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같은 반에 참 예쁘다고 생각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내 뒷번호였고, 시험을 볼 때면 내 뒤에 앉았다.
나는 늘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건 성적 때문도, 성실함 때문도 아니었다.
내 번호가 앞이었고, 그래서 앞자리에 앉았을 뿐이다.
시험을 볼 때 선생님이 시험지를 나눠주면 나는 습관처럼 뒤를 돌아 종이를 넘기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그 아이의 책상이 유난히 멀리 있었다.
쭉, 한참 뒤로 밀려난 느낌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괜히 속상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 나를 밀어낸 것도 아니었는데 혼자 앞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억이 오래 지나 다시 떠올랐다. 며칠 전, 문득 생각나며 또 속상해졌다.
왜 지금에서야 이 장면이 다시 마음에 걸렸을까?
아이들을 키우며 알게 된다.
가정 안에서도 나는 여전히 앞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잘해서도 아니고, 더 나서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는 먼저 움직여야 했고,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하루는 늘 급하다.
울기 전에 움직이고, 문제가 생기기 전에 준비하고, 집 안의 흐름이 무너지지 않게 혼자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남편이 곁에 있어도 엄마인 나만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 날들이 있다.
어릴 적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나와 지금 아이들 곁을 맴도는 내가 이상하게 겹쳐 보인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특별히 앞서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먼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칭찬받기보다는 외로워지기 쉬운 자리였다.
살다 보니 알게 된다.
세상에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꾸 책임을 먼저 떠안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선택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서 있게 된 사람들.
답답한 시간을 소리 내지 않고 그냥 견디는 사람들이다.
나는 아마도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될 것 같다.
잘나서도, 앞서 있어서도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조용히 버티는 쪽을 택하는 사람.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네가 앞에 앉아 있었던 건 네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네 차례였을 뿐이라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너는 이미 자기 자리를 통과하고 있었다고.
그 자리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