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버티되, 소진되지 않게
어느 날 문득 이런 말을 들었다.
“지금은 함께 버티되, 개인이 소진되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까지 늘 버텨왔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이 얼마나 닳아가고 있는지는 제대로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속이 없는 자리에서 오는 고독
나는 가정 주부다.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출근하지 않고, 명함도 없고, 직함도 없다.
아이 셋의 하루를 책임지며 살아가지만, 사회적으로는 쉽게 투명해진다.
그래서 사람과의 연결, 연대감, 안전하고 깊은 신뢰를 형성하는 일이 유난히 어렵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외롭고, 연결되어 있는 듯해도 고독하다.
이 외로움은 사람을 못 만나서 생긴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관계가 없어서 생긴 감정이었다.
위기 앞에서 우리는 늘 강했다
IMF 외환위기 때를 떠올려본다. 국민들은 잠자던 금을 꺼내 들었다. 누가 시켜서도, 보상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국가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살리자.”
그 결단은 우리 사회의 강한 국민성을 보여주었다. 위기 앞에서 개인보다 공동체를 먼저 선택하는 힘.
하지만 그 힘의 이면에는 말하지 못한 개인의 고통도 함께 쌓였다.
국가는 버텼지만, 사람들은 많이 다쳤다.
이제는 다른 방식의 ‘함께’가 필요하다
지금의 위기는 그때처럼 단기간에 끝나는 위기가 아니다.
갑자기 무너지는 위기도 아니고, 갑자기 회복되는 시기도 아니다.
그래서 더 이상 ‘조금만 더 참자’는 방식은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이제 필요한 건 이것이다.
함께 버티되, 개인이 소진되지 않는 방식
나에게 남은 단 하나의 기준
나는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지키고 싶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고, 정서적으로 편안한 상태로 자라는 것.
이 기준 앞에서 깨닫게 된다.
아이들을 지키는 일은 내가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소진되지 않기 위한 작은 재정의
‘함께 버틴다’는 말은 모두가 끝까지 서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자리를 서로에게 남겨두는 일이다.
큰 연대가 아니어도 좋다. 많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
단 하나라도, 역할이 아니라 언어로 만나는 관계.
아이들 외에 나를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 불러주는 존재.
그 하나면 충분하다.
고독을 다시 바라본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결핍이 아니라,
깊이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아무 관계로도 채워지지 않는 고독은 아무 관계나 원하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고독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한다.
함께 버티는 새로운 연습
함께 버틴다는 것은 누군가를 갈아 넣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조금 덜 닳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작을 수 있다.
오늘 하루, 나를 완전히 잃지 않는 선택 하나.
그 선택들이 모여 다음의 사회를 만든다.
함께 버티되, 소진되지 않게.
이 문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조용한 기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