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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Mar 16. 2023

설레었던 첫 마라톤 완주의 기억

 내가 무슨 용기로 42.195km를 뛰는 풀코스 마라톤을 신청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마라톤 대회는 신청해야겠는데 이왕 뛰는 건데 풀코스 한번 해보자는 객기를 부린 것이지 싶다. 나는 대회 신청을 해 놓고 걱정이 되어 한 여름 더위에도 뛰러 나갔다.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뛰어도 습한 공기 덕분에 한 겹의 옷을 더 입고 뛰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는데 습한 공기 덕에 마스크를 쓰고 달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10km를 뛰기도 하고 6km를 뛰기도 하고 속도를 내어서 뛰어보기도 하고 천천히 뛰기도 했다. 너무 날이 더워서 어쩔 수 없이 나무 그늘이 있는 산을 뛰는 트레일 러닝도 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땀을 흘린 적이 있나 싶었다. 체계적인 훈련이라기보다는 시험을 앞둔 수험생 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감이 커져 무엇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20km 정도의 하프 마라톤을 뛰어본 것이 그때까지 가장 멀리 뛰어 본 거리였다. 그래서 42.195km라는 거리가 와닿지 않고 뜬구름 잡는 막연히 멀다는 느낌밖에 없었다. '하프 마라톤을 두 번 하는 거니까. 그 거리를 두 번 뛰면 힘들겠지?'라는 생각 정도는 들었지만 뛰어본 적이 없기에 그 이상의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마라톤 완주에 필요한 것들에 관해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그중 필수적인 훈련은 풀코스 마라톤을 뛰기 전에 반드시 30km 이상을 뛰어서 다리를 적응시켜야 한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대회 1달 전 30km, 2주 전 35km를 달려보기로 했다. 30km는 하프마라톤에서 10km를 더 뛰는 것과는 다른 달리기였다. 다리가 서서히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5km를 뛰었을 때는 다리가 내 마음과 달리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뛰어본 거리에 내 몸은 너무 힘들었다. 힘들다는 단순한 단어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복합적인 아픔이었다. 다리도 아프고 몸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완주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도 아팠다. 그렇게 달리고 나니 다리가 고장 나 움직일 수 없어 며칠간은 도저히 뛸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회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남은 1주일은 연습량을 줄이고 영양 섭취를 잘하고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했다. 완주가 될까 하는 걱정과 불충분한 연습으로 인한 불안감이 내 마음에 일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충고한 것처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했다. 대회 전날이 되어 대회 당일에 들고 갈 준비물을 쭉 펼쳐놓고 빠진 것이 없는지 점검하였다. 달리면서 먹을 것부터 옷, 신발, 모자 등등. 옷에 부착해야 하는 배번표를 보고 있으니 정말 내가 풀코스마라톤을 뛴다는 실감이 났다.


