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이번 설 연휴에도 당직이라서 못 내려갈 거 같아요. 죄송해요."
"네가 하는 일이 있는데 당연하지. 괜찮으니까 니 일이나 신경 써라."
"어머니 할아버지 기일인데 환자 상태가 안 좋아서 못 내려갈 거 같아요. 죄송해요."
"안 와도 괜찮다. 그 먼 데서 어떻게 오니. 걱정 말고 니 일 해라."
"OO야 니 결혼식인데 시간이 안돼서 못 가겠다. 미안하다."
"마! 괜찮다. 외과의사한테 그런 거 안 바란다. 나중에 얼굴이나 한번 보여도."
"쑤니야 (아내 애칭임) 오늘 기념일인데 응급수술 생겨서 같이 못할 거 같아. 미안해."
"음... 알겠어. 수술 잘하고 끝나고 전화해~~"
1년을 살다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핸드폰 달력에 매년 반복해서 표시된 날들이 있다.
당연히 국경일이라던지 구정, 추석 연휴도 포함이 되고 가족들의 생일이며 어른들의 기일이며 결혼기념일이며...
의사가 되고 나서는 경조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사실 주변 사람들은 참석을 바라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반응은 '외과의사 바쁜 거 아는데 바라지도 않는다.'이다.
그런데 실제로 대학병원에 있는 동안은 정신없이 바빴다.
전공의때는 당연하고 전문의가 되어서도 당직과 논문 준비, 발표 준비로 눈코뜰새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는 일이 다반사였다.
전공의 때 봄 옷을 들고 병원에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여름이어서 옷을 입고 나오기가 힘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시간이 되어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 한동안 어색한 기운을 피할 수 없다.
전공의 당시에 나의 여자 친구였던 아내와도 만나지 못하는 것에 서로 서운해하며 다툰 적도 있다.
내 아내도 의사여서 충분히 이해해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하루는 다투고 아내가 한마디 했던 기억이 난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 돼. 그래서 화가 나"
주변의 외과 선배들은 외과의사들 대부분은 여자 친구와 헤어진다며 나를 놀리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결혼하고 챙겨야 할 가족이 더 늘면서 챙겨야 하는 경조사가 하나 둘 늘어나는데 나와 아내 모두 참석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이런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인간관계가 많이 흔들렸던 것도 사실이다.
외과 전공의가 되고 인간관계는 깎이고 깎여서 전문의가 되어서는 내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항상 만나는 주변의 의사들과 친해질 수밖에 없고 점점 병원 밖 인간관계는 좁아진다.
물론 그 기간 동안에도 좁기는 하지만 외과 수련을 같이한 동기들과의 관계라던지 선배들과의 관계와 같이 새로 쌓을 수 있는 관계들도 있었다.
또 학회를 통해서도 다른 병원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병원 밖의 관계는 관리가 되지 않은 폐가처럼 곧 무너질 거 같은 상태였다.
복구가 안될 거 같은 암울한 심정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대학병원을 나와서 일하고 있는 지금은 그래도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모든 관계가 금방 복구가 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여유가 생기니 천천히 회복되었다.
응급수술만 생기지 않고 급히 돌봐야 할 환자만 없다면 모임에 참석도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고교 동창 모임에도 참석하기도 하고...
가끔 아내와 전공의 때나 전문의 수련 때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애들 못 보고 키운 이야기도 하다가 보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것... 내 주변 사람들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
소확행이라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