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중독
전화벨이 울린다.
병원 전화번호가 뜬다.
“과장님, 병동인데요. 오늘 입원하신 OOO분 혈압이 좀 높으신데 금식 중이라 어떻게 할까요?”
“일단 물 조금 하고 혈압약은 그대로 복용하게 해 주세요.”
얼마 후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역시나 병원 전화번호가 뜬다.
“과장님, 어제 수술하신 OOO분 혈당이 250 정도인데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좀 볼게요.”
밤이 되고서도 몇 통의 전화를 받아야 한다.
“과장님, 밤늦게 죄송합니다. 중환자실인데요. I/O (input/output) 때문에요. 지금 positive 1000 정도 걸리는데 어떻게 할까요?”
“1000 정도면 좀 봐도 될 거 같아요. 내일 아침까지 보고 결정할게요.”
그렇게 잠이 들고 편안히 아침까지 전화가 없으면 다행이다.
하지만...
“과장님, 병동인데요. 수술하고 5일째 되신 분인데 열이 38도로 체크되시는데요. 다른 증상은 없으시고요. 배액관도 괜찮으세요. 혹시 어떻게 할까요?”
“일단 균 검사하고 기본 혈액검사도 좀 같이 해주세요. 그리고 항생제 투여할게요.”
위의 대화는 내가 퇴근하고 일반적으로 받는 병원 전화의 내용이다.
집에서 전화를 받거나 차 안에서 전화를 받을 때 우리 집 애들도 그때만큼은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정도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전화 오는 내용은 환자 신체 징후에 대한 노티이거나 혈당 노티이거나 진통제와 같은 약 사용에 대한 노티 등등 다양한 이유로 나에게 전화가 온다.
외과의사와 핸드폰의 관계란 아마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전공의 때 하루는 하루 종일 온 전화의 개수를 세어본 적이 있다.
하루 종일 받은 전화가 250통이 넘었다. 거의 5분에 한 통꼴로 쉼 없이 울렸다는 이야기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로 저장해 놓았던 노래를 너무 지겨워 그날 바로 바꾸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그 노래만 들으면 그 당시가 막 떠오른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퇴근한 저녁에 전화가 울리고 있다.
가끔은 화장실에 있을 때도 오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을 때도 울린다. 가족과 여행을 간 곳에서도 어김없이 울리고 자고 있는 새벽에도 울린다.
그렇게 울리는 핸드폰을 멀리 둘 수가 없다.
언젠가 병동 간호사들과 식사를 하면서 내가 뭘 바꿔줬으면 좋겠냐고 물어볼 때가 있었다.
한 간호사가 나에게 노티를 위해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전화를 받는 게 너무 퉁명스럽고 짜증스럽게 받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나는 내 나름대로 상냥(?)하게 받는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간호사들도 노티를 할 때 야간에 하거나 퇴근 후에 하는 것은 어려워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하려고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도 약간의 핑계를 대자면 사실 자다가 받는 전화라던지, 양치질하는 순간에 울리는 전화라던지, 화장실 사용 중에 울리는 전화라던지... 그런 상황이 오면 순간 짜증이 나는 게 사실이다. 그것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전화를 받는 것이니까.
병원 전화는 받고 나서도 나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간단한 노티는 쉽게 넘어가지만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면 퇴근한 후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다.
몸은 집에 있으나 머리는 병원에 있는 상태인 것이다.
새벽에 전화를 받으면 그때부터 잠 못 들고 몇 시간씩 뒤척이는 일도 있다.
그렇게 자꾸 쌓이다 보니 핸드폰은 나에게 애증의 물건일 수밖에 없다.
가끔은 핸드폰 없이 의사 시절을 보내신 선배 의사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핸드폰이 없었으면 했다가 막상 내 손에 없으면 엄청난 불안감이 밀려온다. 마치 울리는 전화를 받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그런 느낌...
실제로 연락이 안 될 경우 병동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있다.
주치의가 연락이 안돼서 진통제 처방을 못 받아서 병동에서 난리 치는 환자...
환자가 불편한데 주치의 연락해서 해결해 달라는 환자 보호자...
갑자기 신체 징후가 흔들리는 급한 환자가 있는데 주치의 연락두절인 상황이면 정말 큰 일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내 곁에는 핸드폰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문명의 이기가 나와 병원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환자들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이 일을 그만두는 날까지는 그 연결은 계속될 것이고 그 연결로 또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연결을 해주는 간호사 분들께 감사하고 항상 좋은 마음으로 전화를 받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를 해 주시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오늘 밤에는 모두 편안한 밤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