 2022년 10월 이제 막 더위가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침으로는 여름과 이별을 준비하듯 조금씩 서늘한 기운을 품고 있었지만 오후에는 아직 여름과 헤어지기에는 미련이 남는 듯 무더운 기운을 내비치는 날이었다. 경주 국제 마라톤에 참석하기 위해 아침 일찍 차를 몰고 경주로 향했다. 출발시간 9시까지 1시간 남은 시간 기분 좋은 아침 공기가 내 몸에 와닿았다. 오늘 내가 42.195km를 드디어 뛰어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설렘과 뒤섞여 두려움도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있었다. 출발지에서 짐을 맡기고 다양한 사람들과 섞여 몸을 풀고 있으니 서서히 긴장되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사람들의 체온과 더불어 열기가 전달되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출발 신호가 울리고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첫 시작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뛰다 보니 어깨를 부딪히기도 하며 다 같이 달려 나갔다. 첫 5km는 몸을 푼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천천히 뛰기로 마음먹었으나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와 발걸음에 나도 모르게 내가 생각한 속도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풍물패가 응원과 흥을 돋우기 위해서 연주를 하시는데 꽹과리 박자에 맞추어 내 발걸음의 박자도 빨라지는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달리고 보니 10km가 지나있었다. '오~ 이거 괜찮은데, 생각보다 잘 달려지는데'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은 알지도 못한 채 신나게 달려 나갔다. 20km를 달렸을 때까지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우연히 같이 달리게 된 그룹과도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더불어 달렸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달리기 시작한 지 2시간 가까이가 되어가니 태양이 언제나 그렇듯 정점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더위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내 몸이 문제였다. 초반에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몸이 천천히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25km가 넘어가기 시작하니 같이 달리던 무리와도 멀어지게 되었다. 서서히 옆으로 달려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코스 뒤쪽으로 갈수록 오르막과 내리막이 더 자주 나오면서 나의 체력은 더 빨리 고갈되고 있었다. 30km가 넘어서자 이제는 급수터에서 급수를 하더라도 목이 너무 말랐다. 더위와 체력고갈에 탈수를 더하니 달리는 속도가 급격히 늦추어졌다. 35km 구간은 약한 오르막이었는데 그 끝에 급수터가 있었다. 급수터에 도착하니 계속 뛸 수 없을 거 같다는 생각에 뛰는 것을 멈췄다. 숨을 몰아쉬며 물을 마시며 다시 추스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었다. 7km만 더 달리면 되는데 이제껏 달린 거리만 본다면 별거 아닌 거리지만 나의 마음에서는 더 먼 거리처럼 느껴졌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12시가 넘어가니 한 여름의 더위가 찾아왔다. 체감온도는 30도를 넘기니 달리는 나에게는 더 큰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다시 2km 정도를 달리다 보니 다리가 내 마음과 같지 않게 달리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걸으니 주변에 같이 달리는 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 같이 힘들어하는 표정이었지만 얼굴에는 완주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모두에게 엿보였다. 그 주로 에 있는 사람 중에 내가 가장 젊어 보였다. 나이가 꽤 많아 보이는 어르신이 이를 꽉 다물고 내 옆을 뛰어지나 가시는 모습을 보니 서서 걷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마음을 다 잡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제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은 전력질주를 하고 싶어 했으나 내 다리는 불가능하다며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느려진 속도지만 내디뎠다. 이 길이 끝나기나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거리는 줄어들고 있었다. 서서히 도착지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드라마 혹은 만화에서 보면 주인공이 마지막 목적지가 보이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장면을 흔히 본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잔인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보고자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속도는 더 나지는 않고 얼굴의 주름만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정말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최선을 다해 마지막까지 달렸다. 드디어 여러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아 완주했다. 진짜 힘드네.'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발은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웠다. 도로가에 아무 곳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거친 숨소리와 땀이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도착하면서 받은 생수병은 메마른 땅에 물을 뿌리듯 금세 내 몸속으로 사라졌다. 목마름과 힘듦이 조금 잦아들고 나니 완주했다는 게 실감이 들었다. 주변 여기저기서 완주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곧 결승선으로 들어올 아내를 맞기 위해 일어섰다. 주변은 완주 후의 기쁨과 환희의 열기가 가득했다. 조금 기다리니 멀리서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도 무사히 완주를 했다. 둘의 얼굴은 힘듦에 폭삭 늙어버린 듯했지만 완주했다는 뿌듯함이 넘쳤고 마치 무용담 털어놓듯 서로 어떠했는지 이야기하기 바빴다. 기념 메달도 받고 사진도 찍고 첫 마라톤을 기념하기 위해 추억을 남겨놓기 바빴다. 그 뜨거웠던 늦여름의 열기가 식어갈 때쯤 우리도 대회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진짜 42.195km를 뛰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거구나. 42.195km라는 거리가 주는 무게감과 두려움이 우리를 망설이게 했는데 우리가 노력하면 되는 거구나. 그리고 나보다 더 열심히 준비하시고 달리시는 분들이 많구나.'

완주하고 나서 아내와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마라톤은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한다는 것이 주는 설렘과 그 도전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알게 해 주었다. 도전하고 성공한 후에 찾아오는 만족과 뿌듯함 그리고 자랑스러움은 또다시 사람을 도전하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마라톤을 안 하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나도 한번 더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첫 마라톤 도전을 마무리 지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마라톤은 그냥 운동이 아니라 명상이자 자아 성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운동이라고 말하기엔 복잡 미묘한 면이 있다. 뛰면서 내가 몰랐던 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온전히 나의 것이라 믿었던 내 몸과도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 내 몸을 어르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면서 달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마라톤을 하면서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시간이 되는대로 달리기를 하고 있다. 잘 달리지는 못하지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며 하루하루 발바닥 마일리지를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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