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언철 Jun 30. 2022

저는 환자 분이 너무 미워요.

 이전에도 다른 암으로 치료를 받고 경과 관찰 중인 환자로 이번에는 진행성 직장암으로 나의 외래로 내원한 환자였다. 진행성 직장암으로 수술 전 항암방사선 치료를 우선 시행하였다. 치료를 하는 동안에 별다른 내색 없이 잘 받으셨다. 하지만 항암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암의 크기 많이 줄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생각되어 수술을 해야 할 때였다.


"선생님, 저는 수술 안 할 겁니다. 내 주변 친구가 직장암이었는데 수술받고서 얼마 못 살고 죽었어요. 저도 그럴 거 같아 못하겠어요. 아니 안 할 겁니다."

"어르신, 그 친구분 상태가 어땠는지 제가 알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어르신 상태로만 보면 수술만 잘되면 완치까지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지금 수술 안 하면 암이 다시 자랄 거예요."

"아니요. 저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수술 안 하겠습니다."

"그럼 제 생각에는 항암치료라도 하시는 게 도움이 될 거 같은데요."

"선생님, 그냥 좀 보면 안 될까요?"


몇 번을 설명하고 설명하였으나 환자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결국 최종 결정은 환자가 하는 것이고 치료라는 것은 억지로 끌고 갈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환자가 하고자 하는 대로 경과 관찰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한 해가 흘렀고 예상대로 암은 조금씩 조금씩 자라는 게 보였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절제가 가능한 정도여서 다시 한번 환자에게 수술을 권유했다.

"어르신, 암이 자라고 있고 지금은 제거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이라도 수술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선생님, 제가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사업하다 망해서 자식 하고도 연을 끊고 삽니다. 벌이도 마땅치 않고 간병해줄 사람도 없어요. 저는 그냥 수술 안 하렵니다."

"어르신, 요즘은 사회사업실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방법은 찾으면 있을 겁니다. 더 늦기 전에 합시다."

"아니요. 아직은 안 하고 싶어요. 선생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냥 한번 더 봐주세요."

"그럼 더 늦기 전에 항암치료라도 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볼게요."


그래서 항암 하시는 선생님께 연결해드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우연히 병원에서 환자를 마주쳤다.

"어르신, 오랜만이네요. 항암치료는 잘 받고 계시죠?"

"아... 항암치료 안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항암치료를 하고 계실 줄 알았던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진료는 보셨으나 치료는 거부하셨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환자의 개인적 사정이나 가치관을 속속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비난을 하거나 화를 낼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한 믿음이 없으신 걸까? 아님 현대의학에 대한 믿음이 없는 걸까?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을 하며 환자를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던 중 예약되어 있던 검사를 하고 외래로 다시 환자가 찾아왔다. 많이 쇠약해진 모습이었고 암은 더 자라 있었다. 이제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르신, 이제는 수술로는 안될 거 같은데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기엔 아직 이른 거 같아요. 항암치료라도 해 봅시다."

"아니요. 저는 그냥 자연 치유해보겠습니다."

"아... 어르신 그러면 나중에 분명 문제가 생겨서 오실 거예요. 제말 한 번만 들어주세요. 암이 점점 커져서 장이 막히면 대변 주머니 만드는 수술을 해야 될 수도 있어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냥 자연 치유해보겠습니다."


 눈에는 보이는 뻔한 결과가 환자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이야기를 해드린다고 들을 상황도 아니다. 그렇게 다시 환자진료실을 나가시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허탈했고 나의 마음은 무기력했다. 의사의 말을  번이라도 귀담아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어떤 이유로 나의 말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인지 화가 치밀기도 했다.


 그렇게 몇 달 후 예상했던 결과를 받아 들었다.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이전에 보셨던 분인데 자연 치유하러 가려던 분이고 배가 아프셔서 오셨는데 환자 분이 복통 때문에 장루를 만들던지 해야겠답니다. 실제로 검사상에서는 정말 막히지는 않았는데 장은 좀 많이 늘어나 있네요."

 "네 알겠습니다. 일단 입원시켜 주세요."


다음 날 만져본 환자의 배는 가스가 차서 부풀어 있었고 그나마 통증은 조금 덜 한 상태였다. 환자에게 장루 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렇게 수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가스가 좀 빠지고 대변이 좀 나오면서 부어있던 장이 조금 호전되었고 통증도 덜해졌다. 그러니 환자는 다시 수술을 안 하겠다고 하신다. 답답한 마음에 보호자를 불러보시도록 설득했다. 보호자에게라도 상태를 상세히 설명하고 설득을 위해 도움을 청하고자 했다. 하지만 환자는 거부했다. 자식에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기 싫다는 게 이유였다. 자신은 자식에게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럴 수가 없다고... 입원한 기간 동안 단도직입적으로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여명이 길지 않을 것 같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제야 환자는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다시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른 병원 진료를 잡아달라는 말이었다.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다시 결정을 해보겠다고 하셨다. 서운함, 화남, 무기력함...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솟아올랐다. 그동안 그렇게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야기 들어드리고 다시 설득하고... 그 수많은 과정이 환자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정말 나를 믿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환자 개인의 사정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일까? 그 말을 듣고 치솟았던 감정들을 가라앉히고 환자에게 말했다.


"어르신, 어느 병원에 가시든 상관없습니다. 거기서 꼭 치료받으셔야 되는 상태예요. 치료 안 받으시면 정말 큰일 나는 상태니까 그 병원에 가셔서 다시 한번 설명 들어보시고 꼭 치료받으세요."라고 말하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그 순간에는 정말 환자 분이 너무 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환자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런 감정을 가라앉혔다. 의사는 신이 아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환자와 보호자들의 결정에 대해서 섣불리 왈가왈부할 수는 없음을 잘 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계속해서 내 마음에 남아있다.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꼭 치료받으시고 조금 덜 힘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