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기간 동안 '청춘 다큐, 다시 스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라는 흥행에 성공했던 2007년 당시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그때 20대였던 자신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드라마를 잘 시청하지 않는 편이라 당시 그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20대가 가질 수 있는 열정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그땐 그랬지' 또는 '나 때는...' 이렇게 가끔은 희화화되는 과거를 자신의 당시 고민과 걱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 그들의 진심이 잘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의 20대는 다르지 않고 어쩌면 같은 고민을 다른 시간 안에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도 같다. 하나의 목적을 향해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화학작용과 더불어 힘든 일이지만 일하는 동안은 어려움보다는 일하는 동안의 즐거움과 일을 마치고서 아쉬움이 더욱 많이 남는 그런 순간... 서로의 열정이 만나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내용물에 담겨 흥행으로 이어지는 과정... 그 이후 그 열정을 발판 삼아 자리를 잡아가는 그들의 모습에 나의 과거를 문득 돌아보게 했다.
나의 20대는 의사가 되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었고 나에겐 의사가 되었던 30대가 열정 가득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런 열정에 찬 순간들 중 가장 빛났던 시간을 고르라면... 바로 떠오르는 시간들이 있다.
첫 번째는 나의 전공의 2년 차 간이식 환자 주치의를 했던 때이다. 나의 외과 동기 S군과 J군이 각각 한 달씩 같이 했던 두 달의 시간... 2달의 시간 동안 정말 일을 이렇게 많이 할 수도 있구나를 체험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엄청나게 많은 응급 뇌사자 간이식을 했고 그와 더불어 정규 생체 간이식 수술도 병행해서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담당해야 할 환자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항상 뛰어다녀야 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흘렀던 시간... 정말 쉼 없이 일하고 환자를 살리기도 하고 놓치기도 했던... 쉼 없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움직였던... 외과 의사로서 보람되었던 시간이었지만 숨을 돌릴 틈이 없었다. 응급 뇌사자 간이식이 끝나고 나오면 다시 뇌사자 공여자가 있다는 문자가 와있고 곧바로 이어서 수술에 들어가고 그렇게 밤을 새우면 다시 아침 정규 수술이 시작되었다. 그럼 병동을 지키는 한 명은 밖에서 이식을 받을 환자를 챙기고 수술 후 입원해 있는 환자들 챙기느라 정말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S군과 J군과의 호흡이 좋아 던지라 전혀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일했던 순간이었다. 한 명이 열심히 혼나고 나면 한 명이 위로해주고 밤새 오더 넣으면서 넋두리하고 그러다 새벽에 일 마치고 짬을 내어서 병원 밖에서 마신 그 시원한 맥주를 아직 잊을 수 없다. 나 혼자가 아닌 같이 한다는 느낌... 정말 같이 있을 때 그때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서로를 밀고 끌고 당기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렇게 두 달이 끝나고서 외과의사로서 부쩍 커져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외과 의사로 환자를 보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또 한 번의 시간은 전임의 2년 동안 같이 했던 지금은 대학병원 교수를 하고 있는 P 선생님과의 기억이다. 전임의 2년이라는 기간은 유독 힘들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갔음에도 나에게 요구되는 높은 기준에 좌절하고 상처 받았던 시기였다. 그 시기를 P 선생님과 같이 하지 않았다면 이겨낼 수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 같다. 수술 하나씩 끝날 때마다 서로 혼이 나거나 지적받은 이야기를 하며 서로에게 어시스트 팁을 알려주고 다음 수술 들어가기 전에 파이팅을 외쳐주던... 좌절하고 상처 받았던 그 순간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고 위로해주었다. 나에게 있어 단 하나의 내편이었다. 둘 다 술을 좋아했던 터라 새벽까지 발표 준비에, 수술 준비에, 일을 마치고 나면 그 시간이 새벽 1 시건 2 시건 상관없이 술 한잔 하고 들어갔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지만 기어이 버틸 수 있었던... 버티고 버티고 버틸 수 있었던... 추억은 미화되고 왜곡된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힘든 시간을 좋은 사람과 같이 일을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준 시간이었다. 둘이 같이 보내는 그 시간에 같은 고민과 갈등을 겪었고 또 같이 힘들어했지만 이루어야 할 목표는 같았고 그 목표를 이룰 열정이 있었기에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열정에 상승효과였을까 그때 우리 둘 뿐만 아니라 같이 하면서 도움을 주고 마음 맞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았었다. 지금도 연락하고 안부를 묻는 건 나에게 소중하고 열정에 가득 찼던 순간을 같이 했던 고마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지치지 않고 쉼 없이 달렸던... 그리고 버티고 버틸 수 있었던 열정이 지금 나에게도 있는가? 그 열정을 같이 할 사람이 있는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같이 좋아해 주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인데 서로의 마음이 맞는 사람과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생각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을 가졌는데 나와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설득하고 설명하는 과정이 힘들게 느껴진다. 눈빛만 봐도 알아봐 줄 수 있고 같이 있으면 힘이 되는 그런 사람을 찾는 건 나의 큰 욕심인 걸까?
뒤늦게 돌이켜 보니 나의 서른은 같은 목적을 향해가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여정은 힘들어도 극복할 수 있고 기어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배운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다시 서른을 돌이켜 보며 내 앞의 마흔을 바라본다.
좌충우돌 치열했던 열정의 시간을 지나 다시 마흔을 바라봤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은 좌고우면 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