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외과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지금 다시 선택하라고 한다면 같은 선택을 할까?
나는 의대생이 되고부터 쭉 외과의사를 꿈꿨었다.
외과의사가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참 많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암 제거 수술이나 간 이식 같은 큰 수술은 물론이고 피부에 생긴 고름을 짜내고 치료하는 것 내성 발톱과 같이 어떻게 보면 사소한 문제까지도 해결해 줄 수 있는 매력적인 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생 실습이 시작되고 덜컥 겁이 났다.
항상 외과 전공의 선생님들은 초췌한 모습과 피곤한 눈으로 아침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수술장에서는 혼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병동에 나와서는 동의서 받고 소독하고 처치하고... 쉼 없이 일하는 모습에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 후 의사가 되고 인턴이 되어서 다시 찾은 외과... 달라진 상황은 없어 보였다.
인턴 때 외과를 지원한다고 하면 외과 전공의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해 주신 말은 대략 요약을 해보자면...
'외과 하지 마세요. 힘들고 나중에 전문의 따고도 취직이 어떨지 모르고 다른 과 보다 편하지 않고 연봉도 적고 개업도 힘들어요.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요.'였다.
그래도 인턴 때 전공의 선생님들은 매우 싫었겠지만 저녁마다 있는 응급수술이 난 참 좋았다. 장이 터지거나... 장이 꼬이거나... 뇌사자 간이식이 생기거나... 수술장에서 당기는 역할밖에 하지 않지만 생명이 위독한 환자를 살리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아주 응급한 상황에도 침착하게 판단을 내리는 교수님들도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그 일원이 되어서 '나도 한 생명을 살렸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약간의 피곤은 극복 가능한 정도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외과를 지원해야겠다고 서서히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인턴 때에는 외과를 지원한다고 하면 항상 "다시 생각해보세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라고 말해 주셔서 서운한 감정이 들 때가 있었다. 물론 지금 나도 외과를 하겠다는 친구가 있으면 그렇게 말해 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입국 전에 선배가 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불나방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꼭 여기 불이 났으니 오지 말라고 하는데 꼭 뛰어들어서 불이 났는지 확인하는 사람들... 너네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그런 불나방 같은 사람이 있으니 외과가 돌아가는 거겠지?"
지금은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 88시간이 법적으로 정해지면서 조금은 사정이 나아졌겠지만 그 이전에는 사정이 좀 달랐다. 항상 수면 부족에... 업무과다에... 교육도 받아야 하고... 발표도 해야 하고... 쉽지 않은 시절이었던 건 맞는 것 같다. 밖에서 보는 외과와 안에서 내부인이 되어서 보는 외과는 조금은 달라져 보였다.
응급수술을 하고 항상 좋은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항상 완쾌해서 살아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수술 환자에 대한 책임 문제가 항상 따라다녔다. 외과 전공의를 한 연차씩 올라가면서 내가 겪고 듣고 느끼면서 선배들이 했던 충고가 어쩌면 잘못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전문의를 따고 펠로우를 하던 선배들이 취직자리를 잡지 못하는 모습... 수술의 결과로 법적 분쟁이 생기신 교수님들의 모습... 수술을 하고 나서 병원 수익을 걱정해야 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결국 내가 가야 할 현실적인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지금 나는 전문의를 따고 펠로우 2년을 거친 후에 취직해서 봉직의 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과연 내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외과를 지원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혹시 내 자식들이 의사를 한다고 했을 때 외과를 추천해 줄 수 있을까?
Yes or No로 쉽게 대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 정부에서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하고 공공 의대를 짓는다고 한다.
외과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외과의사의 숫자가 늘어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히 외과가 힘들어서 지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같은 외과 영역 중에도 정형외과나 신경외과는 지원자들이 많아 경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과의사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쉽고 단순하게 설명하면 병원에서 외과를 운영하면 적자가 나기 때문이다.
수술을 하면 할수록 적자 폭이 늘기 때문에 병원 입장에서는 수술장을 운영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병원에서 필요한 외과 의사 수는 줄어들 것이고 취업을 하기 어려워진다. 그다음 순서는 외과 지원은 줄어들 것이고 외과의사 부족 심화로 지방병원에서 외과의사 수급이 어려워진다. 그러면 수요가 늘어서 점점 대우가 좋아질 것 같지만 그렇게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심화되면 결국 외과 수술을 받기 위해서 점점 대형병원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아주 단순히 생각해 볼 수 있는 흐름이다.
반대로 정형외과와 신경외과가 외과 분야 중에서는 그래도 지원이 유지가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이 되기 때문에 비교적 정형외과와 신경외과의 수요는 많다. 그러므로 전공의 지원도 많아지는 구조인 것이다.
결국 외과는 불나방 같은 사람들이 지킬 것이고 똑같은 어려움을 겪을 공산이 크다.
지금 전공의들이 파업을 한다고 하고 의사협회도 정부와 대치 중이다. 항상 그렇듯 언론에서는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한다. 의학전문대학원 도입 때를 생각해 보자. 의료계는 반대했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나? 지금은 몇 군데를 남기고 폐지되었다. 결국 의료계에서 우려하던 현상들이 그대로 나타났었다. 지금 상황도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부에서 보는 의료와 현장에서 보는 의료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현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반영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된다.
나는 불나방처럼 외과를 택했고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인턴을 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외과를 지원하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정말 보람된 과고 우리 같이 함께 해보자고 말하기도 어렵다.
과연 이런 상황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지금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 근원적인 문제 해결 방법인지는 좀 더 숙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또 새로운 불나방들이 외과를 지원할 것이고 나와 같은 길을 갈 것이다.
그 후배들에게 같이 해줘서 고맙고 더 좋은 상황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