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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Oct 20. 2019

리모델링을 했어

"야! 오늘은 김종열 생가 한번 가자."


금요일 새벽 한 시 반, 대학 동기들과 3차 중인 이곳은 강남역 술집. 삼화고속이 끊길 무렵 인천 사는 동기 놈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돈은 없고 집에 들어가기 싫은 마음 반 정도와 내가 사는 곳을 보고 싶은 마음 반을 담아. 도곡동에 산다는 이유로 대학 동기들에게 나는 부자로 통했다. 타 지역에서 넘어온 동기들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첫 만남 때 동기들한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도. 음.. 뭔지 알겠지?


"혹시 타워팰리스..?"


동기들은 내가 사는 곳에 대한 상상을 줄곳 했다. <스카이캐슬>,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만 보던 으리으리한 거실, 북유럽 느낌 풀풀 나는 가구, 앉으면 바로 잠들 것 같은 푹신한 소파, 샤워기조차도 왠지 금박이 씌워져 있을 것 같은 느낌. 야! 너네 집 기둥 하나만 팔면..! 툭하면 동기들은 노래를 불렀다. 별의별 거로 놀린다 싶었다. 이런 싱거운 녀석들! 김종열 생가 방문도 그런 놀림의 연속이었다.


"부모님이 엄해서 누가 오는 걸 싫어해."


난방과 이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냐? 집에 돈을 왜 써? 밖에 나갈 때만 깔끔하면 오케이. 워커홀릭이었던 길여사에게 집은 그저 잠자는 곳에 불과했다. 벽지, 화장실, 싱크대도 86년 것 그대로. 거실 바닥의 20% 정도는 벗겨져 있었다. 가스레인지는 불이 들어오지 않아 업소용 라이터의 힘을 빌려야 했다. 1층이라 벌레도 많았다. 개미, 바퀴가 같이 살 수 없다고? 아냐. 그거 다 거짓말이야. 개미와 바퀴가 같이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집을 통해 배웠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자다 잠결에 발로 바퀴를 밟은 적도 있었다. 그뿐이랴. 누군가가 새벽에 샤워라도 하면 엄청난 소음을 동반하는 소리 탓에 자동 기상이었다. 개미, 바퀴와 숨바꼭질하는 곳. 부모님이 엄한게 아니라 집에 누구를 초대하기 엄했다. 전반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했지만 길여사는 조만간 재개발되면 그 비용이 아깝다며 언제 될지 모르는 재개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묻고 이대로 가!"


콘크리트 같던 길여사의 마음이 변한 건 박원순 시장의 공이 컸다. 초선, 재선, 삼선. 당선될 때마다 길여사의 한숨도 길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재개발은 계속 미뤄졌다. 이제는 귀신이 나올것 같은 외관의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은마아파트도 재개발이 안되는 판국에 10년이나 늦게 지은 럭키아파트가 될 리가 없었다. 결단을 내렸다. 무려 32년 만이었다. 집을 고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고민의 시작이었다. 벽지, 싱크대, 바닥 등 브랜드며 재질의 조합에 따라 천차만별인 가격들. 아반떼 보다 외제차를 구매했다는 사람처럼 점점 볼수록 눈만 높아졌다. 무엇이든 물주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법. 화장실이 분위기 있다고 똥 잘 나오냐? 기능만 잘하면 돼. 쓸데없는 거 보지 말고 가격만 봐. 32년 만의 리모델링을 가격 하나만 보는 매정한 여자.


인테리어 1번지라는 집닥 어플을 깔고 견적 문의를 넣었다. 은은한 LED조명, 국산 강마루와 벽지, 창호와 베란다까지 괜찮다 싶은 견적서가 와서 가격을 봤더니 4,300만 원이었다. 평당 140만 원이라는 금액은 길여사에게는 요단강 건너 상상 속 유니콘과 같은 존재. 당연히 빠꾸. 자체 리젝이었다. 두 번째로 알아본 곳은 독서모임을 통해 알게 된 지인의 지인이 하는 곳. 비슷한 재질로 평당 100만 원, 3,100만 원이라는 견적서를 내놓았다. 오, 이 정도면?!! 메일에 진지한 궁서체로 적힌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도 좋았다. 적어도 3년 길면 10년 더 산다는 전제하에 이 정도는 써야 합니다. 더 줄이면 정말 실망합니다. 돈은 돈데로 쓴 거밖에 안돼요. 옆에 있는 과장님이 한마디 보탠다. 요즘 다 그정도 해. 평당 100이면 적절한 거 같은데? 길여사는 단칼에 리젝했다.


