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백>을 보고 (스포일러 포함)
※ 영화 <미쓰백>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영화 <미쓰백>은 학대의 경험과 전과를 가지고도 열심히 살아가는 백상아(한지민 분, 이하 미쓰백)의 삶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미쓰백은 우연히 학대를 당하는 한 아이 김지은(김시아 분, 이하 지은)을 보고 쉽게 넘기지 못한다. 그런 미쓰백이 지은을 구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일단 짧은 소감들. 한지민의 연기 변신은 인상적이었다. 또한 장섭(이희준 분) 및 주요 조연들의 캐릭터 설정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이었다. 특히 장섭은 보통의 상남자 이미지에서 부정적인 면을 제거한 캐릭터 같았다. 미쓰백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둔다. 장섭은 그나마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캐릭터라고 느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아동을 학대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해야 하기에 불편할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염려했던 것보다는 괜찮았다. 카메라를 다른 장면으로 순간 전환하고 소리만 들리도록 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학대 장면을 접할 수 있었다. 학대 장면을 묘사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극의 감정을 이끌어가는데 자연스러움을 부여하기에 꼭 필요했을 것이기에 있어야 되는 요소는 맞다고 생각한다.
스토리의 개연성도 마음에 들었다. 작고 큰 사건들과 미쓰백의 개인적인 경험이 맞물리며, 미쓰백이 지은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상황이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볼만한 영화 추천을 부탁하면 나는 망설임 없이 <미쓰백>을 추천할 거다. 다음 몇 가지 포인트를 얘기하면서 말이다.
그녀의 엄마는 미쓰백을 버렸다. 엄마가 정말로 가슴 아파했는지, 상황이 어땠는지 여부를 떠나 미쓰백 입장에서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부당한 일을 겪으면, 겪은 대로 누군가에게 갚아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군대에서 후임 시절에 더 많이 괴롭힘과 갈굼을 당한 사람이라면, 그가 선임이 되었을 때 후임들에게 더 잔인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반대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있다. 미쓰백이 그런 류의 다짐을 하는지가 영화에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그녀는 그녀의 엄마보다 나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실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한 모성애라는 개념, 이것을 한국 사회는 강력히 떠받들고 있다. 포스터를 보고 살짝 걱정도 했다. 아이를 최대한 불쌍하게 만들고, 그걸 본 미쓰백의 모성애가 발동해서 무작정 감정적으로 격해져서 정신없이 아이를 구출해내는 개연성 없는 스토리를 상상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며 내 상상이 감독에게 죄송할 지경이었다.
감독은 오히려 미쓰백과 지은 두 인물이 서로를 지켜주며, 동등하게 만들어가는 관계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미쓰백이 학대받아서 몸에 난 상처를 지은이가 쓰다듬으며 '지켜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 정점이다. 또한, 미쓰백이 자신의 엄마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서 설명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동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서로가 알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미쓰백의 내부에 있던(?) 모성애가 발휘되어 지은을 지키려고 했다고 생각해보자, 엄마-자식 관계로써 보다 상대적으로 일방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미쓰백은 '나 같은 사람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영화에서 설정한 두 사람의 관계에 따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 중간에 지은이가 미쓰백을 실제적으로 지켜주는 사건을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넣어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지은의 '지켜줄게'라는 대사에 힘이 더 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수동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만 그려진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한국 사회에서 정상가족이라는 신화는 여전히 견고하다. 재혼 많이 한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혼한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사회이고, 나이 든 사람은 당연히 결혼을 했을 것이고 자식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가족 관계를 써내는 공문서에는 아직도 부와 모가 같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공익 캠페인 포스터나 교과서에서 그리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 그것은 당신도 상상할 수 있는 그 모습이다.
영화 <미쓰백>은 다른 선택지를 가져왔다. 만약 미쓰백과 장섭이 결혼하고, 지은을 입양해서 셋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으로 결말을 지었다면 찝찝하게 영화관을 빠져나왔을 것 같다. 사회가 정상 가족이라고 정해놓은 틀에 종속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학대당했던 지은에게는 특히 그랬을 것이다. 그냥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침대에서 자며 일상을 보내는 자체로 행복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마지막 장면도 일상적인 행복을 보여준다. 학교 앞에서 미쓰백과 지은이 만나는데, 지은이가 환하게 웃으며 반갑다고 팔 벌리고 뛰어가서 안기는 거, 안 나온다. 미쓰백의 캐릭터 설정 때문에 시크하게 결말 지은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캐릭터가 환하게 웃으며 지은이를 번쩍 들어 올려서 하하호호 웃으며 끝나는 모습도 나에게는 너무나 뻔하게 상상된다. <미쓰백>이 선택한 결말이 더 설득력 있었다. 그들에게는 그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매일 같이 웃지는 않는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미쓰백과 지은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영화만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 밖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수많은 미쓰백들과 지은들이 '일상'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씁쓸한 뒷맛도 함께 남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