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by 히다이드

여행의 준비가 끝나갈 즈음, 여름에 쓸 방향 밴드를 준비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아로마 오일이 묻어 있어서 손목이나 발목에 차면 모기 같은 날벌레에 물리지 않게 해주는 밴드인데, 여행 용품 사이트에서 의류 수납 팩과 콘센트 어댑터 등을 찾아보다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필요 없는데 괜히 사는 건 아닌가 싶어서 유럽에도 여름에 모기가 많은지, 유럽 모기에 물렸을 때 걸리는 특별한 병이 있는지를 알아봤는데 우리말로는 빈대라고 하는 베드 버그에 대한 얘기들을 읽게 됐다. 빈대에 물린 사람들의 사진과 빈대에 물린 사람은 숙소에서 받아주지도 않는다는 여행담을 보며 얼마나 기겁했는지 모른다.


여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준비했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벌레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자는 중에 물릴 수도 있는 거고,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배낭이나 캐리어 가방 안으로 숨어들 수도 있었다. 그 조그만 벌레 하나가 여행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때까지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자신감이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며 며칠 동안 고민했는데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완벽하게 준비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준비하기로 했다. 빈대 퇴치용 스프레이를 사고, 옷은 비닐 팩에 하나씩 따로 싼 후에 배낭과 캐리어 가방에 비슷한 종류의 옷들을 나눠서 집어넣었다. 혹시 빈대가 배낭이나 캐리어 가방에 들어오더라도 옷 속에 숨어드는 것만 막을 수 있으면 가방을 교체하는 거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같은 종류의 옷들을 나눠서 집어넣으면 둘 중 하나에 있는 옷들을 전부 버리게 되어도 다른 하나에 있는 옷들을 이용해 당장 입을 게 없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빈대에 물리면 보기에도 흉측하고 많이 가렵다고 해서 병원에서 빈대에 물렸을 때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처방받아 왔다. 약을 받아가지고 오는 길에 하나도 안 아까우니까 이 약만큼은 제발 쓰지 않고 그대로 가져와서 버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게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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