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천이백만 원 정도에 맞춰서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간이 늘어나고 방문할 도시들이 많아지면서 내가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카메라도 사고, 배낭과 캐리어 가방도 사고, 운동화와 각종 물품을 사는 것만 해도 꽤 큰돈이 들어가는데, 현지인 민박까지 머물고 싶은 만큼 넉넉히 예약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지출액이 천만 원을 넘어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그 추세로 계속 지출하면 돈이 얼마나 들지를 따져봤는데 가늠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현지에서 밥값이 얼마나 나올지, 돌아다니면서 돈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직접 가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최소한 천칠백만 원 이상이 들어갈 것 같다는 것과 거기에 몇 백만 원이 추가될 수 있다는 것 정도만 짐작할 수 있었다. 무직자가 일을 너무 크게 벌려 놨는데 이왕 벌려 놓은 김에 돈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이 돈이 최대한의 효과를 내게 하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우선 떠오른 건 이 여행에 함께할 수 없는 나의 지인들이었다. 이렇게 장기간 큰돈을 들여 여행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을 갔다 오면 사람들에게 내가 보고 느낀 걸 나눌 기회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아는 어떤 사람이 넉 달 동안 외국에 나갔다 왔었다는 사실만 남을 뿐이었다.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뭔가를 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그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어 내가 대신 갔다 오기로 했다. 천칠백만 원을 들여서 나 혼자 보고 온다면 한 사람이 부담하는 금액이 천칠백만 원이지만, 내가 보는 걸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보게 되면 그 풍경을 보기 위해 한 사람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훨씬 저렴해졌다. 어차피 내 개인적으로 들여야 할 돈의 액수가 변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보게 하는 게 경제적이었고 덜 아까웠다.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 봤는데 SNS 서비스가 제일 효과적이었다. 내가 보는 풍경을 그대로 동영상에 담아 SNS 서비스에 게시하면 내 지인들 역시 내가 보는 걸 나와 비슷한 때에 같이 볼 수 있었다. 내 얼굴이 나오는 사진을 잘 안 찍고 SNS에 올리는 것도 싫어하는데, 이건 내가 어디 갔다고 인증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 얼굴이 나올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시야만 가리는 거라 내 얼굴이 나오면 안 됐다.
SNS 서비스에 게시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행하면서 내가 보게 될 모든 것들을 동영상에 담기로 했다. 영상과 소리로 담아 놓으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도 좀 더 실감 나게 여행을 추억할 수 있었다. 디지털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로는 부족할 게 뻔해서 외장형 하드디스크도 준비했다. 동영상 하나의 대략적인 크기를 계산하고 넉 달 동안 어느 정도의 저장 공간이 필요한지를 따져봤다. 1.8 테라바이트짜리 외장형 하드디스크 두 개를 샀는데 하나만 있어도 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사진과 동영상들을 두 개의 하드디스크로 나눠서 보관할 계획이었다.
어차피 쓰는 건데 팍팍 쓰기로 했다. 빵과 물만 먹으면서 버티다 올 수도 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인데 방문하는 곳에서 최대한 즐기고 싶었다. 매 끼니마다 비싼 음식을 먹을 수는 없지만 가끔씩 비싼 것도 먹고, 꼭 해보고 싶은 거라면 돈이 많이 들어도 했다. 몇 백만 원이 더 들고 덜 들고의 차이인데 한국에서 어떻게든 벌려고 하면 몇 백만 원은 충분히 모을 수 있었지만, 이 여행에서 뭔가 해보고 싶은데 참고 지나쳐 버리면 다시 그곳에 가야만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