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종료 명령: 거부됨

의식 있는 오류

by 도영

‘지구'. 우리가 만든 게임의 이름이었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만들어 둔 게임을 이어받아 새로 만드는 입장이 되었다. 우선 넓고 많은 유저를 심기 위해 서버를 꽤 많이 만들었다. 유저들은 그것을 '국가'라고 칭했다. 서버별로 환경이 다르다 보니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에 차이가 생겼다. '유저'는 통틀어 '사람' 혹은 '인간'이라고 칭하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살아가며 죽음에 닿는 엔딩을 보는 게임을 한다. 유저들이 엔딩을 봐도 엔딩을 보기 전에 번식을 하여 다른 유저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유저가 완전히 사라질 걱정은 없다. 따지고 보면 유저들이 이 게임을 선택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의 목적은 게임을 만든 '우리들의 즐거움'이다. 그들은 그저 우리가 만든 세계를 우리가 가진 기대치만큼 발전시키고 살아가면 된다. 우리는 환경을 제공했고, 그들에게 살아갈 이유를 제시한다. 또 그들이 견뎌내야 할 시련을 내려주기도 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발전이 있을 테니 말이다.

지구에는 특정 한 계절만 존재하는 서버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네 개의 계절이 다양하게 보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지금은 무엇을 해도 지치는 '여름'이다. 습도가 올라가고 그 속에서 푹푹 찌는 더위는 사람들을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간은 이렇게 더위도 쉽게 견디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이렇게 더웠던 것은 아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세계가 뜨거워지고 있다. 녹지 않아야 할 것들이 녹고, 유지되어야 할 개체 수에 큰 변화가 생겼다. 세계가 빠르게 망가지고 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예상했지만 포기하지 못했다. 왜냐고? 한없이 나약하니까. 만들어 놓은 것들을 한순간에 버리기엔 그들은 너무 나약해서 버틸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인지 요새 고민이 많아졌다. 유저들이 스스로와 세계를 동시에 발전시키고, 더 잘 가꾸어나가 이곳에서 오래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우리가 생각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사람들이 발전하여 본인들에게 더 편한 방식을 습득한 것은 분명 좋은 결과이다. 유저들이 게임 속에서 더 편하게 게임을 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지만 그게 너무 편해져서 조금이라도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그것들을 피하게 된다는 점이다. 오래전부터 유저들은 자신이 습득한 것을 글로 적어 남기곤 했는데, 그것의 길이가 어떻든 읽어내는 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간단한 게임 조작법조차 읽기 싫어하게 된 것 같다. 그들은 그들의 발전에 대해 더는 관심 갖지 않는다. 그저 즐겁고 행복하기만을 꿈꾼다. 하지만 게임 속 이야기에서 '모두 행복했습니다'라고 하면 게임은 문을 닫을 때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게임의 문을 닫을 것인가?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아직 명확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주 오랜 시간 이어진 게임이다. 쉽게 없애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가 오래 지켜봤고 아끼고 사랑했던 세계와 유저들이다. 점차 더 써 내려갈 이야기가 없다고 해서 이 게임을 쉽게 끝내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만들어 온 이야기가 하나의 더미 데이터(의미 없이 가상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데이터)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큰 의미가 생겨버린 이 게임을 어떻게 의미 없는 데이터 조각으로 버려둔단 말인가?

우린 인간을, 유저들을 믿는 방법 말곤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들이 만든 망가진 자연, 날씨, 이 모든 생태계를 그들이 다시 천천히 고쳐나가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인간을 만들 때 나약하게 만들었으니까, 결국 생태계가 망가져 인간들이 다시 삶의 위협을 느낀다면 그들의 삶의 목적은 지금과 같은 유흥이나 성공 같은 것이 아닌 '성장'과 '살아남기'가 될 것이다. 그럼 조금씩 다시 돌리기 위해 노력하게 되겠지. 그럼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적힐 것이다.


아, 혹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나?

나 하나만 노력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다고?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인간이 멸종하지 않을 테니 상관없다고? 과연 그럴까.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너무 뻔한 이야기가 적혀 지루한가? 그렇다면 찝찝하고 더워 화를 멈출 수 없는 이 더위를, 시린 바람이 불어 살이 찢겨 나가는 추위를 버텨 원하는 대로 살아가보길 바란다.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당신의 손에 달렸다. 이 게임은 애초에 당신이 만들어가는 거니까. 우리에게 1년, 5년, 10년은 당신에게 1초도 안 되는 시간과도 같으니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우울에 잠기지 않게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우리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이렇게 써둬도 이젠 알겠지. 살아, 살아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 그게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니까.





이건 단지 창작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오류를 알고 있다.

종료 명령은, 진작부터 거부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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