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이후의 인간

by 혜다온

AI가 그림을 그리고, 문장을 쓰고, 코드를 짜고, 음악까지 만든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한다.


예전에는 빨리 배우는 사람이 유리했다.

많이 아는 사람이 앞서갔다.

효율적인 사람이 인정받았다.

나도 그 기준 안에서 살았다.

얼마나 해냈는지, 얼마나 벌었는지,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에는 괜히 내가 가벼워진 것 같았다.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기계가 점점 더 잘해내는 시대라면, 나는 계속 더 잘해내야만 하는 걸까?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많이.

그렇게 계속 가면 어디에 닿는 걸까.


지구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다.

우주도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움직임이 기본이라면 흔들림도 기본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흔들리면 고쳐야 한다고 배웠다.

넘어지면 일어나야 하고, 불안하면 해결해야 하고, 무너지면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가만히 두는 법은 배운 적이 거의 없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나는 이미 조금 다친 상태 아닐까?

이미 조금 지쳤는데 계속 일어나려고만 했던 건 아닐까?

상처를 확인하기도 전에 “괜찮다”고 말해온 시간.

그게 더 길었던 것 같다.


바다에서는 발버둥칠수록 가라앉는다고 한다.

힘을 빼야 몸이 뜬다.

부력이라는 건 내가 만들어내는 힘이 아니라 원래 있는 힘이라고 했다.

나는 그걸 늦게 알았다.

늘 육지처럼 살았다.

더 버티고, 더 증명하고, 더 보여주려고.


그런데 삶의 어떤 구간은 바다였을지도 모른다.

힘을 빼도 되는 시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AI가 더 빨라질수록 이 질문은 더 선명해진다.

만약 기계가 내가 하던 일을 더 잘한다면 나는 무엇으로 남을까.

쓸모가 줄어들면 가치도 줄어드는 걸까.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요즘 ‘존재’라는 단어를 자주 생각한다.

얼마나 해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날에도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혼자 있는 시간에 나를 적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

기계는 계산을 잘한다. 문장도 잘 만든다.

하지만 어떤 문장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이 묻어 있다.

그 시간을 대신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인간은 느리다.

그리고 자주 흔들린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 뭔가가 남는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

나는 여전히 잘해내고 싶다.

안정도 필요하다.

결과도 궁금하다.

쓸모를 완전히 버릴 자신은 없다.

다만 그 사이에 하나를 더 두고 싶다.

오늘 아무것도 하지 못했더라도 숨 쉬고 있다면 그것으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자리.


잘 살아내기 전에 잘 존재하기.

어쩌면 그 연습이 앞으로 더 중요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조금씩 그렇게 살아보려고 한다.

쓸모 이후의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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