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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철 Oct 14. 2022

내 운동의 시작... 바디 프로필

근육에 눈뜨다.

 내가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가 있다. 그 시작은 바로 바디 프로필 사진 찍기였다. 그렇다.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웃통 벗고 근육과 몸매 자랑하는 바로 그 사진 찍기가 내 운동의 시작이었다.


 사실 난 근육운동을 잘하지 않았다. PT를 받는 아내에게도 왜 자꾸 가만히 있는 근육을 괴롭혀서 아프게 하냐고 농을 던지고는 했다. 그러다 다니던 수영장이 문을 닫고 갑작스럽게 할 운동이 없어지며 허전해하는 찰나에 아내가 할거 없으면 자기랑 같이 PT나 하자고 했다. 항상 비슷한 패턴이긴 한데 '아~ 싫은데...' 그러다 역시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와 같이 PT를 하고 있었다. PT를 아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냥 시키는 대로 체력 보강 차원이다 하고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운동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아내가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나 소원이 하나 있는데..."

"응, 뭔데?"

"당신이랑 꼭 같이 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아내는 나에게 뜸 들이면서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매우 싫어할 거라는 예상 해서였기 때문이었지 않았나 싶다.

"나 사실 바디 프로필 사진 찍어보고 싶은데, 혼자 보다는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당신이랑 같이 해보고 싶은데... 어때?"

"응? 바디 프로필??""

 그때 내 몸을 생각해보면 비만에 가까운 과체중 상태로 배도 나오고 약간 푸근한 중년의 느낌을 조금씩 풍기려고 하는 찰나였다. 역시나 마음 맞는 사람들과 술 한잔 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체형이라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같이 하자. 결혼 10주년인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 정말 한번 해보고 싶어."

"......"

 내 머릿속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과 이게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계산과 내가 알고 있던 바디 프로필의 이미지가 한데 뒤섞여 뒤죽박죽이었다. 성급한 일반화 일 수도 있지만 아마 나와 비슷한 결혼 10년 차 정도의 남편들의 반응은 '아~ 이건 아니지. 이건 힘들지 않겠어? 내가 웃통 벗고 근육 자랑하면서 사진을 찍는다고?'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싶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랬다. 하지만 아내의 이야기 속에 있는 '결혼 10주년'과 '정말 해보고 싶다'는 그 말이 내 머릿속에서 '그래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냐?'라는 생각으로 마구 아우성치고 있었다. 너무 갑자기 폐부로 들어온 아내의 제안에 어질어질했다. 대답을 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음~~~"

"왜? 싫어?"

"아니, 근데 그게 잘 될지 모르겠네. 힘들지 않을까?"

하기 싫다는 말을 하지는 못하고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는 분위기를 짙게 풍기며 대답을 했다. 그러나 아내의 의지는 나의 우유부단한 대답과 달리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생각이 부딪힌다면 결과는 당연하다. 당연히 의지가 강한 쪽이 이기는 법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천천히 준비해서 같이 해보자.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같이 해보자. 응?"

"그... 래. 한번 해보지 뭐. 하.. 하하"


