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by 히다이드

출발하던 날 아침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다.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깼는데, 긴장도 되고 한편으로는 기대도 돼서 이불에 엎드린 채 잠깐 기도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워를 하고, 부모님과 함께 짧게 예배를 드린 후에 집을 나섰다. 봄이긴 했지만 바람이 불고 약간 쌀쌀한 날이었다. 하늘은 부슬비라도 내릴 것처럼 보였다.


집 밖으로 나와 캐리어 가방을 끌어 봤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워서 끄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전날 밤 마지막으로 짐 점검을 할 때 한 번 들어봐서 무겁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하룻밤 사이에 훨씬 더 무거워져 있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나 혼자 끌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아버지께서 공항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신 게 천만다행이었다. 원래 지하철을 타고 인천공항까지 가려고 했는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그보다 훨씬 더 무거운 캐리어 가방을 끌면서 다섯 번 정도 환승을 해서 공항까지 갔다면 아침부터 녹초가 됐을 것이다.


IMG_0077.JPG 여행을 위해 준비한 것들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면서 창밖을 내다보는데 큰 여행을 앞두고도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오히려 공항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여행에 대한 기대감보다 혼자서 무사히 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더 컸다. 긴장감으로 속이 터질 것 같은 상태에서 공항에 도착했다.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고 아버지께 작별 인사를 드린 후에 공항 청사로 캐리어 가방을 끌고 가기 시작하자 그제야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정말로 시작된 거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낯선 환경에서 누구도 날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모든 걸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공항 청사 한쪽 구석에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배낭 정리를 하면서 혹시라도 누가 내 짐을 훔쳐갈까 봐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에로플로트 항공사의 카운터를 찾아 배낭과 캐리어 가방을 수화물로 부치고 근처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내 개인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으로 SNS에 여행 간다는 소식을 올린 후에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핸드폰 사용 정지 신청을 했다. 추가 수화물에 대한 비용 결제 때문에 항공사 카운터에 맡겨뒀던 신용카드를 돌려받고 비행기 탑승장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안 검색을 통과하고 면세점 구역에 들어서자 온갖 명품 브랜드와 함께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활기찬 분위기가 얼마 후면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상기시켜 줬다. 탑승장에 가기 위해 공항 안에서 운행하는 전철을 탔다. 제주도에서 군 복무하던 시절에 휴가 때마다 이용하던 김포공항, 제주공항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철을 타고 가는 내내 어린애처럼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전철에서 내려 다시 한참 동안 걸은 후에야 아에로플로트의 자회사인 오로라 항공의 여객기 탑승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같은 인천공항인데도 불구하고 걸어오면서 봤던 다른 곳들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의자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 대부분이 러시아인들이었고 그중에 간혹 여행객으로 보이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탑승장이 청사의 제일 끝이어서인지 유달리 조용했고 외국인들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탑승장 앞 의자에 앉아 1 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러시아어 회화책을 보려고 했는데 글자를 읽고 있는데도 책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다. 결국 책은 덮고 탑승장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활주로의 모습이 보였다.


탑승장 안과 달리 건물 밖은 일상적인 삶의 현장이었다. 비옷을 입은 직원들이 계류장을 바쁘게 돌아다녔고, 건물 밑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는 일하다 잠깐 쉬는 직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어떤 이들은 항공기에 실려 있던 짐을 차량으로 옮겨 싣느라 정신이 없었고, 청소도구를 들고 비행기 안으로 무리 지어 들어가는 아주머니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가 탈 오로라 항공의 비행기가 계류장으로 들어왔다. 몇 십분 정도를 더 기다리고 나서 비행기 탑승이 시작됐다.


블라디보스토크행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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