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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Aug 24. 2021

대장암 수술과 배액관

언제 넣고 언제 빼는 것인가?

" 도대체 이 수류탄은 언제 뽑는 교?"

연제 지긋한 할아버지 환자분이 회진 중에 대뜸 물어보신다.

"수류탄이오? 아~~ 물 주머니는 어르신 대변 보고 나면 뽑아드릴 거예요."


수류탄으로 불리기도 하고 물주머니로 불리기도 하는 배액관이 있다.

외과 병동을 다니다 보면 몸에 얇은 관이 연결된 조그마한 주머니를 가지고 다니시는 환자분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주머니의 이름은 JP 배액관 (Jackson-Pratt drain)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술 후에 이 배액관을 넣고 나오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출혈 감시이다.

수술장에서 지혈을 잘 하고 나오지만 환자가 마취에 깨면서 혈압이 높아지고 다시 출혈이 생기는 경우가 있고 지연성으로 입원 기간 중 뒤늦게 출혈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이런 배액관으로 출혈 여부를 감시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역할을 해준다.


 두 번째, 문합부 누출의 감시이다.

대장암 수술은 암이 있는 대장 부위를 절제 후 장과 장을 연결하는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장과 장의 문합 부가 생기게 된다. 이렇게 생긴 문합 부가 아물지 않고 소화액이 누출이 되는 경우는 복막염 및 패혈증으로 진행할 수 있어 수술 후 환자의 신체 징후 및 배액관의 성상 변화 여부를 잘 살펴야 한다. 배액관의 성상이 찥은 녹색이나 갈색 혹은 대변 찌꺼기와 같은 것이 섞여 나올 경우 문합부 누출을 의심해 볼 수 있고 그에 따라 추가적으로 검사 시행하여 확진을 할 수 있다.


 세 번째, 염증 조절의 목적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복강 내 염증으로 수술을 시행하였을 경우 복강 내에 지저분한 체액 등이 있을 수 있다. 특히나 장 천공으로 수술을 시행했을 경우 복강 내로 소화액이 흘러나왔거나 대변이 흘러나온 상황이라면 오염 정도가 더 심하다. 이럴 경우 수술 시행하고 복강을 깨끗하게 세척한다고 해도 세균들이 남아있을 수 있고 수술 후 농양을 형성하는 등의 합병증이 발생 가능하다.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배액관을 여러 개를 거치하고 나오게 될 수 있다. 이런 배액관으로 배액을 하더라도 농양이 형성될 수 있지만 기존에 있던 배액관을 통해 조금 더 배액이 잘 될 수 있는 배액관으로의 교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오염된 체액을 몸 밖으로 빼 내어줘야 염증 조절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간단하게 살펴 본 세가지 이유로 배액관을 수술 중에 넣고 나오지만 최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암종 수술 후 조기 회복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가급적이면 배액관을 꽂지 않는 연구들도 발표되고 있다. 나 역시도 수술이 정상적으로 잘 진행되고 장 문합도 별문제 없이 시행되었을 경우 배액관을 꽂지 않고 나오기도 한다. 만약 배액관을 가지고 나왔다고 해도 가급적이면 빨리 제거해드리고자 노력한다. 그래도 아직 배액관을 사용하는 이유는 서양의 식습관과 우리의 식습관이 달라서 생기는 차이에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서양의 경우 빵과 육식과 같은 대변에 찌꺼기가 많지 않은 식사를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채소와 같은 식이섬유 섭취가 많고 대변에도 찌꺼기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차이가 문합부 누출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합부 누출의 감시에 있어서 배액관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런 이유로 배액관을 꽂았다고 하면 언제 뽑게 될까?

앞서 언급한 이유로 더 이상 배액관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을 때 제거를 하게 된다.

출혈의 위험성이 없고, 문합부 누출이 의심되지 않고 수술장 소견상 염증이 심하지 않다고 판단이 되면 제거를 하는데 환자의 신체 징후가 안정되어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을 만족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수술 후 4-6일 정도에 가스가 나오고 대변을 한차례 본 후에 뽑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주치의의 판단에 따라 조금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다.

제거 후에 체액이 쌓이면서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 환자와 보호자분들이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체액의 경우는 배액관이 꽂혀있으면 일정한 양이 지속적으로 나오게 되고 소량은 체액은 배액되지 않으면 몸에서 대부분 흡수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배액관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 몸의 입장에서는 이물질이기 때문에 오래가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가급적 문제가 없다고 판단이 되면 제거를 하게 된다.


"와~~ 이거 물주머니 뽑고 나니까 시원 섭섭하네요. 움직일 때마다 가지고 다녔더니 정도 들고 했는데..."

아무런 문제 없이 수술 후 회복하고 배액관 제거를 해드리고 나니 농담을 던지시는 환자분...

"이제 줄 빼어드렸으니 더 잘 움직이셔야 합니다."

나도 웃으면서 한 마디 해드린다.


 배액관도 제 할 일을 충실히 다했으니 이제는 제거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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