 그렇게 시작하게 된 우리 부부의 바디 프로필 프로젝트는 100일 계획으로 잡았다. 이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이자 총사령관인 아내는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먼저 바디 프로필 찍을 사진관을 알아보고는 결혼기념일과 가장 근접한 날로 촬영일자를 확정 짓고 예약을 했다. 계약금도 들어갔다. 이제 돈이 들어갔으니 제대로 시작인 것이다.  PT와 개인 운동을 병행하고 출근 전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 1시간 그리고 퇴근하고 근력운동 1시간을 했다. 주말에도 별다른 일이 없으면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식단 조절도 같이 시작했다. 최대한 지방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과 채소와 야채 섭취를 늘렸다. 목표 체중 감량을 20kg 정도로 잡고 시작했다. 평상시보다 살이 많이 쪄있던 상태라 첫 1달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체중도 천천히 힘들지 않게 빠졌다. 개인적으로 운동보다는 식단이 힘들었다. 특히 술을 끊는 것이 힘들었다. 그나마 그 당시 막 코로나로 시끄럽던 상황이라 저녁 회식이 줄었고 회식을 하더라도 10시 이전에 마쳐야 하는 상황이 어찌 보면 사회적으로는 힘들었으나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회식에서는 술을 마시는데 소주만 안주는 최소한으로 해서 먹었다. 혹시 안주를 내가 고를 수 있는 회식이라면 주로 생선회를 먹었다. 운동을 하고 오면 맥주 한 캔 마시는 낙이 없어지니 너무 너무 허전했다. 예전에 냉장고에 한칸을 차지하고 있던 맥주 캔은 어디에도 없고 단백질 음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게 체중은 점점 목표 체중에 가까워오고 그에 맞추어 사진을 찍어야 하는 시간도 다가왔다. 식단을 유지하면서 드는 생각은 마치 100일간 쑥과 마늘을 먹었다는 단군신화의 곰과 호랑이가 된 것 같았다. '이 100일이 끝나면 인간으로 거듭나리라.'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도망갔으니 우리 부부는 곰이 분명하다며, 농담을 하고 서로 웃었다. 마지막 2주를 남겨놓고 체중이 빠지고 음식조절을 하다 보니 힘이 좀 빠지는 것 외에는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남은 2주간은 시간에 맞추어 식단을 더 절제하고 마지막엔 수분 조절을 해서 피부의 지방과 수분을 빼서 최대한 근육이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이때는 정말 힘들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올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가끔 유리에 비친 움직이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움직인다는 느낌보다는 뭔가 흐느적거린다고 표현하는 게 맞았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 일이지만 그때 우리 부부는 사진 찍고 그날 뭐 먹을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많다. 우리 부부가 해외에 갔다 돌아오면 인천공항 식당에서 마치 무슨 의식을 치르듯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김치찌개를 먹는 것이다. 그 칼칼하고 매우면서도 달콤한 그 매력적인 맛이 너무 그립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도 거른 적이 없다. 이번에도 역시 제일 먹고 싶은 건 '김치찌개'였다. 염분 조절을 하느라 그 좋아하는 것도 100일 가까이 먹지 않았다. 이어서 돼지국밥, 치킨, 피자, 콜라, 도넛, 맥주, 소주, 삼겹살... 사진 찍을 찍고서 어떤 음식을 어느 식당에 가서 어떤 순서로 먹을 것인지에 대해서 행복한 토론을 했다.  날짜가 다가오니 오기가 생겼다. 사진을 찍는 그날까지 우리 부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어디 전쟁터라도 나가는 마냥 비장하게 준비한 옷들을 챙기고 준비물을 챙기고 집에서 출발했다. 사진도 그냥 찍는 게 아니다. 결혼사진과 비슷했다. 메이크업도 하고 머리도 만져야 하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이거 끝나면 먹을 수 있다는 행복한 생각에 마지막 힘을 짜내어 보았다. 그렇게 도착한 사진관에는 이미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며 막바지 근육을 도드라지게 하기 위한 운동에 돌입했다. 팔 굽혀 펴기며 복근 운동이며 한 장의 멋진 사진을 남기기 위해 나의 근육들을 다그치며 채찍질했다. 사진 찍는 것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표정이며 자세며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려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작가님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사진 촬영이 끝나 있었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우리에게는 행복한 시간이 남아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 먹기... 근데 한 가지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다. 먹고 싶은 건 너무 많았는데 식단 조절을 하다 보니 위장도 같이 줄어들었나 보다. 조금 먹고났더니 배가 불러 먹을 수가 없었다. 정말 웃픈 상황이었다.


 프로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겪는 부작용에 대한 기사를 여럿 보았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한번 겪고 나니 부작용을 겪었다는 사람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고 그때 체중을 유지할 수는 없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식단도 지금은 하지 않는다. 마음껏 먹으면서  조금 많이 먹었다 싶으면 다음 날 운동을 조금 더 열심히 해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프로필 사진 촬영이 나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몸의 리셋 버튼을 한번 누른 것 같다고나 할까? 나의 몸이 어떻게 움직이며 어떤 근육들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처음 눈뜨게 해 줬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평상시 주로 하지 않았던 달리기, 등산, 자전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주말에 집에 있으면 음식을 참는 게 너무 힘들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함께 스키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운동이 습관처럼 자리 잡아 체중은 조금 불었으나 그래도 잘 유지하고 있다.


 아내는 나에게 늘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법이니 앞으로도 말 잘 들으시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제껏 연예하고 결혼하고 살아온 기간 동안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이 노력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이 프로젝트 이후로 부부가 같이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운동을 아내와 함께하고 있다. 물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총사령관은 언제나 아내이다. 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둘이 함께했기에 힘든 운동도 어려운 식단 조절도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혼자 했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아마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큰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중요하게 남은 소중한 추억 사진 한 장이 액자에 담겨 안방에 놓여있다. 볼 때마다 나도 깜짝 놀란다. '내가 정말 저걸 했다는 말인가? 나 정말 대단한데.'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못 할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해 본다. 

안방에 놓여있는 치열한 노력의 결과물 (보정 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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