해야 병동 간호사들이 부족한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목적지로 가기 위한 온전한 길이 생긴다. 하지만 의사의 마음엔 또 다른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게 받아들여 주면 나를 얕잡아 보지 않을까? 날 무시하지 않을까? 내가 의사고 주치의인데... '라는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은 의사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다. 전공의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런 생각이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고 있는건 어찌할 수 없는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의료진은 수평적 소통 관계가 중요하다. 그런 수평적 관계 중에서 의사는 의료진 사이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한 발 앞서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의사는 책임지는 위치에 있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환자를 포함해 누군가를 다그치기도 한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의사는 없다. 책임이라는 것 때문에 그만큼의 결정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의사들이 환자들을 목적지에 데려가기 위해 의료진 중에서 앞장설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환자의 생명에 관계된 것일 경우 주치의의 판단이 맞다고 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불가피하게 다툼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 발생하는 의료진 간의 다툼은 단순한 오해로 인한 다툼보다는 지극히 사소한 감정적 문제들이 임계점을 넘어설 때 갈등이 표면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갈등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조금 더 좋은 방향이 나오기도 하고 의료진 사이에서의 관계가 돈독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간혹 이런 갈등이 우리의 목적지를 잊어버리게 할 때가 있다. 갈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런 피해를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이런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라는 생각이다. 그것이 기본에 있어야 갈등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목적지로 가기 위해 잘 다져진 길을 평탄하게 가는 환자가 있는 반면, 수많은 가시밭길을 거쳐야 하는 환자도 있다. 오늘도 목적지에 다다른 환자를 보낸다. 그리고 다시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갈 방법을 찾는 환자들을 맞아서 고민한다. 계속 반복되는 일에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목적지 잃는 일 없이, 항상 웃는 얼굴로 그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그 수많은 길을 혼자 가는 것이 아닌 다 같이 가는 길이라 어쩌면 외롭지 않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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