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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Jul 18. 2023

참고 인내하고 밟으면 닿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에 부딪혀 흩어진다. 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다. 한눈에 보이지 않는 넓은 강을 따라 자전거를 달린다. 다리의 근육은 팽팽한 긴장감을, 자전거 손잡이를 잡기 위해 허리를 굽힌 나의 상체는 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진동을 느끼고 있다. 햇빛은 내 머리 위에서 내리쬐고 있고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내 눈앞에는 길게 이어지는 강줄기와, 넓은 강 옆에 펼쳐져 있는 자전거길과, 길 옆에 아무렇게 자라 있는 잡초와, 자전거 위에 있는 나에게 그늘을 드리워 주고 있는 나무들과, 마주 보며 달려오며 가볍게 인사해 주는 자전거 타시는 분이 스쳐 지나간다. 찰나의 순간이다. 풍경은 계속 움직이고 있고 계속 변하고 있다. 누군가 풍경 사진을 내 눈앞에서 빠르게 넘기고 있는 듯하다. 빠르게 지나가는 만큼 몸에 전해져 오는 아픔이 조금씩 커진다. 통증은 몸에서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참을 만하다. 조금 더 참고 인내하고 밟을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바라던 곳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로드 자전거를 취미로 시작을 하고 국토종주, 동해안 종주, 섬진강 종주, 세재자전거길, 오천 자전거길을 달려보았다. 산, 바다와 강이 감추고 있는 내밀한 부분까지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차로는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자전거로는 달릴 수 있다. 온전히 나의 두 발로 페달을 밟아서 나아갈 수 있다. 한강, 낙동강, 섬진강, 영산강, 금강 등과 같이 큰 강줄기 옆이나 동해안 해변을 따라서 관심이 없으면 잘 보이지 않는 자전거 길이 있다. 우리나라의 자전거 길은 주로 하천이나 강, 해변을 따라 조성되어 있다. 그 길들을 달리다 보면 강이나 바다에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한강은 무뚝뚝하지만 넓은 마음을 가진 아버지와 같은 느낌이라면 낙동강은 조금 더 부드러우며 포근하게 감싸주는 어머니와 같은 느낌이다. 금강은 우락부락하지만 듬직한 큰 형과 같고 영산강은 굽이굽이 변화무쌍한 것이 변덕쟁이 둘째와 같고 섬진강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막내 동생과 같은 느낌이다. 통일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강원도의 자전거 길은 맑은 바다와 모래 해변을 따라 비치는 윤슬이 아름다운 길이다. 그 아래로 포항까지 이어지는 경북의 해안 자전거길은 낙타등과 같이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되는 재미난 길이다. 난 특히 가을에 자전거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땀을 식혀주는 서늘한 바람과 산들을 물들이는 알록달록 단풍이 너무 아름답다. 그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 가쁜 숨을 내쉬며 난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전거를 타지 않았으면 몰랐을 많은 즐거움과 감동이 있다. 


 나에게 자전거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공원 같은 곳에서 여유롭고 한가하게 자전거를 타면서 다니는 장면이다. 자전거를 운동으로 또 취미로 시작한 것이 3년이 되어 간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같이 해보자고 적극 권유를 하는 통에 나도 모르게 중고 입문용 자전거를 사버렸다. 자전거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난 로드자전거를 샀다. 산악자전거와 비교되는 속도도 더 빠르고 날씬하게 생긴 자전거다. 일단 한번 해보자고 덜컥 80만 원짜리 중고자전거를 지르고 정신을 차려보니 헬멧, 자전거복, 자전거에 부착할 여러 가지 장비들, 신발, 양말 등등 자전거 가격보다 더 비싼 물건들이 내 앞에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마음은 '자전거 뭐 별거 있어?'였다. 그런데 시작하고 보니 '이거 만만치 않은데...'였다. 그냥 페달만 돌리면 될 거라는 내 기대와는 달리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페달을 밟는 방법, 다리의 근육을 이용하는 방법, 자전거 타는 자세, 내리막 내려가는 방법, 오르막 올라가는 방법, 기어 변속 방법 등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자전거를 타고 느낀 점은 이건 내가 아는 자전거가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처음 자전거 배울 때처럼 넘어지기도 여러 차례... 하지만 조금씩 알아갈수록 사람들이 빠져드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를 시작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내 두 발로 멀리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열심히 페달을 돌린 만큼 갈 수 있는 거리가 결정된다. 또 한 가지는 평소 가보지 못했던 구석구석의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내 외과 수련동기 2명과 3일간 국토종주를 했을 때는 하루에 200km 정도를 달렸었다. 보통 아침 일찍 라이딩을 시작하기 때문에 차가운 공기가 나의 폐를 채워주면 매우 상쾌하고 기분 좋게 해 준다. 그리고 힘도 충분하기 때문에 처음 50km 정도는 크게 어렵지 않고 기분 좋게 달릴 수 있다. 100km 정도를 달리면 점심시간이 되어서 점심을 먹고 달리니 조금씩 힘은 들지만 견딜만한 상태이다. 150km를 달리고 나면 피곤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온몸에 특히 엉덩이에 통증이 심해진다. 통증을 참고 인내하고 페달을 밟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게 강으로 산으로 바다로 어디든 갈 수가 있었다. 한 번 두 번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다니다 보니 그 여행만이 주는 어떤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장거리 여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여행이긴 하지만 운동도 같이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달리는 동안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자전거로 경주를 하기도 하고 속도에 집착하기도 하며 거리에 집중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어떤 것에 얽매이지 않고 쉬고 싶을 때 쉬고 힘이 닿는 곳까지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자전거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제공한다. 가는 목적지가 같아서 동행하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특히 마음 맞는 사람들과 동행하는 길을 무척 즐겁다. 서로 배려해 가며 속도를 맞춘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늦추어주고 쭉 뻗은 도로를 만난다면 있는 힘껏 달려보기도 한다.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어색하지 않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의 자전거 길을 다 달려보고 싶다는 욕심과 해외에서도 타보고 싶다는 희망사항이 생겼다. 꿈을 꾸면 언젠가는 이루어지지 않을까?


 오늘도 쭉뻗은 길을 있는 힘껏 밟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본다. 시원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는 느낌이 난다. 기분 좋은 땀방울이 이마에 흘러내린다. 난 그렇게 페달을 있는 힘껏 밟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참고 인내하고 밟으면 내가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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