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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21. 2022

문신남과 사우나

"아빠, 저 사람은 왜 몸에 그림을 그렸어?"


아들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이 모든 건 다 아빠 탓이다. 멀쩡한 욕실 놔두고 동네 목욕탕을 데려왔고,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건식 사우나를 오늘 하필이면 재미 삼아 데리고 들어갔고, 상반신 전체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를 마주쳤으면 조용히 되돌아 나가면 되었을 것을 태연한 척 자리 잡고 앉아버렸으니, 모든 게 다 아빠 탓이다. 목소리나 작으면 모를까, 아들의 하이톤의 목소리는 사우나를 쩌렁쩌렁 울렸다. 아들아, 너는 대체 눈치라든가 분위기 파악이라든가 뭐 이런 건 전부 어디다 팔아먹은 것이냐. 찰나의 순간, 35년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 10년 전쯤 언젠가도 이런 문신을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더랬다.


때는 내가 처음 인턴을 시작한 지 갓 2주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는 응급실 트라우마 구역에 있었고, 이제 겨우 일이 조금씩 손에 익고 있었다. 팔뚝 전체를 문신으로 휘감은 건장한 체구의 젊은 남자가 손상 구역으로 들어왔고, 셔츠는 피로 물들어 있었다.


"계단에서 굴렀는데 화분이 깨져버렸습니다."


숨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데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내며 남자는 셔츠를 위로 걷었다. 사나운 이빨을 가진 호랑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랑이의 뺨에 - 남자의 등에 - 10센티의 칼자국이, 아니 깨진 화분에 의한 상처가 있었다. 나는 졸지에 호랑이 그림을 수습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괜찮으니 아무렇게나 꼬매 주씨요."


사색이 된 인턴이 불쌍했는지, 남자가 한마디 덧붙였다. 괜찮다고? 이게 괜찮을 일인가?


임상경험 2주 차 인턴의 능력으로는 호랑이 그림을 원래대로 복원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얼기설기 꼬매 놓고 나니 호랑이 뺨에 깊은 칼자국이 - 깨진 화분 자국이 - 생겨버렸다. 원래의 화려함에 살벌함을 더해 주는 형상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인턴을 뒤로하고 남자는 쿨하게 일어섰다.


"고맙습니다."


그래, 문신을 했다고 꼭 불량배는 아니지. 선입견일 뿐이다. 오히려 저런 사람이 마음은 넓은 경우가 더 많다고. 괜히 쫄 필요 없어.


다시 현실로 돌아온 나는 조용히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림을 그리고 싶으셨나 보지."


남자가 피식 웃었다. 너무 갑자기 나가면 이상할 거 같아 아들에게 백까지 세고 나가자고 했다. 순진한 아들은 우직하게 백을 센다. 이렇게 오랫동안 셀 줄 알았으면 오십만 세자고 할 걸.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는 문신남을 뒤로하고 사우나를 나왔다.


(2017년 어느 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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