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가장 완벽한 옷

수술복

by 한언철

외과의사의 작업복

외과의사의 일상복

외과의사의 또 다른 피부

외과의사의 잠옷


외과의사인 우리에겐 수많은 의미를 가진 그 옷...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에 걸쳐져 있는 그 옷...


수술복은 외과의사하면 떠오르는 복장이다.

푸른색 혹은 녹색의 옷으로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생겼다.

색깔은 다른 화려한 색들보다 환자들이 봤을 때 조금은 편안한 색깔이기도 하고 피가 묻었을 때 검은색이나 갈색으로 바뀌어 시각적으로 덜 자극적이게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수술복은 일반적인 옷들보다는 조금은 짧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길어지는 경우 바지가 바닥을 쓸고 다닐 수도 있고 오염물과 접촉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은 품이 넉넉하게 나온다. 그래야 활동하니 편하니까 말이다.


전공의 시절... 각 과별로 특성이 있지만 외과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술복을 입고 병동 일을 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싫어하시는 한 교수님이 있었고 병동에서 수술복을 입고 돌아다 걸리면 교수님께 한참 혼나야 했다. 그래서 각 병동마다 그 교수님이 오시면 비상 연락망으로 재빨리 교수님이 나타났음을 전파한다. 그럼 아예 병동에 회진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거나 그게 싫으면 수술복을 갈아입고 정장과 같은 일상복을 입고 일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걸 아시는지 교수님도 주말에 불시에 나타나실 때가 있어 깜짝 놀라 멀리서 보자마자 도망간 기억도 있다. 우리에겐 수술복은 꼭 지켜야 할 필요한 옷이었다.


일상복을 입고 하면 항상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전공의 입장에서는 거추장스러운 복장일 수밖에 없고 온갖 약품이나 소독약, 환자의 피와 같은 오염물이 옷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이 결혼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옷을 세탁하는 것은 또 얼마나 귀찮았겠는가? 그래서 수술복은 정말 우리에겐 대단히 필요한 소중한 옷이었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멋을 낼 필요도 없고 활동도 편하고 무료로 지급되며 세탁도 해주는... 체중이 많이 불었을 때도 체형을 가려주는 몸매 교정 효과가 있는... 완벽한 옷이다. 전공의 시절엔 하루 종일 수술방에서 땀에 절은 수술복을 입고 침대에 지쳐 잠든 적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땐 아마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잠옷이었지 않았나 싶다. 그럼 다음 날 다시 수술장에서 깨끗한 수술복을 개운하게 갈아 입고 다시 수술장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전공의 시절이 끝나면 달라질 것 같지만 전임의 시절에도 수술복은 필수 아이템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이 옷은 나에게 최고의 옷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병원 안에서는 항상 입을 수 있는 옷... 거의 10년을 가까이 입고 있지만 싫증이 나지 않는 멋진 옷이다.


미국의 저명한 흉부외과 의사가 유언으로 수술복을 입은 채로 묻어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 의사는 '수술복을 입으면 환자를 살릴 수 있다'라는 이유에서 그랬다고 한다.

그 말이 다른 이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뭉클함이 있었고 그와 함께 그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졌다.

내가 이 옷을 입고 있는 동안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거라는 더 큰 의미를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옷을 입고 편했던 이유도 좀 더 나은 수술을 하라고 그런 거라는 멋진 의미를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


외과의사가 되어서 항상 좋지만은 않았고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그럴 때 가끔 내가 입고 있는 수술복을 바라본다.

그 안에 내가 흘려온 수많은 땀이 베여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의 땀이 스며 있을 테니까.

오늘도 하루가 저물어가는데 오늘 입었던 수술복을 벗고 내일 새로운 수술복으로 갈아 입는다.

내일은 또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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