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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04. 2022

울고 싶은데 뺨 맞아 봤어?

나는 분명히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어. 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술이 어렵고 오래 걸릴 환자들은 연이어 오는 경향이 있어. 역대 이런 적이 없었을 만큼 수술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중에 하필 우리 팀 전공의가 사직을 했단 말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예정된 수술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병동 환자 콜 받아야지, 오더 내야지, 정규 수술은 힘들기 짝이 없지, 응급 환자는 또 왜 그렇게 몰려오는지. 꾸역꾸역 일을 해 나가다가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여기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느냐는 생각이 문득문득 솟아오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어.


그렇게 헤어날 수 없는 우울감에 침잠해 있던 어느 날이었어.


특별할 것 없는 날이었어. 실은 오랜만에 비교적 어렵지 않은 수술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어. 두 번째 수술이 에스상결장암으로 한 번 수술받았던 환자에게 새로 생긴 직장암 수술이라 다소 어려울 예정이었지만 그 정도야 지난 몇 주 정말로 어려웠던 수술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어. 오늘은 오랜만에 수술을 일찍 끝내고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어. 나는 정말로 휴식이 절실했어.


오산이었어.


그날은 내가 외과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힘든 날이었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일들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일들이 하루 동안에 한꺼번에 현실이 되어 몰아닥쳤어.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았다던 김첨지 뺨치는 '운수 좋은 날'이었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면 구차해 보일까 봐 일일이 이야기하지는 않을 거야. 외과밥 먹은 지 십오 년 만에 가장 힘든 날이었다면 대체 어느 정도였을지는 상상에 맡길게.


그리고 마지막 응급 수술이 끝났어. 시간은 어느덧 밤 열 시를 향하고 있었고 나는 녹초가 되어 상담실에 앉았어. 길고 길었던 하루가 마침내 끝나가고 있었어. 몇 번을 울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어. 눈물을 흘렸다가는 우울의 바닷속으로 깊이 가라앉고 말 것만 같아 이를 악물고 참았어. 결국에는 울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 줄 알았어.


사실대로 얘기할게.

나는 내가 울고 말 거라는 사실을 상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보호자들을 마주한 순간 깨닫고 만 거야.


환자는 서른 살이었어. 고작 서른 살. 암으로 스러지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였어. 나는 최대한 감정을 싣지 않고 절제된 언어로 사실만 전달하려고 노력했어. 당신의 아들은 대장암인데 간 전체에 전이가 되었고 수술로 절제가 불가능한 상태다, 그런데 암이 진행을 너무 많이 한 나머지 천공이 발생하여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천공된 대장만 절제했는데 간에 전이된 암과 혈관 주변 림프절들은 절제가 불가능하여 그대로 두고 나왔다, 암을 수술로 없앨 수 없다는 것은 완치는 어렵다는 말이다, 회복되고 나면 항암치료를 하겠지만 진행 정도와 암의 양상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예후는 좋지 않을 것이다, 올해를 넘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 라고 말이야. 아, 한 가지 더 있다. 천공의 정도가 심해서 장은 연결하지 못하고 장루, 그러니까 변주머니를 만들었는데 이건 항암치료를 지속해야 한다고 가정할 때 남은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할 거라는 말도 했어.


앞날이 창창한 서른 살 아들에게 내리는 시한부 선고라니. 부모의 반응이 어땠을 것 같아? 부정하고, 분노하고, 애원하며 매달리는 부모를 달래 주어야 했는데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이 진정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 내 피로와 우울이 그들의 절망과 만나 상담실을 무겁게 짓눌렀어. 나는 숨조차 쉬기 어려웠지만 그들이 일어서기 전에는 차마 자리를 뜰 수가 없었어. 그들의 절규와 오열을 받아줄 대상이 거기에 있어야만 했고 그건 나일 수밖에 없었거든.


울고 싶은데 뺨 맞아 봤어?


울었어. 더 이상은 참을 수도, 참을 이유도 없었어.

애써 참아 왔던 눈물이 터지고 나니 주체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울고 또 울었어.

아무도 없는 교수 탈의실에서, 나는 목놓아 울었어.

결국은 울고야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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