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by 혜다온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울음이 쏟아지는 날도 있지만, 그보다 더 자주 오는 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 조용한 순간들이다.

그래도 나는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린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보습제를 바르고 선크림을 바른다.

눈이 불편해 안약도 하나 샀다.

이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요즘의 나에게는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최소한의 선택’이다.

엄마를 자주 찾아뵙지는 못했다.

대신 전화는 자주 했고 문자로 사진도 많이 보냈다.

아이들이 잘 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엄마의 투박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듣는 게 그저 좋았다.

돌이켜보면 엄마에게 내 깊은 고민을 모두 말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힘든 이야기는 더 숨겼다.

엄마는 다정한 말로 위로해 주는 사람이기보다는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그래, 알겠다” 하고 받아주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나는 다시 괜찮아졌다.

엄마는 나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았다.

말로, 꽤 깊게.

그래서 더 조심했고 그래서 더 말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온전히 걱정해 주던 사람이었다.

조건 없이 “너는 괜찮다”라고 전제해 주던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모든 걸 털어놓지 않아도 괜찮았다.

요즘 나는 길을 걷다가 할머니들을 보는 게 좋다.

엄마와 체격이 비슷한 분, 옷차림이 닮은 분을 보면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엄마와 딸이 나란히 걷는 모습을 보면 참 보기 좋다.

아프기만 하지 않고 그저 좋다.

예전에 엄마와 자주 등산을 했다.

엄마는 어느 날 “시간이 지나면 나랑 이렇게 걸었던 게 분명히 그리울 거야”라고 말했다.

그땐 그 말이 왜인지 그냥 지나갔는데 지금은 안다.

같이 걷는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깊이 남는지.

말없이 같은 방향을 보고 같은 속도로 걷던 그 시간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엄마는 이제 곁에 없지만 엄마에게서 받은 무조건적인 수용은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밥을 먹고 머리를 감고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받았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 기억 하나로 오늘을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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