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의 시작은 해부학과 함께한다. 첫 시작은 골학이라고 하는 뼈를 외우는 과목이다. 몸의 안쪽에서부터 바깥쪽으로 살을 붙여 나간다. 뼈를 외우고 뼈에 붙어 있는 근육을 외우고 그 사이로 지나는 혈관과 신경을 외운다. 그러고 나서 그 안쪽에 있는 장기들과 신체 기관을 외운다. 그렇게 우리 몸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각 근육과 장기들의 기능을 배운다. 골학을 배우고 근육을 외우기 시작할 때는 그 근육의 인대가 뼈의 양쪽에 어떻게 붙어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배운다. Pectralis major, pectoralis minor, biceps, triceps, quadriceps femoris... 대략 이런 근육들의 이름을 수없이 외웠다. 그때는 앞뒤 가리지 않고 외우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이후에 의사가 되고 전공을 외과로 정한 이후로는 근육이라고는 복근을 이루고 있는 복부 근육 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나머지 근육들은 기억의 저편 너머 닿지 않는 곳에 고이 넣어두었다. 외과의사끼리 대화를 해도 별로 사용하지 않는 이름들이라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반대로 몸의 뼈와 근육을 다루는 정형외과에서도 복부 근육에는 크게 관심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것들이 다시 나의 관심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바로 근육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근육 운동을 하면 대략 크게 가슴, 등, 다리 운동으로 나눌 수 있다. 몸의 큰 근육들이 붙어 있는 위치에 따라서 나누고 운동을 한다. 근육을 이용하여 운동을 하면 그 근육을 수축과 이완을 시키고 거기에 무게를 얹어서 부하를 주면 점점 근육의 힘이 강화가 된다. 운동하지 않았을 때 근육이 성글었던 것이 운동을 진행하면서 점점 더 촘촘해지고 단단해진다. 그러면서 체중 조절을 하여 피하지방을 줄이면 숨어있던 근육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번도 존재감이 없었던 조그마한 근육들이 보이고 그 근육을 단련시키려고 운동을 한다. '내 몸에 이런 근육이 붙어 있었나? 그동안 넌 무슨 역할을 했었니? 너는 어디에 쓰는 근육 이뇨?' 항상 해부학 그림책에서나 보던 근육의 실체를 처음 내 몸을 통해 볼 수 있어 너무도 신기했다. 수몰되어 있던 강 속의 파묻혔던 많은 물건들이 가뭄에 물이 말라가면 드러나듯이 천천히 천천히 한 뭉치로 보였던 근육들이 구분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심스레 드러난 근육을 운동시키려면 그 근육이 붙어 있는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가동 범위가 나오고 효율적인 운동이 된다. 너무 깊이 묻어놓았던 것들이라 이름을 꺼내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그 근육들이 붙어 있는 부분과 운동 방향을 생각하기엔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그마한 근육들은 보통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게 사용하고 있는데 거기에 붙어 있다고 하니 잘 모르겠고 그래서인지 이완과 수축을 하는 움직임이 대단히 어색했다. 그래도 트레이너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라 이렇게도 움직이고 저렇게도 움직이고 무게를 점점 늘렸다가 다시 줄여가면서 들다가 보니 그래도 시나브로 더 두드러지는 근육들을 볼 수 있었다. 지난 기억을 꺼내보고자 해부학 책을 펼쳐보았다. 치열하게 외웠던 기억이 빠른 시간 안에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주입식 교육이 나쁘기만 한 게 아닌가?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때는 무작정 외우던 것이 필요에 의해서 보다 보니 더 쉽게 이해가 되었다.
'근육 운동'을 속된 말로 '쇠질'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근육 운동은 하기 전에 참으로 지루하고 고통스럽고 별 의미 없는 운동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역시나 처음 제대로 시작했을 때는 재미도 없고 흥미도 안 생기고 지루했다. 운동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는 왜 이 무거운걸 들고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았다. 지루하고 재미가 없으니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주 조금씩 변화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깨 운동과 가슴 운동을 하니 둥글게 굽어져 있던 어깨가 펴지고 어깨가 펴지니 옷을 입어도 모양이 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나의 하체는 학생 때부터 두껍기로 유명했다. 다리가 굵어 허리가 맞는 바지를 찾는 게 아니라 다리에 허리를 맞춰야 해서 바지를 살 때마다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하체 운동을 하면서 체중을 조금씩 줄여나가니 다리의 두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의 팔 근육은 두꺼운 하체에 비해 얇아 보여 상하체 비율이 비대칭처럼 보였다. 그런데 팔 근육 운동을 하니 조금 두꺼워지며 비율이 맞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어난 체중 탓도 있지만 수술장에서 오래 서 있으면 허리가 많이 아팠다. 그런데 근육 운동 후에 통증이 상당 부분은 줄어들었다. 이런 변화를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나의 반쪽 아내다. "음~ 그게 다 살이었다는 말이지. 근육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로군. 흥미로운데... 당신 다리가 이렇게 정상적으로 보일 줄이야." 몸의 변화가 신기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내 몸은 근육 운동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변하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 몸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는 거구나.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고 감춰진 것들이 있을 수도 있는 거구나. 근육 운동이 효과가 있구나' 변화가 보이니 열의가 생기고 좀 더 좋아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니 자연스레 동기부여가 되고 근육 운동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다. 완전히 친해졌다고 하기에는 먼 당신이지만 조금은 친숙해졌다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이 근육 운동을 하는 목적이 있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몸을 더 멋있게 가꾸기 위해서, 체중 조절을 위해서, 체력을 위해서... 바디 프로필 사진을 위해서 한 운동은 몸을 더 멋있게 보이기 위해서 한 근력 운동이었다고 하면 지금은 다른 운동의 기본이 되는 근육을 유지, 보수한다는 생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바디 프로필 사진 촬영 후에 좋아진 몸을 보며 이것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보니 일상이 있는 나에게 그런 몸을 유지하는 것이 욕심이자 집착으로 보였다. 사실 욕심이 나지 않은 것은 아니나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러 일정 부분은 놓아주기로 했다. 체중을 조금 불리고 대신 근육은 대체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지금도 꾸준히 한주에 두 번 이상은 근육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을 하면서 체중을 조금 늘리니 이전처럼 배가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몸의 지방 분포가 확실히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근육이 유지가 되니 다른 운동을 하는 것도 조금은 수월해졌다. 근육을 사용하지 않는 운동은 없으니까 말이다. 달리기, 등산, 자전거와 같이 하체를 많이 사용하는 경우에도 쉽게 다리가 뭉치거나 하지 않았다. 수영을 해도 상체에 크게 부담이 가지 않았다. 그러니 선순환이 되기 시작했다. 운동하는 것이 수월해지니 재미있어지고 다른 것도 더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근육이 탄탄해지니 부상 위험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근육은 뼈와 함께 우리 몸을 이루는 기본이다. 다부지고 우락부락한 근육도 멋지지만 내 몸을 지탱해 주고 유지해 주는 근육도 멋지고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근육을 그냥 내버려 두기보단 원래 가질 수 있는 기능을 활용하여 효율적으로 사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근육 운동을 통해서 배운 건 무엇을 하건 기본을 이루는 것을 먼저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일정 부분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근육운동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마치 금속의 담금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금속은 담금질을 통해 단단해지듯 근육운동을 통해 근육은 더 단단해지고 우리의 몸을 더 잘 유지해 줄 것이다. 근육 운동은 그저 멋있고 예뻐 보이기 위해서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 나의 기본이 되는 근육을 단련시켜 나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운동이다. 근육운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다듬고 담금질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