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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몰입

남는 건 맑은마음과 경험뿐

by eunsu



나무를 보면 나무가 거기 있음을 안다.

생각이나 감정을 인식할 때는

생각이나 감정이 거기 있음을 안다.

기쁘고 고통스러운 체험을 할 때는

그런 체험이 거기 있음을 안다.


-고요함의 지혜 p.62-




이 말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 느껴지지만

천천히 뜯어보면 미묘하고도 근원적인 착각을 담고있다.


무엇일까?




이는 언어를 사용할 때면 피할 수 없는 착각이다.

사고와 언어는 날카로운 이분법을 적용해

다른 것들과 분리된 인간존재를 만들어낸다.

그런 인간이 실제로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진실은 나는 나무를 인식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고 감정 체험이 거기 있음을 알아차리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맑은 마음이다. 나는 순수의식이다.

나를 통해 사고 감정 체험은 나타날 수 있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맑은 마음임을 알 수 있겠는가?

그 안에서 당신 삶의 모든 내용이

하나씩 전개되는 그런 맑은 마음.


-고요함의 지혜 p.63-




아사나를 할때도 마찬가지이다.

저 말들에는 오류가 있다.


내가 아사나를 하고있다.

내가 숨을 쉬고있다.


이것은 모두 착각이다.

완전하게 몰입되어 있으면,

내가 없어진다.

“나”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집중력.

즉, “생각”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단일한 작용의 서로 다른 표현일뿐,

몰입한 상태에서는 경험이라는 상태도 없고

경험대상자인 ‘나’ 라는 사람 자체도 없다.




내가 있고

내가 아닌 무언가가 있다.

우리는 “나”자신이 내가 아닌 무언가를

보고있다고 착각하고 산다.


몰입된 상태에서는 작용만이 있을뿐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고와 언어는 날카로운 이분법을 적용해

다른 것들과 분리된 인간 존재를 만들어내기에

“경험” 만이 남는다.


“나타난다.” 라는 것은

즉, “없던 게 생기는 것”이며

“없던 게 생기는 것”은 “가짜” 이룬이다.

진짜 “나” 를 감싸고 있는 허상의 “나” (자의식)

내가 알아차렸다는 사실 또한 허상이라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

현상계의 존재들이 생성되는 맑은 마음임을 알 때

당신은 현상계의 종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제 당신은

상황과 장소와 조건 속에서 자아상을 찾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고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만물이 그 무거움과 심각함을 떨궈버린다.

당신 삶에 슬며시 장난기가 들어온다.


-고요함의 지혜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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