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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May 05. 2022

애기, 엄마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남자는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게도 남자의 키는 130이 겨우 될까 말까였다. 실은 키를 제대로 잴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었다. 남자의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에서 끊어져 있었고, 남아 있는 오른쪽 다리는 뒤틀려 있었으며, 그 아래에 달린 오른발은 크기가 너무 작아 30킬로그램이 채 안 되는 남자의 몸무게조차 지탱할 수 없어 보였다. 누가 봐도 성인 남자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몸이었다. 하지만 내가 남자에게서 느꼈던 강한 이질감과 위화감의 근원은 남자의 끊어진 왼다리도, 뒤틀린 오른쪽 다리도, 변형의 정도가 심해 팔이라기보다는 앙상한 나뭇가지 같아 보였던 양팔도 아닌, 남자의 수염과 음모였다. 남자는 어른이면서 어른이 아니었다. 남자의 몸은 분명 어른이 아니었는데, 실은 어른이었다. 나는 내 눈앞의 객체가 가지고 있는 이런 모순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대체 이 남자는 무어란 말인가. 수술을 준비하고 있던 전공의에게 물었다.

"무슨 증후군이라고?"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러니까 그게 무슨 증후군이냐고."

"... 잊어버렸습니다."

분명히 조금 전에 한참 동안 구글링을 했었는데 그새 전공의도 나도 병명조차 잊어버렸다. 처음 들어본 증후군이었다. 의사 면허를 딴지 십오 년이 지나니 내 전공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학생 때 배운 질병은 자세히는 모를지언정 이름 정도는 기억하는데 이 증후군은 정말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단언컨대 우리나라에서 이 병을 진단받은 환자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몇 안 되는 환자 중 한 명의 배를 갈라야 하는 처지였다. 남자의 CT를 보고 또 보았다. 암인지 염증 덩어리인지 모를 부분과 커진 림프절을 제외하면 특이할 것이 없는 복부였다. 그래, 어차피 사람의 배야 다 똑같지 뭐. 위화감을 애써 진정시키고 수술을 시작했다.


남자의 뱃속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충수돌기를 둘러싼 회장과 맹장, 에스상결장이 한 덩어리로 붙어 후복막에 단단히 고정되어 도저히 떼어낼 수 없는 상태였다. 이쪽저쪽 방향을 바꿔가며 접근을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명백히 불가능한 것을 억지로 시도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물러설 줄을 알아야 한다고 배웠고,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절제를 포기하고, 늘어나 있는 대장의 감압을 위해 소장결장우회술과 에스상결장루 조성술만 시행하고 수술을 종료했다. 그것이 최선이었다.


수술장 상담실에서 남자의 부모와 마주했다. 남자의 어머니가 근심이 가득한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나요 선생님?"

이럴 때는 빙빙 돌려서 말해서는 안 된다. 절망적인 사실을 정면으로 대하는 것이 두려워 변죽을 울리게 되면 설명하는 나도 듣는 보호자도 모두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했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 표정으로 설명을 다 들은 어머니가 물었다.

"그러면 장루는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건가요?"

"그렇지요. 원발 병변의 절제가 어렵기 때문에 장루를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고 보시는 것이 맞습니다."

어두웠던 어머니의 표정이 묘하게 담담해졌다. 나는 그 담담함이 이름을 외우기조차 어려운 증후군을 가진 남자의 삼십 평생과 함께 해 온 어머니에게 자연스럽게 체화된 체념과 수용인 것 같아 보여 더 슬펐다.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겨 있던 어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교수님,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네, 말씀하세요."

이런 상황에서 보호자들이 하는 질문은 대개는 앞으로 무슨 치료를 하느냐, 치료가 가능하기는 한 것이냐, 얼마나 살 수 있느냐 따위의 것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어머니의 질문은 나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우리 애기가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슬플 것도 감동적일 것도 없는 '애기'라는 단어 한 마디에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온전히 남자에게 바쳐왔을 어머니의 지난 삼십 년이 '애기'라는 말 한마디에 응축되어 아무런 설명 없이도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자식을 향한 사랑으로 버텨 왔을 삼십 년의 인고의 세월. 그 삼십 년이 비극으로 마무리될지도 모르는 모진 현실 앞에서도 자식의 마음의 상처를 먼저 걱정하는 끝없는 모정에 마음이 저려왔다. 하지만 어머니의 질문은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글쎄요 라고 독백처럼 내뱉고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 역시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질문은 아닐 것이었다. 새벽에 수술하느라 고생하셨다는 말을 남기고 일어서 상담실을 나서는 어머니의 등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요. 제가 모든 것을 안고 가야지요.'


자그마한 체구의 어머니 등이 유난히 커 보여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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