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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Feb 20. 2023

발걸음 맞춰 함께 뛰기

  오늘도 뛰지 말아야 할 백가지 이유를 접어두고 퇴근 후 약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내와 함께 뛰기 위해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 이제 봄이 온다고는 하나 아직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날이었다. '역시 집에 있어야 했나?'라는 생각을 하는 중에 옆에 있는 아내의 표정을 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표정과 분위기였다. '그래도 어렵게 이왕 나왔으니 뛰고 들어가야지' 하고 마음을 다 잡고 가볍지 않은 발걸음을 이끌었다. 둘이 함께 걸어가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금방 뛰어야 하는 출발선에 다다른다. 오늘은 숨이 차도록 뛰고 싶지 않았다. 보통은 내가 조금 더 빨리 뛰어 아내보다는 앞서 뛰게 되는데 오늘은 발맞춰 뛰기로 마음먹었다. 뛰기 시작하니 차가운 공기에 가려져 있던 차가운 바람이 나의 얼굴을 때리며 지나간다. 천천히 팔을 앞뒤로 흔들고 다리는 나의 몸을 앞으로 인도하고 있다. 흔드는 팔과 뛰어가는 다리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통증 없이 더 멀리 뛸 수 있다. 조금이라도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균형이 무너진 곳에 어김없이 통증이 생긴다. 하루는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또 하루는 무릎이 아프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발목이 아프기도 다른 때는 발가락이 아프기도 하다. 그런 통증을 겪고 나면 나의 달리기는 조금 더 나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역시 저절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아내와 익숙한 공원 길을 달린다. 천천히 숨이 가빠오고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이때부터는 리듬이다. 누군가는 리듬을 위해 '습습 후 후', '스읍 후우' 또는 '습후습후'와 같은 숨소리로 조절해야 한다지만 사실 뛰어보면 본인에게 맞는 숨소리와 발검음의 박자가 생긴다. 항상 같은 박자로 달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조금 여유로운 숨소리와 발걸음의 박자로 어떤 때는 매우 몰아치는 숨소리와 발걸음의 박자로 맞춰야 한다. 오늘은 아내와 박자를 맞추기로 했으니 처음부터 발걸음을 맞추려 애쓴다. 지면과 우리의 발바닥이 닿는 소리를 듣는다. '착''착''착''착' 둘이 같이 뛰는 길이지만 박자가 맞는 소리에 쾌감이 있다. 아내는 내가 자기에게 박자를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만의 박자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둘 다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했는지 평상시보다 조금은 천천히 달리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좀 뛰니까 그렇게 추운지 모르겠네. 그지?"

"그러게"


1km를 달리고 2km를 달리고 공원에 있는 오르막을 올라간다. 오르막을 오를 때면 온몸이 긴장한다. 숨도 차오르고 근육도 더 많은 힘을 줘야 하고 팔도 더 많이 흔들어야 한다. 그래서 몸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저기 저 꼭대기에만 닿으면 쉴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발짝 한 발짝 집중해서 내딛는다. 그 한걸음 한걸음이 더해져 저 오르막 끝까지 나를 이끌어줄 테니 허투루 한걸음을 내딛을 수 없다. 오르막을 다 오르고 나면 내 다리를 옥죄고 있는 어떤 것이 풀리는 자유를 얻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내리막에 들어선 나의 다리는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힘들었던 숨을 고르며 중력에 발을 맡긴 채 흘러간다. 그렇게 내리막 동안 내 다리의 피로를 빨리 풀어줘야 한다. 곧 내리막이 끝나고 평지에 다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고 5km를 넘겼다. 이제는 힘든 오르막은 없지만 약간은 지루한 평지 달리기다. 역시 아내와 발걸음을 맞춘다.


'착''착''착''착'

마라톤 대회 경험이 많지 않지만 대회를 나갔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발소리가 맞춰지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발걸음의 리듬에 맞추어 달리다 보면 내가 가진 능력 이상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박자가 맞는 순간에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는다.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는 방향성이 그 발걸음의 소리로 표현되는 듯하다. 오늘 나는 아내와 같이 달리기로 마음먹었고 아내의 발걸음의 박자에 맞춰서 나아갔다. 같이 달린다는 것은 같은 방향을 보고 달린다는 것 그리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린다는 것이다. 둘이 나란히 달리고 있는 이 순간이 참으로 좋다.


 오늘 아내와 달리기로 한 거리는 10km이다. 아주 짧은 거리도 아니고 아주 긴 거리도 아니지만 10이라는 숫자가 주는 만족감이 있는 거리이다. 7km가 넘어가고 8km를 넘기면 마의 9km 구간이 있다. 10km를 두고 내 있는 힘껏 달릴 때는 9km를 넘기고 남은 1km가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은 여유롭게 달리기로 했으니 그런 일은 없다. 끝까지 발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착''착''착''착' 우리가 달리기 시작한 공원의 입구가 저 멀리 보인다. 이제 거의 끝나감을 느낀다. 그때쯤 되면 난 속으로 생각한다. '그래 달리기 잘했네. 달리고 나니 상쾌하네'

다 달리고 나서 내뱉는 큰 한숨은 언제나 시원하다.


"하아~하아~~ 아~ 다 달렸다. 달리러 나오기 잘했다. 그지?"

"하아~하아~~ 그러게 둘이 달리니까. 또 달려지네. 고마워~ 같이 달려줘서."


 그렇게 숨을 고르고 웃으며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찌 보면 조금은 유치하지만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뿌듯함으로 의기양양해진다.  


"근데 오늘 내가 당신 발걸음에 맞춰서 뛴 건 알아? 박자 맞춰서 '착''착''착''착' 뛰었는데?"

"그래? 난 전혀 몰랐는데..."


 아내는 내가 발맞추어 뛰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하니 왜인지 약간은 서운했다. 그래도 난 열심히 아내와 발맞추어 뛰었으니까 만족한다. 뛰고 싶지 않은 수만 가지 이유를 이겨내고 오늘도 달린 나 자신을 칭찬하며 오늘의 달리기를 마무리했다. 내일도 뛰기 싫은 이유가 하나 생겼다. 내일은 어제 달렸으니까 하루 쉴까?라는 마음이 들겠지? 그래 매일 뛸 필요는 없으니까라는 생각도 들것이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없음이다. 누군가와 발을 맞추어 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재미있다. 그것이 달리기가 주는 매력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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