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누구든 무슨 일을 하든 힘들고 그만두고 싶은 때가 오기 마련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 외과 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참 쉽지 않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정말로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싶은 때가 종종 찾아온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나는 왜 하필이면 외과 중에서도 제일 응급수술이 많은 대장항문외과를 선택해서 응급은 응급대로 하면서 전공의 일 많이 시켜서 도망가게 만든다고 욕이나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올해도 연례행사로 한 명밖에 없는 우리 분과 담당 전공의가 도망갔고 결국은 사직서를 냈다. 그러면 도망간 전공의 몫의 일은 누가 하고 있느냐. 나를 포함한 주니어 스탭들이 한다. 외과 내에서조차 너희 분과에서 힘들게 해서 도망갔으니까 이번 턴까지는 전공의 없이 너희 팀에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고 있다. 이번에는 우리 탓이 아니라고, 아무런 이벤트도 없었다고, 우리 분과가 응급수술이 많아서 업무가 많아지는 것을 어떻게 하냐고 읍소를 해도 원칙을 그렇게 정해 놓았던 것이니 어쩔 수가 없단다. 응급수술은 쉴 틈 없이 몰아치고 전공의 없이 우리 분과 주니어 스탭들끼리 어찌어찌하고는 있는데 모두 다 번아웃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다.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진짜로.
월급이라도 많이 주든지.
충남대병원에 신장이식을 20년 담당해 오던 교수님이 연수를 가고 후임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퇴사를 해버리면서 충남대 병원에서 신장 이식수술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필수 의료의 현실이 그렇다. 지금까지 잘 버텨 왔는데 뭐가 더 필요하냐는 식이다. 그러다 보면 한계 상황에서 버티던 의료진은 결국 번아웃에 빠질 수밖에 없고, 그들이 빠져 나가고 나면 다른 대책은 없다.
열심히 일해야 할 동력을 상실해 버렸다.
깊은 슬럼프다. 이번엔 좀 길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