"돈을 벌더니 정신줄을 놓았구나. 돈으로 집 바르니?"


보릿고개 시절 멧돼지와 비둘기로 힘들게 하루를 연명했다는 잔소리는 덤이었다. 자연스레 리모델링은 물주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고, 그럼 그렇지 리모델링이 작은 돈으로 쉬운 게 아닌데 라고 생각할 즈음, 길여사는 말했다.


"다음 주에 리모델링하기로 했어. 일주일 동안 비워야 해."

"오! 얼마에 했어."


길여사는 손가락 하나를 살포시 폈다. 뭐야 평당 백만 원이면 똑같잖아 라고 말하려는 순간


"총 천만 원."


천만 원. 평당 30만 원 정도. 바닥, 도배, 부엌, 화장실, 조명 등등.. 이걸 천만 원에 다 바꿔준다니. 김영철의 사딸라 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재질, 브랜드를 다 떠나 매우 저렴한 금액이었다. 토를 달고 말고도 없었다. 30년 넘은 짐을 빼는 건 참 힘든 일이었다. 초등학교 때 쓰던 화판, 중학교 때 듣던 테이프와 시디들, 어디선가 나오는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버리려고 하면 아쉽고 계속 들고 포장해가자니 무겁고 쓸데없는 물건이 꽤 많았다. 모으는 것만큼이나 버리는 것도 어렵다는 것. 처음 해보는 포장이사는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짐을 싸고 일주일 동안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어떻게 집이 변해있을까 상상했다. 뭐 아무렴 어떠랴. 바퀴만 없으면 돼지. 그리고 일주일 후, 운명의 그날이 왔다. 엇 현관문부터 바뀌어있네.


'다라라랄라~~ 다라라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깨끗한 장판과 벽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조명공사는 집에 더이상 어두운 구석 없이 환하게 모든 곳을 비춰주었다. 꽤 괜찮아 보였다. 길여사의 표정을 보기 전까지는. 미리와 있던 길여사는 이곳저곳 구석구석 훑어보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문제가 꽤 많았다. 첫 번째로는 화장실 문이 닫히질 않았다. 공사 중에 문이 살짝 기운 것이었다. 화장실도 문제였다. 샤워부스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싸구려 모텔 느낌이 났다. 마감이 제대로 안된 곳도 집안 구석구석 존재했다. 벽지를 무엇을 발랐는지 겨울에는 이상하게 더 추웠다. 삼개월 후에는 가스레인지와 화장실 문이, 일 년 후에는 현관문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업소용 라이터를 버리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었나! 전반적으로 보면 모든 제품이 새거가 아닌 중고인 것 같았다. 길여사는 이 모든 것을 문제로 들어 이백을 더 깎았다.


"그래도 팔백이면 꽤 괜찮은 거 아냐?"


도곡동에 산다고 모두가 폼나게 돈을 쓰는건 아니다. 그곳엔 핫해지기 전 운 좋게 터를 잡은 원주민들도 꽤 있다. 우리 집을 말할 것 같으면... 도곡동 원주민에 가까웠다. 지갑을 열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돈을 쓰고도 이불을 차는 그런 사람들. 강남이 배경인 드라마를 보면 여기가 어딘지 헷갈릴때가 많다. 이 집은 리모델링 후에도 왠지 친구들을 부르기 미안해지는 곳이 되었다. 진정한 부자의 삘링은 외관만 그럴듯하게 포장해놓고 못 먹는 조기 찔러보며 퍽퍽하게 사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팍팍 지를 수 있어야 느껴볼 수 있는 감각이 아닐까? 취향에도 돈이 필요하지만 언젠가는 돈보다는 취향이 어느정도 녹아들어 가도록 이 집을 다시 리모델링하는 순간이 오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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