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학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나는 의학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처음 의사의 꿈을 키운 게 된 건 오래전 방영했던 ‘종합병원’이라는 드라마를 보고서 였다. 흰 가운에 말끔한 정장을 입은 의사들이 멋있어 보였고 환자를 살리는 의사들의 모습에 나도 저런 멋진 일을 해 보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많은 의사들 중에 의학 드라마에서는 주로 외과의사들이 주인공이었다. 아마도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멋있게 손을 씻고 손을 들고서 비장하게 수술장에 들어서는 외과의사들이 크게 어필할 수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그 당시 일반 시청자였던 나도 그 비장하고 장엄한(?) 수술실의 일원이고 싶다는 생각에 외과의사를 강력하게 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실제로 그 꿈을 이루었다.
분명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분들과 스텝들이 좀 더 현실적인 장면을 위해 철저한 사전 준비를 했으리라. 하지만 의사가 되고 의학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장면이나 스토리에 집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옥에 티를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면 드라마를 만든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피부를 절개하자마자 어떻게 저렇게 많은 피가 나오는 거지?’, ‘기구를 왜 저걸 사용하는 거지?, ‘저 상황에서 손이 왜 저렇게 들어가는 거지?’, ‘의국 책상은 왜 맨날 책이 널브러져 있는 거야?’ 뭐 대충 이런 느낌으로 드라마를 보니 내용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일종의 직업병(?)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의 수술장에는 장엄하거나 혹은 긴박한 배경음악이 깔리지 않는다. 마취과의 모니터링 기계음과 긴장완화를 위해 틀어놓은 음악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의료진이 있을 뿐이다. 수술 집도의인 나도 그들 중 한 명으로 수술대에 마취되어 누워있는 환자 앞에 선다.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천재적인 외과의사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 철저한 도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의사 수련 현장에서 지도교수님의 손놀림과 수술 기술들, 그리고 노하우를 수년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술식을 정립하고 나름의 노하우를 쌓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꽤나 긴 시간이 걸린다. 병원의 일상은 드라마처럼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다. 환자라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공간이긴 하지만 항상 사연이 많은 환자들이 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일반 회사와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병원에서 월급을 받는 봉직의들이나 병원을 개업한 개원의들 모두 환자 진료 후 발생하는 수익을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드라마에는 없는 현실이다. 병원의 수익이라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그 수익으로 병원 직원들의 월급을 책임져야 하고 병원 운영비를 충당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 그렇다. 그리고 현실의 외과의사들은 피곤에 지쳐 있는 경우가 많다. 수술이라는 일은 몸으로 하는 것이고 상황에 따라서는 장시간 서 있어야 하고 머리는 항상 순간순간 판단을 위해 깨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마도 같은 시간에 더 많이 피로가 누적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런 수술을 하루에도 몇 개씩 해내야 하고 끝나면 환자 상태 파악과 회진을 해야 하고 학회 발표나 진행하고 있는 연구가 있다고 하면 늦은 시간까지 준비하는 일이 잦다. 직업인으로서 외과의사는 그런 일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로서 또 외과의사로서 의학 드라마를 보면 판타지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판타지라고 해서 나쁜 의미는 아니다. 현실과는 좀 동 떨어져 있지만 우리 사회가 의사들에게 바라는 부분이 투영되어 나타난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의사들의 특징을 보면 인간적이면서 뛰어난 의술을 가지며 부정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또 자신의 안위보다는 환자의 생명을 우선으로 다루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다. 그런 의사가 되어 달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일부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뉴스를 종종 접할 수 있다. 그런 뉴스들이 의사들과 환자 사이의 간극을 더 넓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든다. 하지만 의사도 인간이고 일반인들과 비슷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힘들고 피곤한 현실에서 인간적으로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오기가 어려울 수 있다. 자신이 환자의 주치의가 아니고 전공의라면 지시에 따라 가치관과 다른 처치와 수술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쉽게 항의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의료진에게 발생할 수 있는 감염과 같은 안위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의사들을 두둔하는 핑계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환자를 잘 치료하고 돌보겠다는 일념으로 지금도 열심히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있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의학도들이 있다는 점은 반드시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나 역시도 그 의학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정진하여 현실에서 구현이 되도록 해 보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